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순간을 좋아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하고, 그 사이에서 공통된 원리를 찾아내는 순간.
영감은 '비교적' 쉽게 찾아온다. 음악을 듣다가 장면이 떠오르고, 누군가의 말투를 관찰하다가 인물의 성격을 발견한다. 영화 한 편을 보다가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진다. 그렇게 떠오른 씨앗 생각을 붙잡아 글을 쓰면 된다.(말로는 쉽지만)
그런데 최근에는 영감이 찾아오는 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완성해 내는, 실행이다.
재미있는 장면을 쓰는 것과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전혀 다른 일이라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
글을 쓰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떠올리게 되었다. 하고 싶어서 시작한 글 쓰는 행위 안에서도 순위가 있다는 사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면 나머지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사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좋아하지 않는 일도 해야 한다는 사실까지.
드라마를 쓴다고 해보자. 인물의 욕망이 충돌하는 장면, 감춰둔 마음이 드러나는 장면, 예상하지 못한 행동으로 관계가 뒤집히는 장면은 즐겁게 쓸 수 있다. 영감이 강하게 찾아오면 몇 개의 장면을 연달아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만으로는 씬 40개 이상의 60분짜리 드라마 12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물이 왜 그 장소에 가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앞에서 벌어진 사건이 다음 사건을 어떻게 일으키는지 설계해야 한다. 재미있는 장면과 장면 사이를 연결해야 하고, 처음에 생각했던 구조가 맞지 않으면 수정해야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장면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장면도 써야 한다.
그때부터 창작은 다른 종류의 일이 된다.
영감이 찾아왔을 때는 쓰고 싶은 것을 쓴다. 그러나 완성을 목표로 삼으면 써야 하는 것을 쓰게 된다.
물론 여기서 써야 하는 것이란 단순히 분량을 채우기 위한 문장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필요한 장면을 쓰는 것이다. 인물의 욕망이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고, 그 행동이 사건을 일으키게 하고, 사건들이 쌓여 하나의 결말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에서,
발견한 것을 결과물로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력의 의미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노력이라고 하면 오래 앉아 있는 것, 매일 정해진 분량을 쓰는 것, 하기 싫어도 참고 작업하는 것을 먼저 떠올렸다. 물론 그런 행동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완성이라는 목표를 잊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 작품을 움직이는 인물의 욕망을 계속 생각하는 것. 집필하는 동안 그 욕망이 흐려지지 않도록 점검하는 것. 그리고 생각한 것을 실제 장면으로 옮겨 끝내 결과물로 만드는 것.
이를테면 내가 만든 인물이 권력을 원한다고 해보자. 그 욕망은 정치적인 야망을 드러내는 몇몇 주요 장면에서만 나타나서는 안 된다. 그 인물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 상대의 약점을 다루는 습관에서도 드러나야 한다. 인물의 욕망은 대사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반복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집필하는 내내 그 인물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왜 지금 그런 행동을 하는지, 무엇을 얻으려는지, 그것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연결 장면을 쓰다가 이야기가 밋밋해졌다고 느껴질 때도 인물의 욕망으로 돌아가야 한다.
매 순간 작품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설계가 필요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큰 방향을 정해두고, 집필할 때는 지금 쓰는 장면의 목적에 집중하고, 작업을 마칠 때는 다음에 이어갈 지점을 남겨둔다. 사유와 집필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생각만 깊어지고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작품은 완성되지 않는다. 반대로 생각 없이 분량만 채운다면 장면들은 서로 연결되지 못한다. 사유는 집필의 방향을 잡아주고, 집필은 사유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검증한다.
결국 완성은 영감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감이 실제로 작품이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완성에 대한 목표의식이 개인적으로는 영감보다 더 얻기 어렵다는 걸(심지어 둘 다 필요하다) 체감한다.
영감은 찾아온다. 찾아오면 물고기 낚아채듯 낚는 것도 기술이긴 하지만 완성에 대한 목표의식은 태도를 바꿔야 생긴다. 지금 쓰는 장면이 재미있는가와 별개로, 이 작품을 끝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작은 자극 하나에서도 통찰이 생긴다. 어떤 날은 좋은 영화를 보고도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고, 평소 재미있던 작업도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창작을 계속하려면 영감과 별개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완성하고 싶다는 감정이 강한 날에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장편소설 분량이나 10시간 이상의 각본 작업을 할 때 그런 마음이 언제까지나 같은 강도로 유지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영감이 강할 때는 별도의 추진력이 없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무언가를 완성하려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반복해서 확인해야 한다. 오늘 재미있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완성하려고 하는가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자신이 만들고 있는 작품을 기억하고, 다음 장면을 쓰고, 어긋난 구조를 수정하려면.
영감은 필수다. 하지만 영감만으로는 부족하다. 설계가 필요하고, 지속적인 사유가 필요하고, 그 사유를 실제 결과물로 옮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영감은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알려준다. 완성에 대한 목표의식은 그것을 실제로 만들게 한다.
어쩌면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은 더 많은 영감을 얻는 방법만이 아닐 것이다.
영감이 찾아온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에서, 그 영감이 하나의 작품이 될 때까지 바카라임지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