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소설 속 '우리의 첫' 게임
"우리의 첫!"
은희경 작가의 신작 소설 『시간의 감촉』에서 마음을 잡아끄는 놀이 하나를 발견했다.
게임 이름은 '우리의 첫'이다. 놀이 방법은 세 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우리의 첫!'하고 외친다. 한 명의 플레이어가 '나의 첫 OO은 OO입니다'라고 받은 다음에 '그리고 생각나는 것은'이라고 시작하면서 자신의 첫번째 경험을 이야기 한다. 나머지 두 명의 플레이어도 돌아가면서 2번 플레이를 한다. 시범을 보일 겸 다니엘이 첫번째 플레이어가 된다.
"우리의 첫!"
"나의 첫 여행은 분당입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것은, 분당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얼굴입니다."
_ 출처: p.237, 은희경, <시간의 감촉>
플레이어는 나 혼자다. 입추가 지나 선득해진 바람이 창틈으로 들어오는 저녁. 선선해진 공기가 '첫 가을바람' 처럼 느껴진다. 나 홀로 집에서 외쳐본다.
"우리의 첫!"
"나의 첫 수영장은 성북종합레포츠센터입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것은 2층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입니다."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은 직후였다. 그때는 혼자 몸을 일으켜 앉는 것조차 버거웠다. 지금이야 분원이 곳곳에 생겼지만, 그 시절엔 청담동 본원뿐이던 우리들병원에서 신경주사를 맞으며 통원했다. 의사는 신신당부했다.
"휴직 기간 동안 꼭 수영이나 아쿠아로빅으로 재활하세요." 그 말을 핑계 삼아 찾아간 곳이 성북종합레포츠센터였다. 통증이 가라앉으면 시작해야지, 하고 미루고 미루다 복직을 코앞에 두고서야 물에 들어갔다. 그리고 금세 그만두었다. 성북의 수영장은 그렇게 나의 첫 수영장이자, 첫 포기로 남았다.
"우리의 첫!"
"나의 첫 수영강습은 서초동 수영장입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것은 영재와 부진아입니다."
수영장 이름이 가물가물해 네이버 지도를 한참 뒤졌다. 근처 아파트가 재건축되며 그 시절의 수영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했다. 오전 7시 강습에 여덟 명이 등록했지만, 자리를 지키는 얼굴은 늘 네다섯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출석 고정 인원은 나와,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남성 회원 두 명.
자유형과 배영 진도를 쭉쭉 빼는 나를 그들은 "영재 회원"이라 불렀다. 문제는 평영과 접영이었다. 허리디스크 통증에 시작하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몸이 가라앉았다. "영재 회원님, 갑자기 부진아가 되셨네요." "그러게요. 하하하." 영재와 부진아가 동일인물이라니. 민망함에 더 크게 웃으며 그 순간을 넘겼다.
강습 열 달째, 그들이 접영을 하는 동안 나는 1번 주자로 자유형을 했고, 평영 시간이 되면 배영을 했다. 고정 인원이 하나둘 늘어갈수록 민폐 회원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슬며시 발을 뺐다.
"우리의 첫!"
"나의 첫 인생 수영장은 지금 다니는 목동의 수영장입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것은 황제수영입니다."
인생 수영장이라 부를 만하다. 레인은 총 네 개, 그중 한 곳은 걷기 전용이지만 붐비는 법이 없어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레인을 통째로 차지하는 '황제수영'도 가능하다.
반투명 천장은 비바람에 거뭇거뭇 얼룩졌지만, 오히려 그 얼룩 덕에 오늘이 흐린 날인지 쨍한 날인지 단번에 가늠할 수 있다. 맑은 날 오전 11시, 햇빛이 정통으로 쏟아지면 배영을 하는 동안 눈을 잔뜩 찌푸리게 된다.
이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루틴의 힘을.
강습 없이도 홀로 꾸준히 몸을 담그다 보면, 어느 날엔 힘을 더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또 어느 날엔 새로운 동작에 도전하며 조금씩 자란다는 것을.
최고의 스승은 일타강사가 아니라, 매일 같은 시간 물에 들어가는 루틴 그 자체라는 것을.
"우리의 첫!"
"나의 첫 글쓰기는 수영입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것은 온라인카지노북입니다."
매일 물속에 몸을 담그다 보니 실력은 조금씩 늘고, 재미는 성큼성큼 붙었다. 첨벙첨벙, 혼자 손과 발로 물장구를 치면 물은 찰방찰방 화답한다. 텀벙, 잠수했다 솟아오르면 숨은 헐떡헐떡, 웃음은 피식피식. 물과 노는 시간이 곧 나와 노는 시간이 되었다.
이 재미짐을 혼자만 품고 있기엔 아까웠다. 게다가 오전의 기억도 오후만 되면 흐릿해지는 나였으니, 문제는 기억력이었다. 그래서 기록을 시작했다. 온라인카지노북에.
그렇게 하나둘 쌓다 보니 어느새 네 번째 온라인카지노북을 연재하고 있다. 온라인카지노 작가로 승인받은 날짜는 2025년 7월 31일. 그로부터 약 1년, 이제는 조금 더 용기를 내보고 싶어졌다.
글쓰기 폴더 아래에 '출간 계획' 폴더를 하나 새로 만들었다.
주제도, 출판사도, 출간계획서 마감일도 아직은 없다. 폴더 이름 하나 지어놓았을 뿐인데도 괜히 뿌듯하다. 벌써 다음 "우리의 첫!" 게임이 시작된 것 같다.
"우리의 첫!"
"나의 첫 바카라 출간은 OOO입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것은 OOO입니다."
이번만은 빈칸을 채우지 못한 채로 게임을 끝낸다. 성북의 포기도, 서초동의 영재도, 목동의 루틴도 모두 지나고 나서야 완성된 문장이었다. 그러니 이 빈칸 역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채워질 것이다.
그날이 오면 다시 외쳐야겠다.
"우리의 첫!"
"나의 첫 바카라은..."
[헤엄치듯 읽는 법]
소설 속 사소한 놀이 하나가 삶 전체를 되짚는 질문이 될 때가 있다. '우리의 첫'이라는 게임도 그렇다. 수영장 이름 하나를 떠올렸을 뿐인데, 포기했던 순간과 다시 시작한 순간이 줄줄이 따라 나왔다. 바카라 속 문장을 내 삶에 대입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헤엄치듯 바카라을 읽는 방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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