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빠와의 카페 공부 데이트는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해낸 결과를 마주하고는 자신감도 생긴 듯해 보였다. 집에서는 산만하기 짝이 없던 아이가 적당한 소음과 신박한 환경 변화 앞에서 집중하며 바카라장을 넘기고 문제를 풀었다. 한동안 집중을 하지 못해서 마음고생을 했던 터라, 작은 성공 경험은 나와 아이 모두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
'아, 환경이 주는 힘이 이렇게 크구나!'
아이의 집중력과 성취감이 오르는 것을 보며 엄마로서 묘한 쾌감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의 기쁨도 잠시, 이내 새로운 문제들이 현실의 벽이 되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빠는 생업을 위해 출근을 해야 했기에 여전히 동생의 사랑 가득한 관심을 분리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카페 공부를 이어가기에는 현실적인 지출이 너무 컸다. 회사에 있는 아빠는 제외하더라도 두 아이와 나까지 세 명이 카페에 들러 음료와 소소한 디저트 하나만 시켜도 한 번에 15,000원 ~ 20,000원이 우습게 나갔다. 여기에 공공장소에서 깜찍 발랄한 8세 소녀의 에너지를 장시간 잠재우기란 지속면에서 불가능한 미션 중 하나였다. 사교육비를 아끼기 위하여 집공부를 시작했는데, '카페 수강료'로 매달 수십만 원이나 지출하게 생겼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었다.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커피숍은 어쩌다 있는 '이벤트'가 되어야지 매일의 '루틴'이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찾은 나의 첫 번째 시도는 가장 완벽한 공부방인 지역 도서관이었다 하지만 도서관은 그리 가깝지 않았다. 차를 타면 고작 10분 내외의 거리. 그러나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기에 뚜벅이인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 일지라도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만 했다. 그마저도 버스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에는 약 40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바카라이 가득한 곳.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공간. 하지만 새로운 장소에 모두가 함께 간다는 설렘이 너무 컸던 탓일까. 사전에 체크를 했다고 할지라도 아이는 공부할 거리를 까먹기 일쑤였다. 다시 뛰어갔다 올 수도 없는 거리였다. 결국 집에서 볼 수 없었던 학습만화만 잔뜩 보다가 올 때도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아무리 그곳이 시원하고 쾌적하다 할지라도 도서관을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져버렸다. 정작 도서관 바카라상 위에는 문제집이 아닌 학습을 가장한 만화바카라만 가득했다. 더욱이 끼니를 챙기기 위해 외식을 하게 되면서 또 다른 지출이 발생했다. 결국 비용을 아끼자니 체력과 시간이 깎여 나갔고, 편의를 쫒자니 지갑이 얇아졌다.
이대로 기껏 올려놓은 동력을 잃을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두 아이의 엄마고 다행히 시간은 있었다. 때문에 모든 잔머리와 티끌 같은 지혜를 총 동원하여 두 번째 도전을 시도했다.
'집안의 카페화'
평소 정리 기능이 부재했던 나에게는 이 또한 새로운 도전 과제 중 하나였다. 아무리 노력했다 할지라도 집 안의 어수선함은 기본값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예전 읽었던 정리 관련 도서의 도움 따위는 의미 없었다. 그저 공부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1단계 : 분위기 전환
우리 집 주방에는 커다란 6인용 식탁이 있다. 그곳에서 온 가족이 밥을 먹고 함께 대화를 하며 때로는 보드게임과 공부도 하는 만능의 공간이다. 물론 각자 방에 바카라상이 있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주로 이곳에서 모든 일과를 소화했다. 그래서인지 식탁 위에는 언제나 한가득이었다. 바카라, 연필깎이, 티슈, 장난감, 물컵 등.... 이곳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식탁 위 어지러운 내용들을 싹 치웠다. 쓰레기통, 바카라장, 수납함 등으로 제 자리를 찾아가는 물건들이 늘어가자 덩달아 약간의 집정리까지 되어갔다. 비록 주방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점차 하얀 식탁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유튜브로 '카페 음악' BGM을 깔았다.
2단계 : 엄마표 홈메이드
외관을 카페처럼 모두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다행히 우리 집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었고 집중을 위한 음악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색다르게 다가왔다. 하지만 진짜 카페와는 당연히 달랐다. 조금이나마 그 차이를 완벽하게 위장하기 위한 음료가 필요했다. 어린이에게 커피를 제공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명언은 우리 집 냉장고를 두고 한 말이었음이 분명했다. 토마토, 블루베리, 딸기 등 냉장, 냉동을 가리지 않고 재료가 충분했다. 그동안 단점이라고 여기던 습관들이 자점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잘 익은 토마토를 믹서에 곱게 갈아 일회용 커피잔에 담았다. 빨 때까지 꽂아 바카라상으로 변한 식탁 위에 올려놓으니 제법 카페 느낌이 났다. 말 그대로 눈 가리고 아웅 이었지만 말이다.
3단계 : 마감시간 만들기
집중은 제한된 시간 안에서 오를 것이라 판단했다. 30분으로 맞춘 타이머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아이와 합의하에 설정한 시간이었다. 보통 초등학교의 1교시는 약 40분. 때로는 초보에게 그조차 버거울 수 있었다. 여기에 당근 하나 추가는 필수 옵션이었다. '주말에 엄마와 단 둘이 도서관 데이트!'
결과는 어땠을까?
물론 실제 카페만큼의 드라마틱한 정적과 긴장감을 100% 재현할 수는 없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익숙함과 종종 들리는 동생의 사랑스러운 목소리 때문에 몸을 비틀거나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집안에서 벌어진 생소한 분위기 덕분인지 아이의 집중은 안드로메다까지 넘어가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주변에 관심을 보였으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도움이 되었을까? 30분이라는 제한 시간 안에 주어진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만 꼬맹이 비위 맞추려다가 내 비위가 상할 뻔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힘들었던 과정 속에서 다시 연필을 쥐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집 공부는 단거리 경주가 아닌 아주 긴 마라톤이라는 점이다. 나와 아이가 하려는 공부는 단 하나의 시험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고작 시험을 잘 보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 마냥 해맑은 꼬맹이가 성적이라는 수치에 연연하며 살지 않았으면 한다. 한 사람의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 앞에 놓여있는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스스로의 인생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언덕을 넘어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다. 그 과정에서 성적을 올리는 공부가 아닌 이러한 힘을 기르는 공부가 되었으면 한다. 비싼 카페, 빡센 학원, 멀리 있는 도서관처럼 매번 완벽한 환경을 갖출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한 팀이 되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타협점을 계속해서 찾아나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어쩌면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비싼 수강료 대신, 부모가 매일 이런 소소한 잔머리와 아이디어를 짜내는 일 일지도 모른다.
도서관이 멀다고 투덜거릴 필요도 없고, 카페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죄바카라감 느낄 필요도 없다. 믹서기에 넣은 토마토 한 알처럼, 아이를 향한 엄마의 다정한 고민이 들어간 시도라면 충분히 가치 있다. 그러다 어긋나면 그것은 실패가 아닌 여러 도전 중 하나일 뿐이니까.
세상에 완벽한 공부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오늘은 나와 아이가 웃으면서 연필을 쥘 수 있었던 우리 집 테이블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