세심하게 봐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

처음 후배가 생겼을 때 제가 했던 실수

by김도경 dkkim

안녕하세요, 김도경입니다. 예전의 저는 후배의 결과물을 받으면 고칠 곳을 빠짐없이 짚어 주는 게 좋은 선배라고 착각했는데요. 예전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처음으로 함께 일할 부사수 후배가 생겼을 때의 일입니다. 입사한 지 2주 된 후배가 월요일 오전에 설명회 안내문 초안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그 초안을 출력해서 빨간 펜을 들고 회의실에 들어갔고, 30분 동안 문장마다 줄을 그었습니다. 맞춤법은 당연하고, 문단 순서, 표현, 글자 크기까지요. 다 고치고 나니 구글 독스 파일 두 장이 고칠 곳으로만 덮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후배는 초안을 마감 직전에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고칠 곳이 많다는 걸 알게 되니, 최대한 완벽하게 만들어서 보내려고 했던 것이죠. 혹시 처음 후배나 팀원이 생겨서 어디까지 고쳐 줘야 할지 고민인 분이 있을까 싶어, 그때 제가 알게 된 것과 그 뒤로 바꾼 것을 정리해 봤습니다. 물론 제가 정답은 아닙니다. 느낀 점을 공유드립니다.


1.

첫 번째로 바꾼 건 고치기 전에 이 결과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부터 다시 보는 것입니다. 그 안내문의 목적은 학부모님들이 설명회 날짜와 장소를 헷갈리지 않고 신청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은 빨간 줄의 대부분은 그 목적과 상관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드립니다'를 '~합니다'로 바꾸는 것, 문단 순서를 제 취향대로 옮기는 것 같은 것들이었죠. 정작 목적과 바로 이어지는 문제는 1) 신청 마감일이 빠져 있었던 것 2) 장소 주소가 예전 주소였던 것, 이렇게 두 개뿐이었습니다. 이 두 개만 짚었어도 그 안내문은 충분히 제 역할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요즘은 결과물을 받으면 고치기 전에 한 줄을 먼저 적습니다. 이건 누가 읽고, 읽고 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요. 이 한 줄에 걸리는 문제만 먼저 고치고, 나머지는 따로 모아 둡니다. 해 보면 꼭 고쳐야 하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2.

두 번째는 고칠 곳을 한 번에 다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빨간 줄이 스무 개 그어진 종이를 받으면, 받는 사람은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릅니다. 저도 신입 때 그런 종이를 받아 본 적이 있는데, 그날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보다 '나는 이 일이 안 맞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제 후배도 그때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 뒤로는 한 번에 많아야 세 개까지만 말합니다. 1) 꼭 고쳐야 하는 것 2) 고치면 더 좋아지는 것 3) 다음에 참고하면 좋은 것, 이렇게 나눠서요. 1번이 없으면 그대로 내보내도 된다고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나머지 자잘한 것들은 결과물이 나간 뒤에 따로 시간을 잡아 이야기합니다. 마감 전에는 고칠 힘이 없지만, 마감이 끝나고 나면 들을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3.

세 번째는 잘된 곳을 먼저,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 안내문에도 잘된 곳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설명회에서 무엇을 얻어 갈 수 있는지 첫 문단에 세 줄로 정리해 둔 부분은 제가 써도 그렇게는 못 썼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고칠 곳만 들은 사람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음 결과물에서 그 좋은 부분까지 같이 지워 버릴 수도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요즘은 피드백을 시작할 때 잘된 점 하나를 먼저 말하려고 합니다. 그냥 좋다고 하는 게 아니라, 첫 문단에 얻어 갈 것을 세 줄로 정리한 덕분에 읽는 사람이 바로 신청 여부를 정할 수 있겠다는 식으로 어디가 왜 좋은지까지요. 칭찬을 먼저 하고 본론으로 가는 건 영업을 하며 몸에 밴 습관이기도 한데, 후배에게 쓸 때 오히려 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 후배와는 몇 달 뒤 점심을 먹다가 그때 안내문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됐습니다. 그 빨간 종이를 아직 서랍에 넣어 두고 있는데, 고칠 곳이 너무 많아서 다시 꺼내 볼 엄두가 안 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날 제대로 사과를 했고, 그 뒤로 후배는 초안을 다시 일찍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점은 첫 결과물을 고쳐 줄 때는 다음 초안을 일찍 보내고 싶은 마음이 남도록 고쳐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빨간 줄을 잔뜩 긋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있습니다. 그래도 펜을 들기 전에 1) 이 결과물의 목적 2) 꼭 고칠 것 세 개 3) 잘된 점 하나, 이 세 가지를 먼저 적어 보려고 합니다. 혹시 처음 받아 본 피드백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시면 댓글로 알려 주세요. (정말 궁금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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