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아저씨와 카푸치노

by싱클레어

이 글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시작된 저의 개인적인 상상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리스트의 곡 위안 3번을 들으며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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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Hopper, <Nighthawks>, 1942, 시카고 미술관(출처: Artvee)

아버지가 남기고 간 가게. 그곳에서 나는 매일 밤 커피를 판다. 가게가 눈을 뜨는 시각은 오후 9시, 눈을 감는 시각은 오전 5시.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날, 그 이틀을 제외하고 가게는 언제나 그렇듯 손님들을 맞았다. 새벽장사이지만, 우리 가게는 술을 팔지 않는다. 내가 파는 것은 커피다. 아버지는 떠들썩한 분위기를 싫어하셨다. 유독 그가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아침, 점심, 저녁에 내려 마시는 커피 한 잔이었다. 커피를 너무 사랑했던 그는, 어머니와 결혼을 한 후, 다니던 온라인 게임을 관두고 이 가게를 차린 것이다.


아버지의 새벽 카페는 꽤 장사가 잘되었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출근길에 함께 하곤 했는데, 손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고, 어머니는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다. 그 당시 커피 매출의 반 이상이 네 덕분이었어, 그렇게. 그들은 가물가물한 그 기억들을 눈앞에 꺼내놓으며 미소를 지으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새벽 카페를 여셨다. 출근을 하신 후, 에스프레소 한 잔을 내려 마시고, 손님들을 맞고, 조그만 바카라상에서 바카라을 읽으셨던 나의 아버지. 이제 나는 그의 길을 따라 그의 인생 그 자체였던 카페의 하루를 연다.


사실 아직까지도 아버지가 왜 그렇게 카페를 사랑하셨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몸이 아프셨을 때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에도, 크리스마스에도, 그는 항상 그 카페에 몸을 담갔다. 그리곤 새벽 5시까지 그곳에서 나오시지 않았다. 아마 커피를 사랑해서일 거야,라고 생각하기엔 카페에 너무 큰 애정을 주셨던 나의 아버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나는 새벽에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그들에게 커피를 만들어준다.


우리 가게의 단골이 있다. 그의 이름은 피터. 그는 퇴근길에 항상 우리 가게에 들른다. 그에게 집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가끔 오픈 시간에 카페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를 보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고, 그런 생각이 불쑥 들기도 한다. 오후 9시부터 오전 1시까지. 그는 4시간을 우리 가게에 그저 앉아서, 2시간마다 커피를 시키고 멍하니 앉아있거나,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곤 한다. 나에게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다.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이요.” 그 말을 두 번 하는 것 외에는 그는 그저 침묵이다. 언제부터 우리 카페에 왔던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에게 굳이 말을 시키지 않기에, 나도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먼저 말을 건네지는 않는다. 미소를 지으며 하얀 거품이 구름처럼 올라간 카푸치노를 그의 앞에 조용히 건넬 뿐.


그를 제외하고는 오는 손님들은 일이 늦게 끝난 사람들, 술 한 잔 마시고 들어온 사람들, 그리고 데이트의 끝이 아쉬워서 갈 곳을 잃어 우연히 들어온 연인들이 대다수다. 그들 중엔 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홀로 온 손님들도 있고, 서로 마주 보고 한참을 수다를 떨다가 계산할 때만 나를 부르는 손님들도 있다.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다가 조의를 표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심심찮게 보인다. 나는 괜찮다고, 무심한 척 말을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버지의 모습을 곱씹을 수밖에 없다.


수요일 저녁 8시, 나는 카페 문을 열고, 커피머신 전원을 켰다. 그리곤 식기들을 깨끗한 타올로 닦고는, 피터 아저씨를 기다렸다.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문 앞의 방울새 모양의 종이 울렸다. 피터아저씨였다. 역시, 또 똑같은 중절모를 쓰고, 어두운 정장을 입고, 그리고 여전히 낯을 가리는 검은색 눈동자가 나를 향해 어색한 인사를 던졌다. “어서 오세요.” 나는 그를 처음 맞는 것처럼 인사를 했고, 그는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시선을 구석으로 던졌다. 카푸치노 거품을 내는 소리, 위이잉-, 하는 큰 소음이 몇 초간 이어졌다. 커피를 들고 뒤를 돈 순간, 내 앞에는 부부, 아니, 연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과 여성이 카페 테이블에 막 앉은 참이었다. 커피 내리는 소리 때문에 종소리를 못 들었나 보다.


“어서 오세요, 뭘 드릴까요?” 나는 피터 아저씨에게 커피를 드리곤, 그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남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여자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 하지만 짙은 화장 밑으로 서글퍼 보이는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다.

“저는 핫초코 주실 수 있을까요?” 여자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핫초코는 몸에 안 좋잖아.”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의 앞에 말을 툭 던졌다.

“먹고 싶어서 그래. 아, 그리고 혹시 빵도 있을까요? 출출하네요. “ 여자는 방긋 웃었다.

“네, 드릴게요. 손님은 뭘 드릴까요?” 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남자에게도 말을 건넸다.

“저는 에스프레소 한 잔 주시죠.” 내 눈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였다.

