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르다는 것

by싱클레어

이 글은 Alfred Sisley의 그림에서 시작된 저의 개인적인 상상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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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 Sisley, <Bank of the Seine in Autumn>, 1876, Städel Museum(출처:Artvee)

남다르다. 말 그래도 남들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센 강 근처에 나무의 씨앗이 처음 땅에 터전을 잡았을 무렵, 그때부터 남달랐던 나무, 그의 이름은 마론이었다. 마론은 다른 나무들과 씨앗모양이 달랐다. 같은 품종이었음에도, 그의 씨앗은 왠지 모르게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좀 더 기다랗고, 더 밝은 색을 띠었다. 축축한 땅에 뿌리를 내릴 때부터, 그는 그것을 알아챘다. 그의 주변에 함께 자리를 잡은 씨앗들은 그 사실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마론, 그만이 그 사실을 알았고, 그는 그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작은 나무 시절엔, 그는 옆의 친구들과 딱 붙어있었다. 그들의 취미는 센강을 바라보며 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사계절이 흐를수록 그의 몸은 더 커졌고, 옆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곧게 자랐다. 본능이었다. 하늘의 구름들에게 손을 뻗는 것, 몸의 양분이 되는 햇빛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열망. 그 단순한 사실들은 모든 나무들의 본능이자, 필연이었다.


봄의 센강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특히나 사람들은 이 눈부신 계절에 배를 타고 풍경을 즐기곤 했다. 그즈음, 푸른박새 한 마리가 마론의 몸에 나있는 동그란 구멍 안에 둥지를 하나 지었다. 오래전에 상처가 나서 생긴 구멍이었는데, 박새는 웃으며 그곳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그녀는 처음에 마론에게 말을 걸진 않았다. 하지만 구멍 입구에 살짝 발을 걸치고는, 입을 뗐다.


“이곳에 둥지를 만들어도 될까요?” 예의 바른 목소리였다. 그녀의 물 흐르는 듯한 목소리가 그의 몸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러시죠. 전 괜찮아요.” 마론은 사실 수많은 새를 만나왔지만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새는 처음이었다. 그녀의 물음에는 언제든 ‘네’라고 대답할 것만 같았다.


그 이후부터 마론의 관심은 온통 푸른박새에게 내리쬈다. 마론에게 말을 걸었던 박새는 루나라는 이름의 암컷이었다. 그녀는 센강 근처에서 나뭇가지를 물어와서 마론의 구멍 안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녀가 둥지를 다 만들어갈 무렵, 그녀와 비슷하게 생긴, 하지만 조금 더 화려한, 배에 검은색 선이 뚜렷이 나있는 새가 나타났다. 루나는 마론에게 “나의 남편이에요.”라고 말했다. 수컷은 둥지 안에 자주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는 마론의 나뭇가지에 앉아 천적들이 오는지 예민하게 살폈고, 이따금 먹이를 구하러 나가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저녁, 마론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센강에는 배를 탄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달이 해보다 더 밝게 빛나던 날이었다. 그는 구멍 안에서 작은 움직임을 느끼고 눈을 떴다. 사실 청설모가 나무에 올라오거나, 작은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도 마론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무에겐, 그런 자연의 모든 움직임들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몸 안에서 생긴 움직임은 아주 작아도,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우리의 마음의 변화에 따라 세상을 보는 인식, 그 모든 것이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작게 속삭였다. “루나, 무슨 일 있어?”


“알을 낳았어. 내 아기들.” 루나의 들뜬 목소리가 그의 몸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그는 온몸이 찌릿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생명이다. 소중한 생명이 그의 몸 안에 생긴 것이다.


그날부터 루나는 둥지를 쉽게 비우지 않았다. 보송보송한 털로 작은 알들을 감싸 안았고, 마론은 이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아빠박새는 애벌레 같은 먹이들을 물어와 아내를 먹였고, 얼마 되지 않아 부화한 아기새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아기새들은 마론 안에서 짹짹거리며 울어댔다. 가끔은 그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서 잠을 이루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기뻤다. 작고 귀한 생명들의 집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겐 엄청난 축복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모든 일은 갑자기 일어났다. 수컷박새가 돌아오질 않았다. 아무래도 맹금류에게 공격을 당한 것 같다고, 루나는 중얼거렸다.


“맹금류라면, 참매 같은 새들을 말하는 거야?” 마론은 놀라서 물었다.


