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속도를 이해하려는 마음
"어쩜 그렇게 빨리, 오래 수영을 해? 내가 한 바퀴 도는 동안 자기는 두 바퀴 넘게 도나 봐. 수영 얼마나 배웠어?"
"20년쯤 전에, 열 달 정도요."
"그럼 그때부터 이렇게 매일 수영을 한 거야?"
"아니요. 2년 반 전에 이 수영장을 다니면서 다시 시작했어요. 20년 만에요."
한 레인에서 나란히 헤엄치던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나도 처음엔 자기 따라가 보려다가 다리에 쥐가 났잖아. 그다음부턴 그냥 마이웨이야. 탈 안 나게, 무리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하는 게 최고더라고."
느릿느릿 평영으로 물살을 가르는 어르신을 볼 때마다 속으로 묻곤 했다. '저 속도로도 운동이 될까?' 답을 알 길 없던 나 홀로의 물음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작년엔 매일 서른 바퀴를 쉬지 않고 뺑뺑이로 돌았다. 그 덕에 척추기립근이 조금 붙어 허리는 한결 편해졌지만, 발목에 무리가 왔다. 결국 올봄에는 수영을 한 달 통째로 쉬어야 했다. 무리하다 아예 멈추는 것보다, 내 몸에 맞는 적정선을 찾는 편이 낫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어르신의 마이웨이와 내 발목이 가르쳐준 답은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레인 위에는 저마다 다른 속도가 있다는 것. 여유로워 보이는 평영도, 성급해 보이는 질주도 실은 저마다의 몸과 시간을 통과해 나온 최선이라는 것.
류혜인 심리상담 전문가는 『동화가 마음을 읽어줄 때』에서 '왕자와 거지'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낸다.
"생김새가 똑 닮은 두 소년은 장난으로 서로의 옷을 바꿔 입다가 예기치 않게 서로의 삶을 살게 된다. 왕자는 하층민의 고통을 몸소 겪고 나서야 백성을 헤아리는 왕이 되었고, 거지는 왕궁 생활을 통해 자신도 존중받을 사람임을 깨닫는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의 자리를 바꿔 살아보며 미처 몰랐던 세계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타인의 입장을 배워간다." _ p.152, 류혜인, 『동화가 마음을 읽어줄 때』
평영으로 유유히 도는 어르신을 보며 품었던 내 의아함. "왜 자유형이랑 배영만 해? 평영이랑 접영은 안 배워?"라며 누군가 나에게 던졌던 물음. 그리고 '내 몸은 왜 이렇게 부실할까' 스스로를 다그치던 숱한 순간들.
돌이켜보면 이 세 장면의 시작점은 같다. 상대의 사정을 다 헤아리지 못한 채, 내 기준으로 재단하려던 마음.
비슷한 처지가 되어본다고 해서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해해보려는 마음의 결은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왕궁의 답답함에 지쳐 있던 왕자가 태어나 처음 겪는 폭력과 무시 앞에서, 자신이 그동안 누려온 것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뒤늦게 알아차렸듯이 —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제는 세차게 발차기를 하는 쪽이었다가, 오늘은 물살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쪽이 되기도 한다. 매일 다른 속도와 역할 사이를 오가며 살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 하나. 옆 레인에서 나와 다른 영법으로, 다른 속도로 헤엄치는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는 것. 타인을 헤아리는 연습은 어쩌면 거창한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오늘, 내 옆 레인에서 유유히 평영을 하는 그 사람의 속도를 그대로 인정하는 일.
그 인정 하나가, 어쩌면 시작이다.
[헤엄치듯 읽는 법]
서로 다른 속도로 헤엄치는 두 사람.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이해해보려는 마음은 가능하다는 걸 배운다. 오늘 내 옆 레인의 속도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부터,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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