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의 시작

by그냥사탕


1.jpg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식을 끝내고 평소보다 일찍 귀가한 두 아이들이 거실 한복판에 앉아 가방 문을 열어젖혔다. 이들의 앙증맞은 손을 거쳐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다름 아닌 한 학기의 쓸모를 다한 교과서 몇 권과 방학 관련 종이들이 전부였다. 학년도, 성별도, 심지어 성격조차 서로 다르건만 표정은 두 아이 모두 똑같이 환하다. 이럴 때 보면 한 배에서 태어난 유전자임이 분명했다. 덕분에 텅 비어있던 거실이 청소의 유무와는 상관없다는 듯 어느새 초기화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미 집 안의 공기는 달라졌다.


아이들에게 방학이란 그야말로 본인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다. 늦잠을 잘 수 있고, 불편한 겉옷에서 벗어나 속옷 바람으로 온종일 지낼 수 있는 자유로운 타잔들의 전성기가 되어 버린다. 우리 집 초등학생들의 방학 목표는 매우 단호하고 명확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것'


평소 분 단위로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는 말 그대로 흔한 남매이지만 '방학'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세상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버린다. 나의 동의 따위는 없었음에도 알찬 방학을 위해 제각기 깔깔거리며 목록을 만들어갔다. 티 없이 맑은 꼬맹이들의 진지함을 바라보는 나 또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는 한줄기의 서늘한 바람이 비집고 불어오기 시작했다.


'여름방학 수학 선행반이 열린데요.'

'영어 학원 방학 특강 시간표가 나왔어요.'

'방학 동안 역사 탐방 크루 선착순 모집하는데 신청하실 분 있으신가요?'


동네 단톡방과 엄마들 사이에서는 이미 몇 주 전부터 방학 일정에 대한 이야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에 나는 섣불리 끼어들 수 없었다.




눈 깜빡하니 본격적인 방학이 시작한 지 벌써 1일 차가 되었다. 등교라는 규칙에서 벗어난 기쁨을 전날 저녁에 한껏 뿜어내더니 결국 기상시간 따위는 이들의 삶에서 사라졌다. 덩달아 나 또한 정신없이 분 단위를 체크하며 아이들을 깨울 명분도 없어졌다. 일종의 여유라는 것이 생겼다는 건 나름 장점이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다가 무심결에 주방 창문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쪽문 너머에 펼쳐진 아파트 정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노란색 학원 승합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행렬에 당장 합류해야 하는 아이들은 발걸음이 바빠 보인다. 여름방학 특성상 짧은 기간이지만 모두가 새로운 스케줄로 무장한 채 다음 학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집안을 둘러보았다. 속도감 있는 바깥세상과는 다르게 우리 집 시계는 여전히 고요하게 멈춰 서 있는 중이었다.


사실 내가 아이들에게 '자유'와 '휴식'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가정 형편'


솔직히 말하자면 '학원'에 대한 개인적인 시선은 긍정 반, 부정 반이었다. 하지만 나는 별로라고 해도 생각과 현실은 다른 부분이었다. 부모라면 대부분 그러하듯 좋은 것이 있다면 내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도움이 된다면야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한 번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흔한 국, 영, 수 학원 하나 보낼 수 없는 것이 우리 집의 현실이었다. 고물가 시대에 살면서 학원 하나만 하더라도 한 달에 나가는 금액을 떠올리면 당장 통장 잔고를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결국 한숨을 삼켜야만 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내 새끼를 위해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삶. 나는 참으로 자격 없고 볼품없는 부모였을 뿐이었다. 학원으로 향하는 동내의 또래 아이들을 볼 때마다 부모로서 묵직한 미안함은 매 순간 가슴을 짓눌렀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아이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건 아닐까?'

'남들은 앞서 달리는데, 아무것도 안 시키고 놀리기만 하다가 세상에서 도태되면 어쩌지?'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능력 없는 부모를 원망하겠지...'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당장 다음 달을 걱정하는 내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방학이라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축제와 다름없었으나 나에게는 빈곤과 무능함을 매 순간 확인받는 잔인한 무대였을 뿐이었다. 내가 해주지 못하는 사교육의 부재가 먼 훗날 아이에게 커다란 결핍으로 남을까 봐 매 순간 무서워진다.


하지만 불안해하고 자바카라만 하기에는 아이의 하루가 너무도 귀했다. 더욱이 함께하는 방학은 아무리 짧아도 나에게 정말 길게 느껴졌다. 언제까지 '돈이 없어서'라는 핑계 뒤에서 불안함만 키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1년 전, 5년 전, 10년 전에도 경제적 상황은 비슷했다. 매 순간 세상이 망할 것 같은 순간이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그렇기에 자바카라만 하면서 새로운 오늘을 과거의 우울함과 동급으로 놓을 수는 없다. 더구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사교육을 못 시켜준다고 해서 그것이 합당한 이유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더욱 아이들의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낳았으니 어떻게든 바카라임져야 한다. 결국 교육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부모인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결핍의 상황을, 아이와 밀착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의 시간'으로 바꾸기로 다짐했다. 사교육 대신 '엄마'로서 나서기로 했다. 더 이상 남들의 속도를 탐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엄마라는 이름에 기대어 가장 가까이에서 내 아이의 속도를 함께하는 페이스메이커가 되는 것이다. 세상은 지금 순간에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부모일지라도 들이대야 한다. 그래야 내 아이가 거친 세상에서 바로 설 수 있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돕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집공부의 시작이자, 장기 도전에 표를 던지게 된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