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페르 크로그의 그림에서 시작된 저의 개인적인 상상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곡 Prelude No.4 In D Major Op.23과 함께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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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가 있었다.
첫째는 노라. 그녀는 최근에 이혼을 했다. 난폭한 남편으로부터 딸과 함께 간신히 탈출했다. 연애할 땐 몰랐던 모습들이 속속들이 드러났던 그녀의 결혼생활. 그녀는 결혼 후 행복함을 단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다. 불행에 더 큰 불행이 더해져 그녀는 매일을 울면서 지냈다. 남편이 변할 것이라는 기대로 살았던 10년이었지만, 그녀는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아침, 이혼을 결심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그런 다짐이었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의 기대가 없었다. 실패한 인생, 딸만이라도 원하는 삶을 살게 해 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 난폭한 남편의 날카로운 말이 딸을 향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서서히 이혼을 준비한 것이다. 나는 건드릴 수 있어도 내 딸은 안돼. 당신은 아빠 자격이 없어. 당연히 법원은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다. 누가 봐도 뻔한 일이었다. 그녀는 유순하고 조용하며, 딸을 위해 살았다. 사실 신혼 때까지는 남편을 위해 살았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면서 살았던 착한 여자였다. 구역질 나는 남자의 품에서 그녀는 떨어져 나왔다. 드디어.
둘째는 잉리. 그녀는 댄서였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은 그 춤, 온 세상을 뒤흔들 그 아름다운 춤이었다. 그녀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연습실에서 춤연습을 했다. 그녀의 춤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에게 홀렸다. 여유로운 듯한 춤선, 그럼에도 간절해 보이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몸짓은 그녀를 유명한 댄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1년 전, 문제가 생겼다. 춤을 추다가 발목을 삐끗했는데, 그날 이후로 춤을 출 때마다 다리에 아린 듯한, 송곳이 발목으로 파고드는 듯한 느낌에, 그녀는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춤을 추지 말라고 했다. 치료한다고 나을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불행이 찾아와 그 옆자리에 앉았다.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매일 연습실에 나가다가 그녀는 고통이 더 심해져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그 이후로 그녀는 춤을 추지 못했다. 지금은 미술관에서 보안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셋째는 아스트리드. 그녀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주 2회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왕따를 당했다. 그 사실이 그녀에겐 아직까지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여전히, 그 세월이 흘렀어도 말이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다시 10대 시절로 돌아가 못된 여자아이들에게 맞고 있는 꿈을 꾼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정신과 약을 먹으며 진정되지 않는 심장을 억지로 재운다. 아마 바깥에서 그녀를 본 사람들은 그녀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집에 오면 그 가면을 벗고 누구보다도 우울한, 그 심연의 얼굴을 꺼내 푹 눌러쓰곤 이불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세 자매는 각각 다른 곳에서 살고 있었다. 노라는 네덜란드에, 잉리는 덴마크에, 아스트리드는 노르웨이에. 그들이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는가? 사실 그들은 그렇게 친하진 않다. 아니, 어린 시절까지만 해도 그들은 가끔은 다투긴 해도 누구보다 친한 자매였지만, 노라가 결혼을 하면서, 잉리가 연습실에 박혀 춤을 추면서, 아스트리드가 자신만의 세계에서 우울의 끝을 찾아 헤엄치면서, 그들의 사이는 멀어졌다.
5월의 어느 아침, 노라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울렸다. 노르웨이에서 온 전화였다.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아스트리드가 아파요, 노라언니. 노르웨이로 와 주실 수 있어요?" 연약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로 흘러들어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아스트리드의 친구인 솔베이였다. 아스트리드가 아프다. 아스트리드. 그녀는 내 막내 동생이 아닌가? 노라는 아스트리드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고 애썼다.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를 본 지 벌써 10년은 된 것 같았다. 그녀는 피던 담배를 끄고 조용히 창 밖을 응시했다.
잉리는 노르웨이에 자주 갔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가까우니까. 사실 남자친구가 노르웨이에 있어서 한 달에 한 번은 꼭 갔던 것 같다. 잉리에게도 솔베이가 전화를 걸었고, 그녀는 어릴 적부터 소심했던 그녀의 여동생, 아스트리드를 떠올렸다. 그녀는 어디가 아픈 걸까?
5월의 노르웨이, 잉리가 도착한 시각은 오후 8시였다. 해가 지지 않아서 여전히 밝았다. 이 놈의 북유럽, 내가 태어난 이곳은 왜 이리 극단적인지,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곤 아스트리드가 살고 있는 자취방에 들어갔다.
그곳엔 이미 노라가 와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언니, 오랜만이네. 프레야는?" 프레야는 노라의 딸이었다.
“친구한테 맡기고 왔어. 3일쯤 뒤에 돌아가야 해.”