여자는 핫초코를 홀짝거리며, 빵을 한 입 물었다. 오물오물거리는 작은 입술이 행복감에 붉게 물들었다. 남자는 그저 담배를 연신 피워대며, 커피엔 손도 대지 않고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둘 사이의 작은 침묵은 그날 새벽을 가득 메웠다. 단 하나의 질문도, 단 하나의 대답도 없던 그들. 표정이 없는 남자와 들뜬 모습의 여자. 피터는 카푸치노를 마시며 그 연인을 흘긋 보곤, 바닥을 내려보고, 조용히 컵을 내려놓았다. 해가 구름을 걷고 희미한 빛을 내기 직전, 그 연인은 일어나서 카페 밖으로 나갔다. 여자의 마른 몸, 남자의 축 처진 어깨, 나는 그 둘을 보며 알 수 없지만 마음 한편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날의 그 연인은 내리 일주일을 우리 카페에 찾아왔다. 올 때마다 여자는 진한 화장과 쨍한 밝은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고, 남자는 어두운 옷을 입고 여자의 옆자리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며 담배를 푹푹 피웠다. 7일째 되던 날, 그녀는 남자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당신은 내 붉은 머리가 좋다고 했지. 난 그걸 좋아해 주는 당신이 너무 좋았어. 언제나 붉은 머리로 당신 앞에 있고 싶어.”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순간, 남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아, 그러니까, 내 쪽을 본 채로, 눈물을 흘렸다.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들이 쉴 새 없이, 마치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 후두둑 떨어졌다. 여자는 가냘픈 팔을 쭉 펼쳐 그녀의 연인에게 망설임 없이 뻗었다. 남자의 작은 울음소리, 그의 처진 어깨를 토닥이는 여자의 작고 하얀 손. 나는 그것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을 보고 있던 피터 아저씨의 곧 울 듯 젖은 눈가도.


며칠간 그 연인은 가게에 찾아오지 않았다. 무슨 사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주 슬픈 일이 있구나, 해결이 되면 좋겠다,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중, 몇 주 흘렀을까. 붉은 머리 여자의 연인인, 무표정의 사내가 나타났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는 혼자였고, 면도를 하지 않아서 거뭇거뭇한 수염을 머금은 채로, 그리고 입술은 하얗게 뜬 채로 가게에 찾아왔다는 것이다.


“핫초코 하나 주시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빵도요.” 그래. 그 여자가 좋아했던 것들이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여자는 이 불쌍한 남자를 뒤로 하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구나. 가슴에 누군가 뜨거운 물을 부은 것처럼 애수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 피터 아저씨의 입에서 중저음의, 잠겼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행복했을 거요. 그녀는 당신을 정말 사랑했던 거요.”


남자는 한없이 깊은 바다 같은 눈을 들어 피터아저씨를 보곤,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그 둘 사이의 알 수 없는 공기가 카페 안을 떠다녔다. 그것의 이름을 붙이자면, ‘위로‘였을까.


남자가 그 후로 몇 번 카페에 찾아오고, 피터아저씨와 몇 마디를 주고받기도 하다가, 겨울이 다가올 때쯤, 카페로의 발길을 끊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이사를 간 것인지, 아니면 그녀에 대한 슬픔을 이젠 떨쳐버린 것인지. 하지만 피터아저씨는 여전히 우리 가게에 찾아왔다.


연인이 찾아왔던 날로부터 1년이 흘렀다. 바깥공기는 살짝 후덥지근했고, 피터 아저씨는 여전히 우리 가게, 같은 자리에 앉아 카푸치노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잠시 커피머신을 청소하려고 청소도구를 찾고 있었는데, 등 뒤에서 중저음의 물음표 하나가 날아왔다.


“난 자네 아버지 덕분에 살아있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아버지라는 단어에 나의 몸이 즉각 반응했다.


“나의 아내가 병으로 죽은 다음 날, 나는 이곳에 처음 찾아왔어. 그리고 자네 아버지를 만났지. 나는 그때 지금보다 훨씬 젊었고, 아내의 병이 손 쓸 수 없이 온몸으로 퍼진 탓에, 아내는 그럴 바엔 남들처럼 평범하게 예쁜 옷도 입고, 화장도 하고, 머리도 밀지 않고, 행복하게 살다가 마지막을 맞겠다고 했어. 나는 그 말에 반대했고. 믿을 수 없었으니까. 그녀가 자신의 숨결을 포기한다는 것이 말이야.” 그는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하지만 별 수 없었어.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뒀고, 결국 그녀는 그렇게 한 달을 버티곤 내 곁을 떠나갔지. 죽은 그녀의 모습은 한없이 평안했지만 나는 그녀를 따라 죽으려고 했어. 그때 자네 아버지가 막아주었지. 카푸치노를 건네면서 말이야. 지금은 이 거품 속처럼 그 속이 너무 두터워서 끝이 보이지 않겠지만, 이 하얀 안갯속을 헤쳐 나오면 달콤 씁쓸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고. 그게 인생이라고. 그러니까 살아가자고 말이야. 그 말이 나한텐 정말 큰 위로가 되었어. “


“자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나는 항상 그와 함께 대화를 하려고 여기에 왔단다. 그는 커피를 정말 사랑했어. 아니, 커피 너머 앉아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품어주었던 그런 위로가 되었던 사람이었어. 마치 그 자체가 카푸치노 같은 사람이었던 거야.”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커피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의 삶을, 인생을, 그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게 인생이다. 아버지가 매일 같이 출근했던 이유, 그는 누군가의, 그리고 어느 순간의 꼭 필요했던 위로였던 것이다.


나의 눈은 촉촉한 이슬을 머금고, 조용한 새벽을 맞듯, 누군가의 삶의 기억에 남은 아버지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