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와 로즈의 등불

by싱클레어

이 글은 John Singer Sargent의 그림에서 시작된 저의 개인적인 상상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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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Singer Sargent, <Carnation, Lily, Lily, Rose>, 1885, Tate Britain(출처: Artvee)

바닷속 깊은 곳, 한 번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그 심연의 어두컴컴한 세상에, 두 소녀가 조용히 앉아있다. 그들의 이름은 릴리와 로즈. 둘은 자매였다. 릴리가 언니, 로즈가 동생. 그들이 어떻게 이 세상에, 그것도 이렇게 깊은 심해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사람인가? 그들이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모른다. 둘에겐 서로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느 것도 판단할 수 없었다.


심해에는 빛이라는 것이 없었다. 심해는 온통 검은색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릴리와 로즈가 살고 있는 이곳은 다르다. 검은색보다는 남색, 코발트블루색과 같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두운 색을 지닌 이곳. 그녀들은 그곳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 그들 주변에 있는 것이 모두 꽃이라는 것에 놀랐다. 하얀색 백합, 분홍색 장미, 빨간색 카네이션. 그 작은 생명체들은 릴리와 로즈를 돌봤다. 그들의 향긋한 향기는 그녀들의 코로 스며들었고, 눈이 부시게 흰 그녀들의 피부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색감의 꽃들은 그들의 곁에서 묵묵히 머물렀다.


릴리와 로즈는 미역들 사이를 헤쳐나가면서 오늘 또 무엇을 할까, 고민 중이었다. 바닷속에서는 수많은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지만, 사실 그들은 릴리와 로즈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릴리와 로즈를 신기하게 한 번 쳐다보곤 다시 갈 길을 갔다. 심지어 그녀들이 사는 곳은 너무 깊은 곳이라 물고기들도 생김새가 많이 특이했다.


어느 오후, 릴리는 낮잠을 자는 로즈의 곁에서 일어나 백합들을 구경하러 갔다. 그런데 눈앞에 특이하게 생긴 물고기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생물은 머리 위에 긴 등줄기가 있었고, 그것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태어나서 ‘빛’이라는 것을 처음 본 것이다. 그렇게 밝은 불빛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황홀감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그 생물의 옆으로 갔다.


물고기는 릴리를 쳐다보았다. 빛 때문에 릴리의 아름다운 얼굴이 완전히 드러났다.


“넌 누구야?” 릴리가 물었다.


물고기는 릴리를 슬쩍 보더니 다시 원래 가던 길을 갔다. 그녀에게서 물고기가 멀어져 갔다.


릴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로즈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곤히 잠들어있는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로즈. 일어나 봐.”


로즈는 칭얼대며 눈을 떴다. 릴리는 들뜬 표정이었다.


“내가 엄청난 것을 발견했어. 반짝거리는 걸 말이야. 너도 보면 놀랄 거야.” 릴리의 눈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릴리는 그날, 로즈를 데리고 초롱아귀를 보았던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몇 분을 기다리니, 정말 불을 밝히며 아귀가 나타났다. 로즈는 너무 놀라서 입을 떡 벌리고 그 앞에 섰다.


“저게 뭐야? 언니, 정말 아름다워.” 로즈의 입에서 황홀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아귀가 고개를 돌려 로즈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그가 입을 열었다.


“나와 같은 종족인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내가 가진 이 빛이 없어. 그 친구 말로는 우리가 사는 곳을 제외한 모든 곳에 빛이 있다더군.”


“그게 어디인데? 나도 빛을 보고 싶어..” 릴리가 말했다. 믿을 수 없었다. 그녀와 로즈가 사는 곳은 이렇게 항상 칠흑 같은 어둠 속인데. 물론 아름다운 어둠이었지만 아무튼 컴컴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위로 올라가야 해. 아주 위로. 우린 갈 수 없단 말이지. 물 밖으로 나가면 죽으니까.”


릴리와 로즈는 ‘빛’이라는 존재를 동경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들은 위로 올라가려는 시도를 해보았다. 물고기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헤엄을 쳐보려고 했으나, 그들의 삶의 터전은 그녀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마치 엄마와 아이의 탯줄처럼, 끊어지지 않는 그들의 운명이었다.


수많은 시도 끝에 그들은 이 찬란한 어둠 속을 헤쳐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름다운 빛은 볼 수 없는 것일까? 바깥세상은 온통 빛난다는데, 그것 하나 보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릴리와 로즈는 어느 날, 백합과 카네이션, 장미가 환하게 핀 곳에 둘러앉아 멍하니 바닷속을 바라보았다. 순간, 릴리의 머릿속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가 직접 빛을 만들면 되는 거 아니겠어?” 들뜬 그녀의 목소리가 잔잔한 물결을 타고 로즈의 귓가로 흘러들어 갔다.


“어떻게 언니?” 로즈는 기대에 가득 찬 모습으로 언니를 바라보았다.


릴리는 바닷속을 굴러다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얗고 얇은 물체를 가리켰다.


“저걸 이용해 보자.”


그들은 하얗고 동그란 그 물체 안에 아귀에게 부탁해서 얻은 빛을 가두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빛들을 만들었다. 백합과 장미꽃과 카네이션이 피어있는 그 아름다운 곳에서, 그들의 가녀린 손끝에서 등불들이 탄생했고 그것들을 위로 날려 보냈다. 마치 연처럼, 그 등불들은 위로, 더 위로 헤엄쳐갔다. 그녀들의 손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힘이 있는 것처럼, 그 물체들이 둥실 거리며 올라가, 그녀들의 위를 환하게 밝혀주었다. 처음으로 그들은 주변에 있는 꽃들의 잎사귀 하나하나를, 미역이 춤추는 모습을, 서로의 미소를 바라보았다. 사랑스러운 일이었다.


등불은 천천히, 오랜 시간이 걸려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육지의 사람들은 그것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들에 이름을 붙였다. '해파리'라고. 릴리와 로즈는 여전히, 지금도, 그들만의 소중한 등불을 멀리 보내며 황홀한 불빛 속에서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