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 세포들은, 오늘도 수영 중이다
레인 앞에 서서 목을 좌우로 돌린다. 어깨를 두어 바퀴 돌리고 벽을 밀며 종아리와 발목을 길게 늘린다. 일명 준비운동. 몸은 아직 딱딱하게 굳어 있는데 마음으로는 레인을 한 바퀴 돌았다. 물살을 가르는 상상, 턴을 하고 다시 튀어 오르는 장면. 몸이 도착하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물에 뛰어드는 이 어긋남. 매일 마주하는 생경한 느낌이 재밌고 설렌다.
숨을 들이켠다. 무릎을 굽힌다. 두 팔을 뻗는다. 손끝이 물에 먼저 닿고, 몸이 따라 들어간다. 가른다. 미끄러진다. 물이 얼굴을 감싼다. 차갑다가, 이내 익숙해진다. 킥. 킥. 킥. 몸이 앞으로 나아간다.
바로 그 순간, 뇌에 숨어있던 작은 세포 하나가 팔짝 뛰어오른다. 이름하여 긴장세포. "몸 전체 힘을 빼. 코어에는 힘은 줘야지! 숨을 참지 말고 코로 내뱉어." 혼자 지휘하고 잔소리하는 이 세포는, 물에 들어갈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다. 몸은 이미 몇 번이고 해본 동작인데, 머릿속에서는 매번 초심자로 돌아간다.
몇 바퀴를 돌자 몸이 슬슬 리듬을 찾아간다. 벽에 닿는다. 무릎을 구부려 발로 벽을 박차고 나온다. 몸을 뒤집으며 방향을 튼다. 수면 위로 올라오며 유선형을 유지한다. 다시 뻗어나간다. 고개를 살짝 돌려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물속으로 파묻는다. 스트로크와 스트로크 사이, 호흡과 호흡 사이의 간격을 조금씩 늘리며 물을 타는 감각을 느껴본다. 애쓰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낯설고도 반가운 순간.
몸이 편안해질 때쯤이면 오히려 머릿속은 더 바빠진다. 걱정세포가 슬그머니 나타나 아이의 학업 성취도를 점검하고, 잡생각세포는 오늘 저녁 메뉴를 고른다. 완벽주의세포는 옆 레인 사람과 내 스트로크를 은근히 비교한다. "저 사람보다 느린가?" "팔꿈치 각도가 틀렸나?" 물속에서조차 쉬지 않는 이 부지런한 세포들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날 것 같다가도 조금은 씁쓸해진다.
어느 순간, 세포들의 소란이 잦아드는 때가 있다. 몸의 동사만 남는다. 뻗는다, 가른다, 나아간다.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잡생각도, 비교도, 판단도 조용히 가라앉는다. 몸과 마음이 처음으로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념무상이라 부르기엔 거창하지만, 적어도 몸과 머리가 다투지 않는 시간이다.
이 감각을 어떻게 붙잡아둘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사라 카우프먼의 <동사의 힘>을 다시 펼쳤다. 작가는 찰나에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기 위해 평생 동사에 매달렸다고 고백하며 이렇게 말한다.
"동사에는 한계가 없다. 새로운 동사는 변화하는 세계를 붙잡거나 세계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수단을 제공한다." _p.281, 사라 카우프먼, <동사의 힘>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내가 왜 수영을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기록하고 싶었는지 알 것 같았다. '25미터 완주'라는 한 단어는 결과, 곧 명사로 남는 기록이다. 하지만 '뻗는다, 가른다, 숨을 참는다, 다시 튀어 오른다'라는 동사들은 그 사이사이의 살아 있는 순간들을 붙잡는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완성이 아니라 찰나를 붙드는 일. 생각해보면 독서 후 길게 여운을 남기는 문장들에는 화려한 명사나 형용사가 아니라, 역동적인 동사가 있었다. 인물이 무엇을 '느꼈는지'보다 무엇을 '했는지'에 마음이 기울었다. 수영과 독서, 이 둘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동사였다.
물에서 나와 목을 좌우로 돌린다. 처음과 같은 동작인데, 느낌은 사뭇 다르다. 들어가기 전엔 마음만 앞서 있었는데, 나올 때는 몸이 마음을 앞선다. 몸에는 아직 물의 감각이 남아 있고, 마음에는 오늘의 동사 하나가 새겨진다.
나아갔다. 한 단어면 충분하다.
사라 카우프먼의 표현처럼, 동사는 한 단어만으로 모든 것을 해낸다.
나를 위한, 나만의 동사를 찾아가는 일.
내일의 물속에서는 또 다른 동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헤엄치듯 읽는 법]
오늘의 수영을 동사 하나로 적어본다면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완성이 아니라 찰나로 하루를 기록하는 습관. <동사의 힘>이 알려준 건, 어쩌면 그런 읽기이자 쓰기, 그리고 살아가기의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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