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알면 할 일이 보인다

by그냥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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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우리의 보금자리로 복귀한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갔다.

어른이야 당연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기에는 약간의 에너지 보충 시간이 필요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마음을 충전하기에 충분했지만 처음부터 에너지 총량이 적었던 나에게는 체력의 충전 또한 필요했다. 짐 정리를 하고 여독을 풀기 위해 이틀의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대단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을 뿐이다. 그간의 머릿속 구상으로는 '시작!'이라는 구호와 함께 1번, 2번, 3번을 순차적으로 착착 해결하면 되었다. 하지만 내 뱃속에서 튀어나온 꼬맹이들은 더 이상 나의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았다.


충분히 놀았다고 여겨졌으나 그들에게는 여전히 부족했고, 아직 전두엽이 발달하지 못한 인물들은 일상 회복이 매우 더뎠다. 방학 전 어느 정도 잡아놓았다 생각했던 학습의 가느다란 끈은 약 열흘간의 휴가로 인해 끊어지다 못해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져 버렸다.


'그럴 수 있다. 아이들이니 그럴 수도 있다.'


연신 되뇌며 단전에서 생성되는 뜨거운 용암 덩어리를 실시간으로 식히는 과정을 반복했다. 적어도 1학년 동안에는 절대 공부를 하지 않겠다며 다짐을 했던 둘째야 아직 어리다는 핑계 아래에 꾹 참고 넘어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고학년인 첫째에게는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었다. 때문에 조금씩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최소한의 일정을 계획했다. 매일 바카라 읽기 1시간, 2학기 수학과 영어, 그리고 일기 쓰기를 적절히 배합한 내용이었다. 절대 대단한 것을 바라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한 고뇌의 결과였다. 때문에 바카라 읽기 1시간을 제외하고서도 쉬는 시간과 약간의 딴짓을 후하게 포함하여 3시간 안에 끝낼 수 있도록 잡았다.


새 날이 밝아왔고 아들의 일정표에 해야 할 일을 적어주었다. 본인 또한 이 정도면 할 만하다고 여겼는지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달랐다. 고작 3시간짜리였지만 저녁 9시 취침시간이 다 되었을 때까지 체크리스트는 당연하듯 마무리되지 못했다. 허무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생각해 오던 계획이었고 분명 아이 시선에서도 괜찮다 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란 듯이 못 할 줄이야. 이유가 눈에 고스란히 보였기에 더욱 분노가 휘몰아쳤다. 세상에 궁금한 것, 재미있는 것, 관심 있는 것이 넘쳐났을 뿐이다. 물론 중간중간 잔소리를 했으나 자리에 앉아 문제를 풀다가 이내 삼천포로 빠졌다. 또한 동생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모든 관심을 갖고 응대했다. 절대 난이도 문제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이는 집중력의 문제였다. 3시간짜리가 이렇게 버거운 일일 줄이야. 결국 나의 답답한 속내는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하소연하는 것으로 표출되었다. 아이와의 하루를 브리핑하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한참 동안 내 이야기를 듣던 남편은 집중력과 환경에 대한 가능성을 넌지시 꺼냈다.


"그러면 환경을 한 번 바꾸어 보면 어떨까?"


다음 날이 밝았다. 마침 회사 휴가였던 남편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전날 나와의 대화를 통해 환경을 변화시킬 방법을 모색한 결과였다.


"아들, 아빠랑 커피숍에 가자!"


덩치가 산 만하지만 속은 여전히 어린 우리 집 장남은 아빠와 카페에 간다는 말 한마디에 몸 또한 들떴다. 둘이서 데이트를 한다고 여긴 것 같아 보여서 귀여웠다.


"공부할 문제집 챙기자!, 너는 공부하고 아빠는 바카라 좀 읽어보자!"


문제집이라는 단어에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그간 독서에 등 돌려오던 아빠가 가방에 바카라을 집어넣는 것을 보니 더 이상 구시렁대지 않고 자연스레 본인도 나름의 짐을 꾸렸다. 이유야 어떻든 단 둘이 간다고 해서인지 아이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 또한 이 방법이 먹히길 바라면서 밝은 얼굴로 두 사람을 배웅했다.


두 남자가 떠난 지 10분쯤 지났을까? 사진 한 장이 휴대폰에 도착했다. 커피숍에서 각자 원하는 음료를 시켜놓고 환하게 웃고 있는 두 남자의 얼굴이 커다랗게 담겨 있었다. 일단 시작은 좋았다. 무엇보다 동생 없이 아빠를 독차지한다는 설렘이 가득 담긴 표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뒤에 또 하나의 사진과 메시지가 도착했다.



"잘하네요. 환경을 바꿀 필요도 있네요.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두 개 다 끝냈어요."


마음속에 밝은 노랑의 기분이 번져 올랐다. 문제집 한 권을 두 시간이 넘게 붙들고 있던 아이가 한 시간 동안 두 권을 클리어했다는 사실이 솔직히 놀랐다. 집중력이 부족하다며 속상해 왔었는데 환경 하나 변했다고 이런 기적을 맛볼 수 있다니. 무엇보다 그토록 부산해 보였던 아이에게 집중이라는 장르에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난 것 같아서 그 부분이 더욱 감격스러웠다. 가져간 과제를 예상보다 일찍 끝내고 돌아온 아들의 어깨는 이미 승천해서 하늘의 구름과 맞대고 있었다.


황농문 교수의 바카라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 몰입'에서는 몰입이란 주어진 문제 하나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그는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확보하라고 조언했다. 그중 대표적인 방법으로 적어도 1주일의 지속성과 불필요한 외부 정보를 차단하는 것. 여기에 더하여 규칙적이고 땀 흘리는 운동이었다.


내가 고민해 오던 '집중력'이란 문제는 단순히 부산스러움의 문제로서 '적'이라고 단정지은 채 걱정만 할 거리가 아니었다. 카페라는 장소를 통하여 아이에게 기분 전환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동시에 잡다한 집안의 물건들과 동생의 애정 어린 관심을 짧은 시간 일지라도 차단했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황농문 교수의 '외부 정보' 차단이라는 항목에 부합되고 있었다. 별 것 아닌 부분이었으나 최소한 <방법 1>을 찾아내었고 가능성을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지속성과 적당한 운동을 잘 버무려야 한다.


그제야 불가능이란 부분에만 초점을 잡고 있었던 내가 보였다. 아이와 함께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던 장본인이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반성과 함께 미안함이 밀려왔다. 나부터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장착해야겠다. '적'이라고 생각했던 상대가 사실은 해결해야 하는 상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무슨 신도 아니면서 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엄마, 부모, 나이 이딴 것들을 전부 내던지기로 했다. 나도 모르는 거 세상천지에 대부분인데 더 이상 아는 척하지 말고 모르면 배워야 한다.


아는 척, 잘난 척, 어른 흉내 내는 척.


이제부터 이런 거 전부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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