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맡기기 전에, 한 바퀴는 제 손으로 돌렸습니다
남에게 맡길 일이라도, 먼저 제 손으로 한 바퀴는 돌려 봐야 합니다. 몸으로 부딪혀 가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1.
"대관하는 날, 제가 가게에 나와 있어야 하나요?" 몇 년 전, 사업을 하던 시절에 가게를 빌려주시던 사장님들께 자주 받던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비로소 제대로 된 답을 내릴 수 있게 된 건, 팝업 레스토랑을 직접 열어 보고 난 뒤였습니다.
회사에 취직하기 전 대학생 시절, 저는 공동대표로 작은 사업을 운영했습니다. 쉬는 날 비어 있는 가게와, 자신의 요리를 손님에게 선보이고 싶은 셰프를 연결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팝업 식당은 셰프가 낯선 공간에서 단기간 동안 자신의 메뉴를 판매하는 자리입니다. 호텔이나 음식점에 취업하기 전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은 셰프, 현업에 종사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기 위해 창업 감각을 유지하려는 셰프, 혹은 정식 창업 전 메뉴를 시험해 보고 싶은 셰프들이 주로 찾는 기회였습니다.
사업계획서에 적어 내려간 이름은 처음부터 '플랫폼'이었습니다. 사장님이 가게를 등록하면 셰프가 이를 선택하고, 채팅으로 대관 날짜를 조율하는 웹 서비스. 하지만 우리는 그럴듯한 화면부터 만들지 않았습니다. 직접 팝업 레스토랑을 열기로 결정하고 실행했습니다. (그때의 기록이 남아 있는 인스타그램 링크 : https://www.instagram.com/for.all_official/reels/ - 팔로워도 어느덧 많이 줄어들었네요. 5천 명까지 열심히 키웠는데 ㅎㅎ 2023년의 열정 넘치는 제가 기특하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네요. 자기 연민이긴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2.
2023년 가을, 두 달 동안 우리 돈을 들여 팝업 식당을 직접 세 번 열었습니다. 9월 말 용산을 시작으로, 10월에는 을지로와 서울대입구까지 매장을 옮겨가며 발로 뛰었습니다. 가게를 섭외하고, 셰프와 일정을 맞추고, 인스타그램으로 손님을 모은 뒤 정산까지 마치는 대관과 판매의 전 과정을 우리 손으로 전부 겪어냈습니다. 첫 번째 팝업은 단순히 가게와 셰프만 연결해 주고 대관료의 20%를 수수료로 받았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정산 지표를 표에 채워 넣었습니다. 그날 매출은 140만 원 남짓이었지만, 재료비가 100만 원을 넘었고 대관료가 30만 원이었습니다. 결국 우리 손에 쥔 수수료는 고작 6만 원이었습니다. 이대로는 사업이 될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팝업에서는 조건을 바꿨습니다. 수수료율은 그대로 두되 셰프의 일손을 돕는 유료 인력 서비스를 더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 들어온 돈은 50만 원으로 늘어났습니다. 세 번째 팝업에서는 아예 구조를 전면 수정했습니다. 재료비와 대관료를 우리가 먼저 전액 부담하는 대신, 당일 총매출의 80%를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정산 표에 찍힌 우리의 매출은 120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물론 초기 비용을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도 생겼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세 번의 팝업은 그저 같은 일을 반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디까지 우리가 직접 개입하고 서포트해야 이 비즈니스가 지속 가능한 '돈'이 되는지, 세 가지 가설을 검증해 본 과정이었습니다. 똑같은 팝업 식당이었지만, 조건 하나를 바꿀 때마다 정산서 위의 숫자는 전혀 다른 결과물을 내고 있었으니까요. 대관료도 가게마다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떤 곳은 30만 원, 어디는 40만 원, 또 다른 곳은 5만 원이었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좌석 수를 기준으로 대관료 상한선을 권고하게 된 것은, 이 들쭉날쭉한 금액을 직접 온몸으로 치러본 뒤였습니다.
세 번의 팝업을 합치니 두 달 동안 500만 원에 가까운 매출이 발생했습니다. 사업적으로 그리 큰돈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바카라상 앞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던 진짜 현장의 고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공간을 빌려주는 사장님들은 타인에게 주방을 내주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했고, 셰프들은 요리는 잘해도 당일 주방에 함께 설 손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기물이 깨지면 누가 보상하는지, 대관 당일에 사장님이 가게를 지켜야 하는지도 단골 질문이었습니다.
