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몰랐던 내용입니다'라고 하니 배울 자리가 열렸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저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1.
"잠깐만요. 그건 제가 몰랐던 내용입니다." 얼마 전 한 미팅에서 제가 한 말입니다. 말을 꺼내고 나서 부끄러워서 귀가 조금 뜨거워졌습니다. 상대 쪽에서 나온 분은 저보다 연배가 한참 위였습니다. 회의 내내 표정이 엄격하셨습니다. 그날은 제가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해 간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더 곤란했습니다. 그러다 그분이 제가 처음 듣는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그 순간 두 가지 선택지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선택지입니다. "네, 네" 하면서 아는 얼굴을 하고, 끝나고 몰래 리서치해 보는 길. 솔직히 예전의 저는 늘 그쪽이었습니다. 슬롯에 나와 처음 일을 배울 때는 더 그랬습니다. 모른다고 하면 준비 안 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알아듣는 척을 하며 대화를 따라갔습니다. 그렇게 끝난 회의에서 제 것이 된 건 거의 없었습니다. 끄덕이고 나온 날은 순서가 늘 비슷했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검색창을 엽니다. 단어의 뜻은 찾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말이 그 자리에서 왜 나왔는지는 검색이 알려 주지 않습니다. 맥락을 파악하지 않고 찾으니 제 것이 되지 않는 것이죠.
그러면 다음 회의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또 끄덕이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한 번 물었으면 끝났을 일을, 저는 몇 번이고 돌아서 갔습니다. 모르는 걸 감추는 데 드는 품이, 모른다고 말하는 데 드는 품보다 훨씬 컸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입이 잘 안 떨어졌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지독히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모른다고 하면 제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른다는 말은 인정받는 길과 반대편에 있는 말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게 나오면, 아는 단어 몇 개를 붙잡고 끝까지 버텼습니다.
회의실에서 이런 순간, 한 번쯤 있지 않으셨나요. 다들 아는 것 같은 말이 나오고, 나만 모르는 것 같은 순간. 물어보면 흐름을 끊을 것 같고, 가만있으면 끝까지 모르는 채로 앉아 있게 되는 순간. 그날도 머릿속이 바빴습니다. 여기서 모른다고 하면, 이분이 나를 가볍게 보지 않을까. 준비해 왔다는 사람이 이것도 모르냐고 생각하지 않을까.
2.
다시 그날의 미팅으로 돌아와서, 그날은 다른 길로 갔습니다. 자존심이 좀 상했지만, 있는 그대로 말했습니다.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라서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분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엄격하던 얼굴이 풀리더니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제가 더 고맙죠. 누군가에게 처음 알려 주는 건 기쁜 일이거든요."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랐습니다. 저는 제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에게는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모른다고 한 번 말하고 나니, 그다음 질문은 오히려 쉬웠습니다. 이미 모른다고 했으니, 더 물어도 잃을 게 없었거든요.
미팅이 끝나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분이 제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셨습니다. "아는 척하다가 배울 기회를 흘려보내는 사람이 많은데, 오늘은 보기 좋았어요."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을 몇 번이고 다시 떠올렸습니다. 제가 지키려던 게 뭐였나 싶었습니다.
아는 척을 하면 그 자리의 체면은 지킵니다. 대신 그 자리에서 배울 수 있던 게 날아가죠. 체면은 회의 한 시간짜리였습니다. 모르는 채로 남은 건 그 뒤로도 계속 제 몫이었고요. 그분 자리에서도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그때 고개를 끄덕였다면, 그분은 아마 설명을 거기서 멈추셨을 겁니다. 상대가 다 안다는데 더 이야기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제 끄덕임 하나가 그분이 꺼내려던 이야기를 닫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반대 자리에 서 보면 더 잘 보입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자리에 서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해 주는 분이 제일 고맙습니다. 어디서부터 다시 설명하면 되는지 알게 되니까요. 다 안다는 얼굴로 끄덕이는 분 앞에서는, 제 설명이 제대로 닿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강의를 하거나 누군가에게 일을 넘길 때도 비슷했습니다. "질문 있으세요?" 하고 물었는데 조용하면, 그게 다 알아들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며칠 뒤 다른 자리에서 같은 질문이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누가 한 명만 "저는 여기서부터 모르겠어요"라고 해 줬어도, 그날 바로 다시 설명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쪽이 제 품도 훨씬 덜 들고요. 새로 설명을 시작하면 맥락부터 처음 다시 짚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날 그분이 제 한마디를 반가워하신 이유를, 지금은 조금 더 알 것 같습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게 제 쪽에서 뭔가를 잃기만 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상대에게는 오래 쌓아 온 걸 꺼내 놓을 자리가 생기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3.
저는 그날 겪은 걸 "일의 격"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즉,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해도 무너지지 않는 것.
자존감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네요. 인정 욕구가 너무나도 강한 저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다만,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고 인정할 수 있을 때 일의 격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일의 격은 연차나 직함이 만들어 주는 게 아닙니다. 그 한마디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날 제 앞에 앉아 계셨던 분이 그랬습니다. 저보다 훨씬 많이 아는 분이었는데, 제가 모른다고 한 말을 흠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칭찬을 해 주셨죠. 그리고 이상하게도, 일을 조금 해 본 뒤에 이 말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처음엔 모르는 게 당연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사람이 됐다고 스스로 생각하니까요.
회의에서 윗사람이 먼저 "그 부분은 제가 잘 모릅니다" 하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런 자리에서는 아래에 앉은 사람도 묻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일의 격은 한 사람의 태도로 끝나지 않고, 그 회의나 조직의 공기를 바꾸는 것 같습니다.
지난 화에 반례를 모으는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결론을 서두르지 않고 "왜 저렇게 반응했지?"를 계속 고민하고 스스로 묻는 이야기요. 그런데 계속 물으려면, 먼저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더라고요.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은 물을 수가 없으니까요. 1화에 적은 진짜 납득도 여기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막히는 곳을 막혔다고 말하지 않으면, 막힌 채로 "알겠습니다"를 하게 됩니다. 그 "알겠습니다"는 결국 다음 질문에서 들통이 나기 마련입니다.
물론 지금도 쉽지는 않습니다. 모른다는 말을 꺼내기 전에는 여전히 한 박자 망설입니다. 특히 상대가 저를 처음 보는 자리라면 더 그렇습니다.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싶으니, 더 장황하게 말하게 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앞으로는 모르면 꾸밈없이 모른다고 말하려 합니다. 그리고 저의 '일의 격'을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그날 어깨에 얹혔던 손이 가끔 생각나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