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 만난 어른의 태도
"완전 가부키 화장인데?" "저렇게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른 채 수영하는 게 말이 되는 거야?" "저 사람, 향수 냄새도 나더라." "이건 말이 안 되지!!!"
걷는 레인의 어르신들이 한 방향을 보며 웅성거리셨다. 사이드 턴을 하다가 부딪힘 사고라도 난 건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웅성거림이 또렷이 들렸다.
"저 여자 좀 봐봐. 얼굴에 선크림 맞지?"
"젊은 사람이 왜 저러나 몰라. 우리 눈이 맞지? 안 씻고 들어온거지?"
매일 수영장에 나온 지 한 달쯤 된 신규 회원이었다. 그녀가 입수할 때마다 진한 향수 냄새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제발 좀 씻고 오라고 외치고 싶은 걸 참은 게 벌써 여러 번. 극소심 최강내향형 성격 탓에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그저 째려보기만 했다. 무섭게. 신경질적으로.
물속이라 그녀는 내 신경질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럴수록 나는 발차기에 힘을 실어 티를 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알아채지 못하는 그녀 때문에 오히려 나 혼자 열이 올랐다. 결국 롤링도 잊은 채 막무가내로 팔만 휘저었다.
결과는 어깨 통증이었다.
며칠째 한의원 치료를 병행하던 참이었다. 가부키 화장을 알아봐주신 어르신들의 시력에는 박수를, 그녀에게는 따끔한 경고 한마디를 보내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안고 천천히 배영으로 갈아탔다.
어느 순간, 웅성거림이 고요로 바뀌었다. 왕언니 한 분이 그녀의 레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계셨다. 그녀가 레인 끝에 다다르자 어르신이 다가가 말을 건네셨다.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표정만은 또렷이 보였다.
잠시 후, 그녀가 조용히 샤워실로 걸어나갔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다. 나는 자유형으로 전속력을 내 레인 끝까지 헤엄쳐 갔다.
"내가 말했어. 수영 전에 샤워하고 들어와야 한다고, 선크림이나 화장도 지워야 한다고. 얼른 나가서 씻고 온다며 나갔어."
왕언니가 전해주신 상황은 간단했다. 그런데 그 표정이 자꾸 떠올랐다. 불편함을 분명히 전달하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상대가 기분 나쁠까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고르시던 모습.
사실 이건 수영장 매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입수 전 샤워를 하지 않은 회원이 불편했다면, 물속에서 혼자 짜증을 삭이는 대신 안내데스크에 건의하는 편이 더 나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왕언니처럼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건네거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채 몸으로 화풀이를 한 대가는 결국 내 어깨로 돌아왔다.
온라인카지노북 작가 조선희는 『나이 60, 생판 남들과 산다』에서 감정과 태도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감정은 감정으로 끝나야 한다. 감정이 태도가 되면 그건 금세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신호가 되고, 반복되면 관계의 패턴이 되어 버린다." _ p.223, 조선희,『나이 60, 생판 남들과 산다』
기분 나쁜 날, 아프거나 피곤한 날, 뜻밖의 불쾌한 감정들. 누구나 겪는 일이다. 문제는 그 감정을 태도에 실을 때 생긴다. 감정은 감정으로 흘려보내야한다는 걸, 어깨 통증을 얻고서야 깨달았다.
오십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진짜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발차기로 신경질을 표현하는 대신, 왕언니처럼 다가가 웃으며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젖은 수영복을 건조대에 널며 다짐한다.
다음번엔 째려보는 대신 다가가보자고.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오늘도 나는 조금씩 물속에서 어른이 되어간다.
[헤엄치듯 읽는 법]
화가 날 때는 잠시 레인 끝에서 숨을 고른다. 감정을 삭이지 못한 채 팔을 휘젓다 보면 몸도 마음도 상하기 마련이다. 조용히 다가가 말을 건네는 왕언니의 태도처럼, 바카라 속 문장 하나가 오늘의 내 태도를 조금 더 다듬어준다.
#수영 #수영일상 #수영에세이 #일상에세이 #독서 #독서일상 #헤엄치며읽다 #조선희 #나이60생판남들과산다 #감정이태도가되지않도록 #어른의태도 #온라인카지노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