이 생생한 목소리들은 훗날 우리 서비스의 가장 강력한 자산인 <자주 묻는 질문(FAQ)> 문서가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공간을 등록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왜 예약 요청이 한 건도 없느냐"는 사장님의 애타는 질문도 담겼습니다. 때로는 본인이 셰프이면서 매장 사장님이기도 한 분이 "둘 다 등록해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사업계획서 화면 속에서 우리가 정교하게 갈라놓았던 두 개의 페르소나가, 현실에서는 한 사람의 몸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우리는 현장에서 찾은 질문에 하나씩 답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계약서는 사장님용과 셰프용으로 철저히 분리해 다시 썼습니다. 보건증이 검증된 셰프만 대관할 수 있도록 제한했고, 매장 내 사고가 발생하면 플랫폼의 운영자인 저희가 먼저 보상하는 안전장치를 규칙에 넣었습니다. 비로소 처음에 받았던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장님, 그날은 가게를 비워두고 편히 쉬시면 됩니다."
기준이 없던 대관료는 좌석 수에 1만 5천 원을 곱한 금액을 넘지 않도록 상한선을 제안했습니다. 한 달 넘게 매칭이 안 되는 사장님께는 가격을 조금 낮추고 공간 사진을 다시 찍어 보자고 먼저 솔루션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네 번째 팝업부터 운영 방식을 완전히 전환했습니다. 우리가 직접 리스크를 지고 식당을 여는 대신, 가상의 랜딩페이지만 보고 찾아온 실제 셰프들에게 비어 있는 가게를 매칭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여섯 번째 팝업에 이르러서는 현장 일손까지 패키지로 연결하는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넘기는 순서도 미리 정해 둔 셈이었습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시도에서는 가게만 연결해 드려도 잘 굴러가는지, 여섯 번째에는 사람까지 연결해 드려야 하는지를 살폈습니다. 앞서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본 세 번의 경험 덕분에, 다음 단계로 넘길 때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미리 적어 둘 수 있었습니다. 랜딩페이지를 오픈한 지 2주 만에 셰프 오십 명과 가게 서른 곳이 모였습니다. 한 번 팝업을 연 셰프의 70% 이상이 다시 신청을 해왔습니다. 웹 서비스는 그다음 해인 2024년 1월에 오픈했습니다. 당시 서비스에는 이미 셰프 서른 명과 가게 스무 곳이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비즈니스의 한 사이클을 직접 돌려 보고 나서야, 무엇을 시스템으로 넘기고 무엇을 규칙으로 만들어야 할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면 그 세 번의 무모한(?) 경험이 없었다면, 저는 다짜고짜 UXUI 화면부터 그렸을 겁니다. 팀에서 피그마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고, 제가 기획과 디자인을 맡고 있었으니까요. 그 화면에는 아마 가게 사진과 예약 버튼이 가장 먼저 들어갔을 겁니다. 반면 사장님이 그날 가게에 상주해야 하는지, 기물이 깨지면 누가 바카라임져야 하는지 같은 정작 중요한 문제를 적는 칸은 없었을 겁니다.
4.
몇 년 뒤 창업에 대한 소회를 정리하며, 저는 첫 제품의 정의를 <한 사이클이 온전히 도는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기능이 화려하고 많은 게 아니라, 기본을 갖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은 굴러가는 경험을 해 본 것. 현장에서 뛰어 본 뒤로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더 완성도 높게 기획할 수 있었던 건, 오롯이 이 열 번이 넘는 실제 팝업 운영 경험 덕분이었습니다. 물론 해 봤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알게 된 건 아닙니다. 결국 그 사업은 3년 차에 접었습니다. 다만 그때 생긴 버릇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 맡는 일은 남에게 넘기거나 시스템을 짜기 전에, 반드시 한 번은 제 손으로 끝까지 해 봅니다.
잘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가 보려는 겁니다. 그래야 그 일의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매번 그러지는 못합니다. 바쁠 때는 슬쩍 건너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건너뛴 일은 대개 누군가의 첫 번째 질문에서 여지없이 막히곤 합니다.
직접 해 보지 않은 일을 그럴싸한 설명만 붙여서 넘기면, 받는 사람이 처음 던지는 질문에 넘긴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부끄럽게도 그 넘긴 사람이 바로 저였던 날도 있습니다. 그 부끄러운 이야기는 다음 화들에서 이어서 적어 보겠습니다.
1화에서 말한 '진짜 납득'도 결국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머리로만 이해한 일 앞에서는, 누군가 툭 던진 한마디 질문에 내 진짜 언어로 답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참 열정적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