노라는 잉리의 옷차림을 유심히 보았다. 전에 입던 화려한 옷 대신, 검은 셔츠에 수수한, 긴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건 너답지 않아, 잉리. 그녀는 숨을 후 불며 잉리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아스트리드는? 봤어, 언니?” 잉리가 물었다.
“그래. 자살시도를 했대. 손목을 그었는데 다행히 솔베이가 일찍 발견한 모양이야.”
그녀의 담담한 말에 잉리는 왠지 기분이 퍽 나빴다. 당신 여동생이잖아? 그녀는 아스트리드가 자살기도를 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심할 줄은 몰랐으니까.
잉리가 아스트리드의 방으로 들어갔을 땐, 솔베이가 옆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스트리드를 보다가, 잉리를 보곤 측은한 미소를 지었다.
“아스트리드는 자는 거야?” 잉리가 물었다. 아스트리드의 눈이 감겨있었다.
“네. 방금 잠들었어요. 아마 괜찮을 거예요. 응급치료를 받아서..” 그녀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아마 눈물을 흘린 것일 테지. 네가 우리 자매보다 훨씬 낫다, 잉리는 생각했다.
잉리는 아스트리드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곤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 하지만 아주 작은 온기가 그녀의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니, 아가.." 그녀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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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와 잉리는 그날 저녁 같이 밥을 먹었다. 처음엔 어색했다. 친자매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들은 아스트리드를 돌보며 하루 더 붙어서 시간을 보냈다.
“언니, 그 남자랑 이혼 잘했어. 그런 쓰레기는 처음부터 아니었어.”
“그래, 난 그래도 그 남자를 사랑했어. 웃기지? 사람이란 게 참 이상한 거야.”
그런 쓸데없는 대화를 하며 그들은 웃었다.
노라는 3일만 있겠다고 했지만 아스트리드를 두고 가는 게 왠지 마음에 걸렸다. 일주일 더 있겠다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프레야는 괜찮다며, 조금 더 있다 오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아스트리드는 두 언니가 5일 동안 자신의 옆에서 그녀를 돌봐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살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놈의 악몽을 그만 꾸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힘들었던 순간들로부터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이만 먹는 거야.. 절대 나아가진 못한다고.. 그녀는 그래서 손목을 그었다. 죽어야 끝난다면 말이다, 왜 이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해서, 나같이 일찍 죽음을 결심하게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낸 거냐고, 그녀는 그 슬픔을 억지로 삼키며 그녀의 손목에서 흐르는 붉은 피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욕조로 들어갔다. 그때 그녀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솔베이가 들어왔다는 건, 그녀에겐 꽤 큰 불행이었다. 죽기로 결심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인데, 그 결심을 저지할 사람이 왔으니. 그녀는 자신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그녀를 욕조에서 끌어내고, 손을 벌벌 떨면서 119로 전화를 거는 솔베이를 보며, 나른해지는 기분, 알싸한 피냄새, 그런 것들을 함께 맡으며 세상을 외면했다.
그래도 그녀는 살았다. 그게 내 운명이라면, 나는 살아야 하는 걸까. 그녀는 담배를 피우는 노라언니, 그리고 수수한 옷을 입은 잉리언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일주일째 되던 날, 노라가 집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아스트리드는 두 언니들에게 말했다.
“산바카라을 하고 싶어, 언니들. 빛을 본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그녀의 그 작은 바람을 언니들은 외면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함께 공원으로 나갔다. 아름다운 강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벤치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했다. 10년 전에 머물러 있는, 과거의 이야기이긴 했지만, 그들은 그 작은 일상이 어색하면서도 소중하다고 느꼈다. 그들이 강가를 지나갈 때, 검은 점이 작게 수놓아져 있는 하얀 강아지가 나타났다. 그는 세 명의 여인 앞에 섰다. 그리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세 자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리키!" 그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리키는 그들이 어린 시절 키우던 강아지였다. 지금 그들의 앞에 서있는 이 작은 강아지는 리키와 몹시 닮은 모습이었다. 짧은 털과 하얀 몸, 그리고 검은 점들. 리키는 항상 그녀들을 따라다니고, 원을 그리며 짖고, 헥헥거리며 그들의 품으로 뛰어들곤 했다. 노라가 결혼을 하면서 네덜란드로 떠나던 날, 그날 차사고를 당해 세상을 떴던 작은 리키.
“주인이 없는 건가?”
“글쎄. 그런데 정말 리키랑 똑같지 않니?”
그들은 그 작은 강아지의 머리를 살짝 만져주곤, 갈 길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강아지는 그들의 앞에서 눈을 빛내며 헥헥거렸다.
세 명의 여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순간 노라의 눈가주름이, 잉리의 빨간 입술이, 아스트리드의 하얀 얼굴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노라가 먼저 뛰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잉리가, 그리고 아스트리드가 쫓았다. 강아지는 입을 활짝 벌리고 웃으며 그들을 따라 뛰었다.
그들의 까르르거리는 웃음소리가 강의 잔잔한 물결에 부딪혀 구름 사이로 번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