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나를 비우는 시간

PART 1

by솔레일소노르

한 해의 시작 1월은 나를 움츠리게 한다. 몸은 한없이 무겁고,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곰처럼 모든 것이 느려진다. 40대 중반이 넘어가서인가? 몸의 여기저기가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새로운 시작 1월, 나에게는 모든 것을 정리하는 날이다. 정신, 감정, 육체 이 세 가지 요소를 정리를 하는 시간이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1월, 2월은 나의 몸을 돌보게끔 이야기하고, 그동안 묻어뒀던 감정들은 옹달샘처럼 슬며시 흘러나오다 마지막에는 분수처럼 솟구친다. 그 과정을 지나면,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 하나의 꺼풀을 벗겨낸다.


01 Relax

몸에 힘을 빼기가 이렇게 어려웠나. 긴장 상태로 살아왔던 날이 절반쯤 채워졌다. 나에게 어둠이 밀려오는 겨울은 나를 감옥 속에 가둬버리고 만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일어났다. 세상을 바라보면, 조금 나아지려나? 일어나 탄천길을 걷고 나니 몸이 지쳐 힘이 조금 빠진다. 몸이 갑옷같이 딱딱해서 이제는 긴장하지 않으면 내 몸 같지 않은 시간이 인생의 절반, 그것을 마주한 현재의 나, 앞으로의 인생 절반은 긴장하고 살지, 아니면 릴랙스 하고 살지 내 선택에 달렸다.


02 까치

우리 동네 까치는 통통한데, 서울에 오랜만에 올라가니, 서울 까치들은 빼빼하다. 우리 동네는 탄천이 길고 넓어서 새들이 먹을 것이 많으려나? 오래된 아파트가 즐비하니, 쓰레기통이 까치들의 음식점이라 그런가? 토실한 까치를 보며, 푸흡! 웃음이 나오고 괜히 행복해진다. 무거워진 나의 몸과 마음에 작은 행복을 던져 준 까치들 덕분에 조금은 위로가 된다.


03 솔방울

자연을 좋아하는데, 도심에 사니 풀 냄새 맡기가 어렵다. 다행스러운 건 오래된 아파트가 즐비한 곳이라, 나무도 많고, 언덕이 있는 공원도 있어서 다행이다. 언덕이 있는 공원에 갔다가 귀한 선물을 발견했는데, 빈 어항에다 놓아두어야겠다 생각을 했다. 솔방울 가지를 들고 언덕을 내려가는데 작은 미소, 짧은 한숨이 함께 내려온다.


04 T.P. 약속

내가 좋아하는 시간, 새벽이 지나가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장소,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새소리, 물소리, 많이 들어서 참 좋다.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법칙 Ritual, Meditation, Walking. 단편적인 나의 생각들, 단어들.


05 낮 구르미

낮 구르미가 꾸물럭 거린다. 그 움직임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위로가 되는 건 하늘이고, 자연이다. 무엇을 위로받고 싶은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낮 구르미를 보며 슬며시 미소 지을 뿐이다.


06 별마당 도서관

바카라을 멀리한 지 오래되었네. 바카라은 작가의 시선을 담기 때문에 고르고, 또 고른다. 이왕이면, 고전이 좋다. 글 너머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오늘은 슬쩍 서점의 잡지 코너로 향했다. 여행을 떠닌지 오래되어 여행 잡지를 통해서라도 저 멀리 날아가고 싶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드뷔시의 피아노 곡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렇게 잠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07 화암사

3년 전부터 우리 가족은 1월 1일이면 화암사에 오른다.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어” 호언장담 했던 나는 아홉 살 둘째 아이보다 못 올라가 헉헉 댄다. 한 시간 반 남짓 올라가면서 나는 후회했다. ‘왜 올라가자고 했을까? 나는 왜 매번 쓸데없는 고생을 사서 할까?’ 스스로 탓을 하며 한 걸음씩 올라가다가 ‘투덜거리며 올라가니 더 힘들겠구나.’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는 매번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막상 어려움에 부딪히면 후회한다. ‘아! 왜 고생을 사서 할까?’ 그런데 반전은 정상에 도착한 뒤부터 시작된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 올라오길 잘했어! 이 맛에 올라오는 거지.”라고 외치며 흥얼거렸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갈대 같을 수가 있나? 마음은 한결 가벼웠지만, 다리에는 힘이 풀렸다. 아무래도 체력은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08 주름

오늘은 왜 그런지 사람들의 주름만 눈에 들어온다. 친정어머니의 눈가 주름, 이마의 주름, 아버지의 주름, 동네 할머니들의 주름. 사람들의 주름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거울을 보니 내 얼굴에도 주름이 늘었다. 요즘은 한숨을 쉬는 일이 잦아졌다. 분명 웃고는 있는데, 웬 한숨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이가 들고 주름이 하나둘 늘어갈수록, 차마 말하지 못하는 일들도 함께 늘어나는 것 같다. 나는 첫째 아이로 태어났다. 겨우 스물두 달이 되었을 무렵부터 부모님 품에 마음껏 안겨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남동생 녀석이 엄마의 껌딱지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바쁘셨고, 몸이 약한 어머니는 혼자 두 아이를 타지에서 돌보셔야 했다. 그래서인지 어린 나는 안아 달라는 말조차 쉽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나보다 더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분들에게도 마음껏 기대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 테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차마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이른 새벽 바카라상 앞에 앉아 제단 위 불꽃을 바라보니 잔잔한 나의 마음이 일렁인다. 깊은 주름 속에 녹아 있는 그네들의 인생을 내가 얼마나 알 수 있을까? 환한 웃음 뒤에 감춰진 한숨을 나는 얼마나 알아차릴 수 있을까? 주름은 세월이 남긴 흔적이며, 미처 꺼내지 못한 마음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존재들에게 아이처럼 마음껏 웃고, 울고, 누군가의 품에 안겨도 괜찮았을 시절, 그 시절에 충분히 안아 주지 못했던 마음이, 어른이 된 지금도 가슴 한편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 남겨진 마음에 원망이라는 어둠으로 물들기 전에, 누군가의 따스한 빛이 닿기를 바란다.


1월은 늘 나를 멈추게 한다. 생각의 흐름은 이어져 있지 않고, 단편적이다. 생각의 조각들을 나열해 보고, 다시 그 퍼즐을 맞추는 중이다. 아직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상징들로 나열되어 있다. 나의 생각은 동시 다발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출발점만 보여 전체를 볼 수 없다. 알 수 없는 생각과 눈에 들어오는 현상들을 나열하며, 그것들이 나에게 어떠한 것을 안겨주는지는 여전히 형태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구름을 잡았다 생각하지만, 잡았을 때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것처럼 1월의 나는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채 그 시간을 견디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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