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도 취향이 있다

byLayla Lee


내가 포스터만 보고도 안보는 류의 영화는

부모와 자식,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별을 전면에 내세운, 대놓고 신파를 표방하는 류들이다.

노래도 대놓고 처절하고 슬픈 음악은 안 듣는다.


둘 다 슬픔을 '지루'하게 만들어놔서.

나 슬픈 얘기 할 거다, 이거 정말 슬프지? 나 슬픔까지 느끼는 사람이야. 우리 울어보자, 이 느낌이다.


그런데 요즘 듣는 노래 재생목록을 보니까

스웨디시팝 느낌 드는 노래들,

이승환, 김광진, 이무진 노래들 중에 대부분 마이너 코드길래

즐거운척 템포는 빠른데 멜로디는 하나같이 은은하게 우울한 노래들이네 싶었다.

리드미컬한 노래들이 당겨서 음 '나는 밝은노래를 좋아하네'하고 착각했는데.


그리고 그 우울함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구조 안에 담겨 있다.

여기서 치유가 일어나는 것 같다.

음악이 우울함을 없애는 게 아니라, 우울함을 경험하는 방식을 바꾼다.

아, 우울함을 아름다움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됐구나.

전에는 우울함에 지배당하다가 아얘 외면했다.

들으면 우울해지고, 그래서 한동안 음악을 거의 안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내 감정과 맺는 관계가 달라진 것 같다.

내 안에 우울함이 있다는 사실과 그 우울함에 지배당하는 건 별개의 일이니까.


예술에는 이런 능력이 있다. 감정을 직접 설명하거나 해결하지 않고도, 감정에 형태를 부여해서 사람이 그것을 견디고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것.


슬퍼도 아름다울 수 있고, 외로워도 충만할 수 있고, 우울한 정서를 가지고 있어도 그 안에서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

원래 내 안에 있던 감정을 좋은 쪽으로 다루게 된 것.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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