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세 걸음을 내딛다

PART 1

by솔레일소노르

세 걸음 내딛는 3월. 동면에서 일어나는 시기이다. 부스럭 거리며, 2월에 이어 새벽녘에 일어나 걷고, 3월은 그에 더해 저녁에도 걸음을 내딛는다. 걷다 보니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고, 복잡했던 생각을 정리하고,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이번 3월은 특별했다. 수많은 꿈들이 교차했고, 세상에 무심했던 내게 우주는 뜻밖의 선물을 주었다.


01 Blood moon

26.03.03 개기 월식. 아이들 저녁 식사를 차려두고, 탄천을 걸으러 나왔다. 한참을 걷다 보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을 찍어댄다. 사람들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니, Blood moon이 떴다.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 눈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아름답기보다는 매력적이었고, 신기하다 보다는 오묘했다. Blood moon은 독특했고, 독특함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개개인에게 모두 저런 매력적인 부분이 있을 텐데, 나는 나의 매력을 스스로 알아보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한참을 붉은 달을 바라보다 우주로부터 받은 선물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Blood moon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나의 독특함을 바라볼 수 있었을까?


02 새순

새순이 나온다. 내 마음에도 새순이 나온다. 그런데 누군가가 가위로 싹둑 새순을 자른다. 누군가 말로 내 마음의 새순을 자른다. 길을 걷다 새순을 바라보며, 이른 아침 서운한 말을 내뱉는 남의 편인 남편을 떠올렸다. ‘나도 복수해 볼까?’라고 생각하다가 귀찮은 마음이 생긴다. 생각해 보니 누군가의 말로 내 마음의 새순을 자르는 것은 참으로 수동적인 행태인 것 같다. 내 마음의 새순은 나 말고는 아무도 못 자른다. 고작 침 정도 뱉은 걸로 새순이 잘린 것은 아니다. 낙담하고 울지 말자.


03 춘분

3월 20일 춘분은 빛과 그림자가 균형을 이루는 날이다. 봄의 한가운데, 식물과 동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점. 춘분 세리머니는 나에게 “풍요”에 대한 나의 태도와 시각을 돌아보게 했다. ‘나는 진정 내 우주에 풍요를 담고 있었는가?’ 살아가면서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할 때마다 좌절과 거절의 경험으로 축적된 나의 껍질은 항상 ‘안 될 가능성’을 먼저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자라면서 겪었던 여러 경험과 거절이 그럴 수도 있지만, 고유하게 가진 나의 개성 역시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나는 사실 수줍음이 많고, 내향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한두 번 용기를 내어 요청하다가도,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면 더 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어느새 이루어질 가능성보다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04 꿈이 시작되다

꿈으로 세상과 나를 조명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비가 내리는 바다 위에 몸을 띄운 채 떠 있다. 내 목에는 두 아이가 매달려 있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아이들을 구조 보트 위로 올려 보낸다. 부두까지 가려면 아직 거리가 남아 있다. 아이들을 먼저 올려둔 뒤 구조 보트를 붙잡고 잠시 숨을 고른다. 그런데 점점 힘이 빠져간다. 그 순간 아래를 내려다본다. 깊은 심해 속에서 죽은 혼들이 내 다리를 붙잡고 아래로 끌어내린다. 하지만 꿈속의 나는 이미 여러 번 이런 일을 겪어본 사람처럼 행동한다. 아래를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수면 위의 태양을 바라본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심호흡과 함께 다시 수면 위로 솟아오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시 구조 보트에 몸을 의지한다. 바다는 우리의 무의식을 상징한다고 한다. 잠재의식, 어쩌면 오랫동안 쌓여온 감정과 기억의 더미일지도 모른다. 몸이 지쳐 있을 때면 나는 종종 바다 꿈을 꾼다. 그런데 이번 꿈은 조금 달랐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그 어두운 바다에서 건져 올리고 있었다. 오래전 반복해서 꾸던 꿈에서는 내가 바다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리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구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혼 이후 꿈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꿈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아, 나 수영할 줄 알지.”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았다. 스스로 헤엄쳐 뭍으로 나왔다. 많은 시간을 지나고, 수많은 감정의 파도를 건너며 지금의 나는 제법 안정된 곳에 서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운 방법들을 사용해, 오래 전의 나처럼 무기력하고 길을 잃은 사람들을 조금씩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침대에 가만히 앉아 꿈을 떠올렸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왜 내가 구조 보트에 올라타지 않았는지. 왜 다시 바다로 몸을 돌렸는지. 아직도 깊은 바닷속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그 아이들을 수면 위로 올리기 위해 다시 바다로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면 다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시 바다로 들어가는 나는, 나 자신도 충분히 지켜내고 있을까?’


봄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았다. 하루 한 걸음, 또 한 걸음. 걷는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을 바라보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이 조용히 찾아왔다. 아직도 상처는 있고, 흔들리는 마음도 있지만, 새순은 매년 다시 돋아난다. 나도 그 새순처럼 다시 살아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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