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 자기관리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게 싫었다.
운동도, 식단도, 글쓰기도 그걸 매일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그리고 지금은 평소에 왠만하면 저 세가지를 하고 있다.
최대한 내가 뭔가를 매일 하고 있다는 '강박'을 인지하지 않고 힘들지 않은 일상인 척 뇌를 속여가면서.
이러려면 나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행동하게 하는 힘과 끝까지 완성하게 하는 힘이다.
둘다 내가 할 줄 모르는 것이었다. 그나마 내가 최근에 알게 된 방법이라면 이정도 일 것이다.
첫번째, 행동은 상상하는 능력으로 가능하다.
나는 상상력이 빈약한 편이라 이런 시도 자체를 생각 못했었다.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운동을 시작하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상상'을 하는 힘으로 행동을 조금씩 변화 시킬 수 있었다.
'자 오늘 이만보 걸으면 걷고나면 라떼를 사먹을 수 있다.'
실제로 걷고나서 사먹는 경우도 있었고
자 뇌를 속였다, 하고 그냥 안먹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상상하는 힘을 이용해 더 나아가 엉뚱한 연결로 만들거나
건강을 위해 참아내야 하는 운동이 아니라 감각적인 즐거움을 위한 운동을 했다.
두번 째, 완성하려면 현실적인 압박이 필요하다.
진퇴양난의 상황이 체감이 되어야 각성이 온다. 돌이켜보면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시간들은 내게 그다지 친절한 시간이 아니었다. 원하는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고,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이전의 나라면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뜻밖의 능력을 얻었다.
상상력을 이용해 자신을 움직이는 법. 그리고 잘되지 않는 일을 붙잡고 기어코 완성하는 법.
사람마다 자신을 움직이는 방식이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목표를 세우고 의지로 밀어붙이지만, 나는 행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력을 동원하고, 결과물을 완성해야 하는 필연적인 상황 속에서 움직이는 유전자였다.
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 되는 대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이유를 만들고, 끝까지 해낼 수밖에 없는 환경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자기관리란 매일 자신을 다그치는 일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일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