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

by싱클레어

이 글은 앙리 루소의 그림에서 시작된 저의 개인적인 상상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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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Rousseau, <Tropical Landscape: American Indian Struggling with a Gorilla>, 1910, 출처:Artvee

정글 속을 걸어간다. 붉은 해가 머리 바로 위에서 타오르고, 진한 녹색 빛의 열대우림이 내 주위를 둘러싼다. 알록달록한 옷이 허벅지와 부딪혀 찰랑거리고 나의 구릿빛 피부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우리 인디언은, 이 세상을 오랫동안 지배해 왔다. 나는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인디언으로 태어났으면, 뭐든 정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나의 위에는 아무도 없다. 나의 밑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무릎을 꿇지만, 나와 대적할 상대는 없다.


어머니께 잠시 산바카라을 다녀오겠노라 말하고 나왔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다. 나는 길을 떠나고자 한다. 조금 더 먼 곳으로, 그리고 내가 모르는 세계로, 그곳으로 나아가, 나는 새로운 곳들을 정복하고 싶다. 어머니께 오랫동안 떠나겠다고 말하면 그녀는 분명 반대할 것이다. 나의 말이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우리의 아름다운 마을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자고, 그녀는 분명 그런 뻔한 말들을 내 눈앞에 늘여놓을 것이다.


목적지 없이 걷는 것은 짜릿한 일이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것, 하지만 그렇기에 더 신비롭고 갈망하게 된다는 것.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꽃들을 마구 꺾었다. 아름다워서, 즐거움이 묻어있는 그들의 다채로운 색깔들이 내 마음속에 오롯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꺾은 꽃의 향기를 맡고는 바로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어머니는 항상 꽃들을 함부로 꺾지 말라고 하셨다. 그것들은 정적인 생명체이지만, 그저 땅에 뿌리를 내린 채, 그 어떤 생명체들보다 연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자리에 끈기 있게 서있을 수 있기에, 가장 단단하고 강한 존재라고 말하셨다. 나는 그 말들을 귀 기울여 듣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말은 거의 추상적이며, 가끔은 우리 인간을 비판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세상을 보면, 결국 세상의 지배자는 인간이다. 꽃들의 목소리는 없다. 그들은 자기주장을 펴내지 못한다.


열대우림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섰기 때문인지, 기온이 급격히 내려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을 하나 더 챙겨 왔을 것이다. 나무들의 크기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마을에서 보던 나무들도 내 키의 두 배가 넘었지만, 이곳의 나무들은 하늘을 뚫을 듯한 기세로 자라나고 있었다. 으스스한 느낌, 서늘한 바람과 날카로운 이파리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나무들이 너무 커서, 하늘을 볼 수가 없었다. 땅에 비치던 햇살이 사라지고, 어둑한 그늘만이 내 머리 위를 침범했다. “나무들은 이 세상의 시작이야. 그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단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환청처럼 들렸다. 괜스레 반항감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불쾌한 느낌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가로막았고, 나는 본능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나무에 창을 꽂았다. 그 순간, 창이 날카롭게 찔러 들어간 틈에서 빨간색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나무에서 피가 난다니, 처음 보는 불편한 순간이었다.


창을 재빨리 빼고, 인기척 하나 없는 숲 속에서, 나는 소리를 질렀다. “덤벼봐! 그래봤자 너희는 나보다 밑에 있다!” 자신감 있게 소리쳤는가? 사실 점점 차가워지는 공기와 어두워지는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누구든 나를 이곳에서 빼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꽃들은 바람을 따라 춤을 추었고, 나무들은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두려움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 감정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햇빛이 그리웠다, 연분홍빛 꽃들이 그리웠다, 연둣빛의 작은 나무들이 그리웠다, 어머니의 말씀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존중. 존중. 또 존중해야지.” 얼마나 뛰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앞의 풍경은 바뀌지 않았다. 거대한 나무들과 내 몸보다 큰 이파리들, 더 이상 귀엽게 보이지 않는 꽃들, 그리고 머리 바로 위에서 나를 쫓아 달리는 핏빛의 태양. 마치 나무의 상처에서 흐르는 핏물 같은 그런 시뻘건 색의 해.


덜덜 떨리는 몸으로 뛰고, 또 뛰다가 나는 무언가에 부딪혀 나가떨어졌다. 창을 놓치고 땅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니, 눈앞에 온몸이 검은색 털로 뒤덮인 고릴라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그는 나보다 훨씬 컸다. 마치 거인 같았다. 그는 큰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쳐다보다가 이빨을 드러냈다. “우-,우-” 그는 거슬리는 목소리를 내며 내 앞에 가깝게 다가왔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겁에 질려 온몸이 얼어붙은 기분이었다.


그 순간 고릴라가 내 머리를 잡아챘다. 그리곤 다른 손으로 내 어깨를 꽉 잡았다. 나는 고릴라에게 붙잡혀 들어 올려지면서 얼른 창을 잡았다. 내가 살려면 이 녀석을 죽여야 해, 죽여야 해, 그 생각만이 내 뇌를 가득 채웠다. 나는 창을 들고 고릴라의 이마를 겨눴다. 고릴라는 우-, 우- 하는 소리를 더 크게 내며 한 손으로 내 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 창을 잡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힘이 셌다. 그는 창을 뺏어서 나에게 겨눴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려 퍼졌다. “우-, 존중했어야지. 우-, 그게 다란다. 우-, 우- ….” 창에 핏빛 태양이 비쳐 내 눈동자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나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나무들, 내 시야를 차단하는 녹색 이파리, 그리고 무심한 고릴라의 큰 눈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