“응. 우린 작으니까… 매 같은 큰 새들이 자주 노리거든.”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목소리 안에 결코 담담하지 않은 커다란 슬픔이 담겨있었다. 그때부터 마론은 한 가지 결심이 생겼다. “루나를 도와줄 거야. 아기들이 건강하게 클 수 있게.”


남편이 오지 않으니, 루나는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둥지를 비워야 했다. 그녀는 불안했지만, 그것은 자연의 순리였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먹이를 찾아올게, 마론. 아기들 좀 잘 봐줘.” 그래도 다행인 점은 마론처럼 든든한 친구가 있다는 것이었다.


한동안은 별 일이 없었다. 하지만 마론은 곧 아기새들을 노리는 놈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루는 루나가 나간 사이, 딱따구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는 구멍으로 돌진해 왔다. 마론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저리 가!” 나무가 소리 지르는 일은 새들에겐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딱따구리는 하늘을 뒤흔드는 큰 소리에 놀라서 도망을 갔다. 옆에 있는 나무들은 마론에게 “자연의 섭리잖아. 그걸 건들면 안 돼, 마론.”이라고 말했지만, 마론에겐 아기새들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후로도 다람쥐나 뱀이 나무에 기어오르려고 했는데, 마론은 소리를 지르거나 나뭇가지를 세게 흔들어서 그들을 떼어냈다. 천적들은 몸집이 큰 나무가 다른 나무들과 달리 심한 움직임을 보이자 줄행랑을 쳤다. 그들 입장에서는 굳이 그런 나무에 기어오를 이유가 없었다.


아기새들은 몸집이 조금씩 커졌고, 말을 배웠다. 그들은 마론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엄마는 언제 와요?”


“배고파요. 여기엔 뭐 먹을 게 없어요?”


그런 단순한 말들이었지만 마론은 친절하게 모두 대답해 주었다.


루나는 아기들을 돌봐주는 마론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대다수의 나무들은 새들의 삶에 큰 개입을 하지 않지만, 마론은 마음이 따뜻해서 그녀를 언제든 도와주려고 했다.


루나의 삶이 그리 길지 않았다는 운명만 빼면, 모든 것은 완벽했다. 그녀는 비가 하늘에서 조용히 내리던 날, 센 강 건너편에 벌레를 잡으러 갔다가 그의 죽은 남편처럼 매 한 마리에게 공격을 당했다. 매는 그녀를 물고 가려고 했으나, 주위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빠르게 빠져나오느라 루나를 두고 도망을 갔다. 그녀의 눈앞이 점점 흐려지고, 센강 너머로 마론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마론을 불렀다. 작고 가냘픈 목소리가 그녀의 목에서 흘러나왔고, 빗방울은 몸에서 흐르는 붉은색 피를 씻겨주었다. 그녀는 작게 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마론은 그날 저녁까지 루나를 기다렸지만, 루나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돌아올 수 없었다. 그는 루나를 불러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의 외침에 센강 건너편에서 한 그루의 나무가 소리쳤다.


“네가 찾는 푸른박새가 여기 있어! 참매가 그녀를 공격했어.”


마론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루나는 세상을 떠났다. 처음엔 남편박새가, 그리고 지금은 루나가. 자연의 섭리대로라면, 그녀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에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땅에 박힌 자신의 뿌리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날부터 그는 남다르게 자라났다. 때로는 어떤 감정이, 어떤 의지가 우리를 남들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하물며 그 행동이 바보 같아 보이는 것이라도, 개의치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하는 친구를 감싸 안아주고자 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구부러져서, 센 강을 건너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길게 자라났다. 센강 위로 그의 단단한 가지가 뻗어나갔다. 주위의 나무들은 그에게 위험하다며 멈추라고 아우성을 쳤다. 구멍 속에 있던 아기새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조그만 날갯짓을 시작했다. 몇 명은 벌써 둥지를 떠났다. 다행히 아기들이 거의 다 컸을 때 루나가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센강의 물고기가, 그리고 건너편의 나무들이, 잔디가 그에게 말을 했다.


"그만해. 이 아이는 자연으로 돌아갈 거야. "


그러나, 마론은 알았다. 만약 그가 지금 멈춘다면, 그 누구도 루나를 위해 흙을 덮어주지 않을 것이며, 그녀의 영혼에게 아기들이 어엿한 푸른박새가 되어 날아갔다는 말도 못 해줄 것이라는 것을. 그는 한껏 손을 뻗어본다. 조금만 더, 얼른 갈게. 앙상한 가지만 남은 그의 차가운 몸이 그의 작은 친구에게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 천천히 전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