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세상을 향해 피어나다

PART 2

by솔레일소노르

초록이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는 4월. 내 마음에도 조금씩 싹이 트고, 꽃이 핀다. 아직은 겨울의 쓸쓸한 마음이 한편에 남아 있고, 길이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 한다. 길에는 새싹이 조금씩 대지의 어머니의 품에서 고개를 든다. 고개 숙여 나의 깊은 마음만을 들여다보던 나도 슬며시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본다. 동면이 끝난 4월. 이제는 세상으로 나가야지.


01 봄

지난주까지 잘 보이지 않던 알록달록 색깔들이 산에 올라가니 하나둘씩 보인다. 올라갈 때는 겨울 같아, 무거운 몸을 데리고 걸어가니 더 무거워지는데, 내려올 때는 봄 같아, 가벼워진 몸에 바람이 스치니 내 마음도 봄 같다. 살이 오른 토실한 냥이가 물끄러미 나의 모습을 본다. 안녕 봄.


02 새싹

3월보다 가벼워진 몸이지만, 조금은 무겁다. 봄의 새싹들이 나의 마음을 스치는데, 그것이 위로가 된다. 어젯밤 꿈에서는 집에 심어둔 물망초, 바질, 로즈메리가 새싹을 틔웠다. 햇빛이 드리워진 창가에 새파랗게 돋은 새싹을 보며 꿈에서도 손뼉을 치며 좋아하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부비적 일어나 거실 창가에 놓아둔 화분을 바라보니 정말 손톱만 한 새싹이 돋았다. 새로운 시작과 생명력, 그것을 기억하는 4월의 봄.


03 꽃

꽃처럼 어여쁜 이에게 더러운 말을 뱉어낸다. 꽃처럼 어여쁜 이에게 더러운 말을 뱉어내면 꽃처럼 어여쁜 이도 더러운 말을 뿜어내지 않을까? 그러면 오직 꽃처럼 어여쁜 이의 향기도 아름다움도 내가 독점할 수 있지 않을까? 더러운 말을 뱉을수록 어여쁜 이는 꽃처럼 아름다운 말을 뱉고, 저 멀리 나에게서 멀어진다.


04 사랑

'수많은 사람 가운데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는 없나?'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스스로를 구석으로 밀어 넣곤 한다. 나를 붙잡아 일으켜 줄 존재는 없는 것 같고, 때로는 오히려 아래로 끌어내리는 존재만이 있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일어나야 했다. 내가 길러내야 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주변을 바라보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유난히 빛나는 한 소년이 있었다. 작고 부드러운 손, 아무것도 경계하지 않는 듯한 수줍고 환한 미소, 그 소년을 바라보다 문득 내가 키우고 있는 작은 소년을 떠올렸다. '나도 저렇게 길러내고 싶다.' 누군가가 나를 일으켜 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완벽하게 사랑해 주기를 기다리도 않는다. 대신 내가 사랑하고 싶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일으켜 주고 싶다. 그것은 의무도 바카라임도 아니고, 꽃이 피어나듯 자연스럽고 밝은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건네는 일이다. 그 마음이 오래 머물지 못하고 시들어진다 해도 다시 피어내고 싶다.


05 마침표

마침표를 찍는다.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난 나에게 말해준 마침표 메시지. 종종 거리며, 사람들을 살피며 살았던 나의 모습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편안한 모습을 알았던 걸까? 아침 산바카라길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앞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가 가만히 다가와 몸을 비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내가 맺어온 관계들을 떠올렸다. 나 역시 좋다고 다가가고, 마음을 내어주었던 관계들이 있었다. 그러나 가까워진 뒤 먼저 할퀴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이었다. 그 상처까지 내가 바카라임질 필요는 없었다. 다가가는 마음은 나의 것이고, 할퀴는 행동은 그 사람의 것이다. 모든 관계를 끝까지 붙잡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제는 몇몇 관계에 조용히 마침표를 찍는다. 너도 나도 자유롭게 각자의 자리에서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06 용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오래된 아파트, 어두운 조명, 꿈에서 나타난 그 방은 고등학생 시절 부모님과 함께 살던 낡은 군인 아파트이다. 나는 부모님께 내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소리쳤지만, 입만 벙긋거릴 뿐, 소리가 나지 않았다. 울며, 소리쳤지만,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내가 소중히 여기던 보라색 천을 아버지는 밟았고, 어머니는 그 모습을 외면했다. 흐느끼며 울다 일어난 아침, 요 며칠 계속 별 것 아닌 말에 상처를 받는다. 특히 가까운 관계에서 나는 상처를 받았다 생각했고, 지나온 세월이 슬퍼졌다. '꿈에서 나는 왜 소리 내지 못한 것일까?' 떠올려보면, 어떤 일이 생겼던 그 순간, 나는 바로 표현을 하지 못해서 그것이 슬픔으로 상처로 번졌으리라. 결국 내가 가장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은 그 순간 내가 소중히 여기던 것을 지키지 못했던 나 자신이었다. 이제는 나를 용서해도 되지 않을까?


07 보라색 로브

“소라 씨! 여기에요.” 꿈에서 나는 빛으로 채워진 신전에 와있다. 흰 옷을 입은 여사제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든다. “무슨 일이실까요?” 내가 되묻는다. “이제 새로운 로브를 맞출 때가 되었어요. 전에 입던 것은 낡았거든요.” 여사제는 나의 새로운 보라색 로브 치수를 재며 기쁘게 맞이한다. 잠에서 깬 나는 최근에 일어나는 나의 인식의 변화를 살폈다. 살아가는 의미가 별로 없었던 나에게 유일하게 사람들을 돕거나 무언가를 함께 할 때 기쁨을 느꼈다. 그래서 상대의 요청을 대부분 거절하지 못했었는데, 최근 나는 여러 관계에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생각이 들었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로브를 맞춘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보라색은 변형을 뜻하고, 새로운 로브도 이제 나의 역할이 돌봄에서 머무르지 않고, 다른 비전을 보고 일어서야 할 때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08 딱 이틀

딱 이틀만 아프자. 몸이 여기저기가 쑤셨다. 한동안 괜찮았던 몸이 조금 우울한 듯하다. "딱 이틀만 아프자."라고 혼자 중얼거렸던 것은 며칠 전 꾸었던 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바다 위를 걷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이들로 보였지만, 어쩌면 내가 안내해야 하는 여러 사람들 중 몇몇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은 꿈에서 자유롭게 수면 위를 서고, 걷고, 뛰었다. 그 모습을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듯 아이들은 나와 함께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그 장면이 잊히지 않았다. 현실의 몸은 꿈속처럼 자유롭지 않아서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는 않았지만,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딱 이틀만 아프자."를 중얼거렸다. 그래서 딱 이틀은 침대와 한 몸이 되어보기로 했다.


4월은 겨울을 완전히 떠나보내는 시간이었다. 고개를 숙여 내 안만 바라보던 시선을 조금씩 세상으로 돌렸고, 새싹이 움트는 계절처럼 내 마음에도 작은 희망이 자라기 시작했다. 여전히 상처는 남아 있었고, 사람들의 말은 때로 내 마음을 흔들었지만, 꽃은 누가 바라보지 않아도 피고 자신의 향기를 잃지 않는다. 봄으로 뒤덮인 자연을 바라보며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를 일으켜 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일어나 사랑을 선택하고, 그 사랑이 누군가의 마음에도 작은 봄이 되어 다시 피어나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꽃처럼 피어나고, 다시 한 걸음 세상으로 나아간다.

월요일 연재
이전 06화PART 2. 꿈이 피어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