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장소가 아니라 분위기였다

by그냥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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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5. 공부는 장소가 아니라 분위기였다>


집을 카페처럼 꾸며놓고 날마다 달렸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달리는 것은 언제나처럼 오로지 나의 마음 하나였다.


테이블을 깨끗하게 치우고, 잔잔한 배경 음악을 깔고, 목을 축일 수 있는 건강한 과일 음료까지 곁들이니 분위기는 카페 그 자체였다. 물론 눈 가리고 아웅 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공부가 잘 되는 것 같다며 기분 좋게 착석까지 했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란 단어가 꼭 어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며칠이 흐르고 역시나 문제는 새롭게 생겼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잘 앉던 아이가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간의 순항 궤도는 엄마의 노력이 가상해서 봐준 것이었을 수도 있다.


분명 아이의 시선에 맞춘 타이머도 그대로였고 음악 또한 거슬리지 않는 볼륨을 유지했다. 더욱이 토마토를 시작으로 블루베리, 딸기 등 카페처럼 매일 같이 다양한 종류로 대접했다. 무려 엄마표이기에 건강함은 기본이었고 심지어 공짜였다. 그런데 꼬맹이에게는 새로운 무언가가 계속해서 등장했다. 창문 밖의 구름 모양이 궁금했고, 초능력을 발휘해야 들릴 법한 새소리의 근원지를 찾아야만 했다. 또한 종이접기를 하는 동생의 색종이 색상에 대하여 조언까지 해야만 했다. 하다못해 지우개 가루의 모양까지 연구하고 있는 그의 등짝은 매 순간 나의 스매싱 욕구를 자아냈다. 결국 영혼까지 끌어모아 시행했던 집 카페 프로젝트는 그렇게 점차 힘을 잃어갔다. 물론 이 방법이 영원할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으나 적어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휘발될 것이라는 상상 또한 하지 못했다. 그렇다. 카페도 매일 출석하면 일상이 되는 것처럼 홈 카페도 매일 하니 이벤트가 아닌, 그냥 우리 집이 되었을 뿐이었다.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다. 한 번의 시도로 모든 것이 만사 오케이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적어도 스스로 그렇게 주입해야 했다. 합리화하지 못한다면 길게 나아갈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잔소리를 퍼붓고 싶었다. 어쩌면 기억에 저장되지 않은 과거의 나는 말 한마디씩 얹었을지도 모르겠다.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준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다독이면서. 그러나 초등 4학년 남자 어린이의 준비 시간은 영원히 계속되었다. 이에 대한 불안감은 당연하게도 나 혼자만의 몫이었다.


1차 도전은 그렇게 찰나와 같이 끝이 났다. 다행인 점은 나는 사람으로 남았다는 것이었다.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고 지켜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이 아이를 계속해서 방해하는 것인지 원인을 찾기로 했다. 해야 할 것은 고작 몇 가지였을 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무언가 들이 너무 많았다. 굳이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를 강요하지 않았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곁눈질로 집중 관찰이 시작되었다. 실패가 있다면 그다음 도전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 다만 같은 결과를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원인 파악이 먼저였다.



- 시간 : 더 이상 타이머의 압박도 통하지 않음

- 소음 : 온 우주의 소리를 다 챙겨 들으려고 함

- 동생의 움직임 : 공부할 때에만 한없이 다정한 오빠. 동생을 묶어둘 수가 없다

- 잔소리 : 내가 말문을 닫아야지...

- 과제량 : 개수의 문제인가, 난이도의 문제인가

- 간식 : 있으면 먹기만 하고, 없으면 집중을 못 함

- 시작하기 전의 기분 : 비위 맞추다가 내 비위 상해 가고 있음


아이를 지켜보며 문제가 될 만한 모든 요소를 찾았다. 노트 위에 늘어선 각종 핑곗거리를 둘러보면서 어쩌면 딱 하나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이 모두가 제각기 어우러지면서 시너지를 높이는 가능성 또한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아이도 처음 걷는 길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은 가장 중요했다. 실수투성이여도 하나씩 풀어가면 되었다. 어쩌면 이 과정 모두가 집 공부 실험 일지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동안 어떤 엄마였을까. 나 홀로 목표를 잡았고, 실행을 아이에게 지시했다. 어쩌면 권유라는 예쁜 이름을 붙인 강요였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성격을 닮은 첫째. 혹시 아이도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았을까 싶어 직접 물어보았다.

“엄마가 너무 공부하라고 몰아붙이고 있었니?”

“네”


짧고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흔한 변명 따위는 없었다. 나의 태도가 아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깨닫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엄마의 역할!’


그동안 엄마란 의사, 요리사, 비서, 선생님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간 엄마는 ‘공부해!’를 외치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면 공부할 수 있을까?’라는 관찰자가 되어야만 했다. 더욱이 내 아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귀한 아들이었다. 그러니 세상이 만들어놓은 규격에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었다.


한 번에 하나씩!


다양한 방해물을 한꺼번에 수정하지 않았다. 대신 하나의 작은 실험들로 생각했다. 우선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내 눈에는 여전히 너무도 작은 과제량이었으나 매번 바카라상에 앉을 때마다 ‘너무 많아요’를 노래처럼 부르던 아들이었다. 그 때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과제를 정하는 권한을 넘긴 것이다. 물론 이제 갓 10대에 진입한 아이에게 전권을 줄 수는 없었다.


약 10가지의 보기를 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고르도록 했다. 단, 국어, 영어, 수학 과목에 맞춰 최소한 한 가지씩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조항을 내걸었다.

생전 처음 자신의 공부를 선택할 수 있게 된 아이는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임했다. 머릿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길은 없었으나 한 가지 만은 확실해 보였다. 나의 간절함 못지않게 본인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간 집중하라는 엄마의 구박에 못 이겨 억지로 연필을 쥐었던 꼬마가 자신의 일정을 꾸리는 모습이 퍽 인상 깊었다.


국어 – 문제집 2장

수학 – 문제집 2장

영어 – 문장 문제집 1장

일기 쓰기


깊은 고민 끝에 야심 차게 골라낸 결과물은 제법 구색을 맞추고 있었다. 또한 항목에는 없었던 조항을 직접 제안하기도 했다.


본인이 원하는 바카라 무제한 읽기!

물론 아이가 원하는 도서 목록은 당연하게도 학습을 가장한 만화바카라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기특했다. 언제나 수동적으로 임해왔던 공부라는 분야에서 본인이 제 입맛에 맞게 꾸려가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마냥 아가처럼 보였는데 자신의 선택에 따른 의지가 두 눈에 활활 거리고 있었다.

이번에 시도하는 두 번째 도전 또한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가서 다시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면 된다. 어쩌면 이러한 과정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게 되겠지. 그런데 그 또한 별것 아닌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간 나는 아이를 공부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방법이 아닌 내 아이를 알아가고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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