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어딘가에서
이 글은 클로드 모네의 그림에서 시작된 저의 개인적인 상상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슈만의 곡 어린이 정경 15-7번, 꿈을 들으시며 함께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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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부모님께.
어머니, 아버지. 튤립이 무성하게 피다 못해, 이 나라 전체가 튤립의 쨍하고 밝은 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저는 이렇게 많은 꽃을 본 적이 없어요. 우리의 아름다운 집, 폴란드에 있는 그 하얀 집 식탁 위에 놓여있는 꽃들, 그리고 아버지가 가끔씩 어머니를 위해 사 오시는 꽃다발들을 제외하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끝없는 꽃의 바다를 마주합니다.
튤립은 생각보다 향기가 나지 않네요. 어머니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아버지를 보시곤, 활짝 웃으시면서 말이에요.
“튤립은 향기가 나지 않아. 하지만 정말 예쁘잖아. 나는 특히 저 자주색 튤립이 좋아.” 어머니의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아버지의 귀로 흘러들어 갈 때, 아버지는 싱긋 웃으셨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당신들은 폴란드에 살고 있지만, 부활절을 맞아 이곳, 네덜란드로 오셨죠. 네덜란드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어요. 하늘을 바라보며 담담히 흘러가는 물결, 은은하게 빛나는 푸른빛의 나무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꽃들이 있어요. 아, 하나 더, 어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나라이기도하죠. 그런 어머니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눈에 담고, 그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나의 아버지, 당신은 이 나라에 온 나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당신의 눈은 조금은 피곤해 보이지만, 그래도 미소를 잃지는 않고 있으니까요.
암스테르담에서 당신들이 먹었던 스트룹와플과 더치 팬케이크. 입에 한가득 넣고 오물오물 먹는 어머니는 “네덜란드에서 살고 싶어.”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녀는 참 아름다워요. 나의 어머니이지만, 그녀는 밝은 태양 같은 사람입니다. 아버지, 자세히 보세요. 당신이 웃을 땐 언제인지. 당신은 어머니를 볼 땐 항상 웃고 있어요. 저는 그 웃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요.
사랑하는 부모님, 당신들은 네덜란드에 있는 한 풍차마을로 향했습니다. 튤립과 풍차, 반 고흐. 당신들이 이 나라에 온 이유는 이 세 가지였으니까요. 아, 풍차 마을에서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어머니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할 때마다, 머리가 여기저기 휘날리는 바람에 그녀는 사진을 포기해야 했죠. 대신 웃긴 사진들만을 건졌어요. 신기하게도 아버지는 그런 사진들을 더 좋아하시더군요. 참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마을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저는 어머니와 폴란드의 와지엔키 공원에 거의 매일 가는데, 그곳만큼 사랑스러운 곳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와서 마음이 바뀐 것 같아요. 바람이 나무를 꺾을 기세로 불지만, 그 덕분에 거대한 풍차는 당당하게 바람을 타고 돌아갈 수 있고, 그 옆의 튤립들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자유롭게, 새들처럼 날아올라요. 튤립 옆에 딱 붙어있는 히아신스는 자신의 은은한 향을 이 마을 전체에 안개처럼 가득 메웁니다. 아버지 당신이 좋아하시는 그 향이죠. 그 옆으로 보이는 운하에는 솜사탕 같은 구름들이 비추고, 햇빛이 물속으로 파고들어 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빛을 냅니다. 아, 이렇게나 아름다운 곳이라면, 나는 여기에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생각과 어머니의 생각은 거의 항상 비슷하죠. 어머니는 햇빛을, 봄과 여름을, 나무를, 꽃을, 이 세상에서 가장 인위적이지 않은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당신, 어머니는 가끔 저와 함께 미술관에 가기도 하죠. 그곳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세요. 이 그림엔 무슨 사연이 있을까, 이 작가는 어떤 생애를 살았을까. 그리고 어머니는 아침마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요. 그녀는 신선한 과일을 먹으면서 그 음악을 듣고 말씀하십니다. "예술은 우리의 삶을 치유해 줘. " 커튼을 걷고, 얼굴에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을 피부가 따가워질 때까지 맞고 있기도 해요. 점심을 먹고 나서는 그녀의 손처럼 하얀 피아노에 앉아 쇼팽의 왈츠를 연습하십니다. 아마 그녀는 피아니스트가 되었어도 좋았을 거예요.
네덜란드 풍차마을에서는 바람 때문에 걷기가 힘들었지만, 당신들은 그 형형색색의 천국 같은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 온 눈동자에 그것들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보았습니다. 당신들의 행복한 모습을. 햇빛을 향해 줄기를 뻗는 튤립처럼, 햇빛을 향해 걷는 당신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정말 예쁜 나라야.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마 어렵겠지.” 어머니의 밝은 초콜릿색 눈이 아버지를 향했습니다.
“….” 아버지는 잠시 대답이 없었습니다.
당신들이 본델파크로 걸어가면서 작은 공원 앞에 섰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올 거야. 한 명 더 데리고. 우리 손에 양손을 꼭 붙잡은 귀여운 아이와 함께.”
아버지, 당신의 눈이 별처럼 빛났고, 당신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곳으로 손을 뻗어보았습니다. 너무나도 따스해서, 저절로 손이 뻗어졌어요. 이젠 알겠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시 이곳에 올 아이는 저라는 것을.
사랑하는 부모님, 저도 제 발로 걷고, 당신들의 따스한 손을 부드럽게 잡고, 이곳, 네덜란드에 다시 올 날을 기다립니다. 당신들은 내가 지금 세상 그 무엇보다 포근한 어머니의 품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곧 알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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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네덜란드 어딘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