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비우고 바라보고 다시 걸어간다

PART 1

by솔레일소노르

물병자리인 나의 생일이 있는 달, 2월. 몸이 무거워진 1월을 지나, 2월이 다가오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직은 밤이 길어 깜깜한 새벽 5시 반, 주섬주섬 입고, 산바카라을 나선다. 20대의 2월은 마음이 항상 우울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마음과 몸 둘 다 우울하다. 우리네 엄마들도 그랬을까? 차가운 공기는 내 빰을 스치며, 우울하던 생각을 얼어붙게 만든다. 7시가 다 되어가니 슬며시 해가 고개를 든다. 1시간 반 남짓 걷고 나면 우울한 몸도 마음도 개운해진다.


01 나들이

멀미가 있어서 서울을 갈 때면 지하철을 주로 이용했었는데, 오늘은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나들이를 간다. 혼자 온전히 있을 공간이 없어서 나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떠올리고, 행동으로 옮겨본다. 물끄러미 창밖을 보는데, 친정 가족이 떠오른다. 친정어머니와 올케… 생각해 보니, 올케가 20살 남짓 되었을 때 만나 가족이 되고, 그래서 올케라기보다 여동생 같다고나 할까? 특별히 가깝지도 멀지도 않으며 오랫동안 바라보니 서로가 많이 성장했구나 싶다. 나들이 가며 되돌아보게 된 시간들을 나의 감정과 함께 추억 서랍에 담아둔다.


02 오리 부부

오리는 서로 사이가 좋다고 한다. 청계천을 지나가는데, 암수가 짝을 이뤄서 다니고 수컷이 꼭 암컷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짝짓기 철인가? 작년은 신랑과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서로가 마음이 상했던 날이 겹겹이 쌓이니 서로 대면대면 했다. 아이를 함께 양육하는 비즈니스 커플 같다고나 할까? 둘 다 두 번째 결혼이고, 내 아이를 함께 키우는 사이다 보니, 처음에 좋았던 마음이 현실과 부딪혔을 때, 자꾸 미움으로 변질된다. 오리 부부를 보면서 ‘우리도 너희 같으면 좋겠네.’ 이런 생각을 해본다.


03 스며든다

편을 가르는 마음은 사람들 마음으로 쉽게 스며든다. 선을 위한 행동이라 말하는데, 그 말속에는 사람을 나누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자니, 씁쓸하고, 쉽게 휩쓸려 가는 내 마음을 보고도 씁쓸하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서 있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데, 조금 버겁다. 인정받으려고 시작한 일도 아니고, 어떤 위치를 얻기 위함도 아니고, 사소한 이유에서 시작했던 일이 조금씩 확장되어 여기까지 왔다. 자신의 것을 내놓지 않으려는 사람들, 봉사에 대한 대가를 원하는 사람들, 감정에 치우쳐 일을 그르치는 사람들, 그 틈바구니에 내 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간다. 비난받고 거절당하는 것은 그리 겁나지 않는다. 일생이 그래왔으니까. 단지 내가 바라는 것은 분리의 마음이 내 마음에 스며들지 않고, 선으로 포장하는 마음을 구분하고, 타협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04 상처

참 오래된 상처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가슴을 후벼온다. 따스한 태양 아래에서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걸으면 참 좋으련만, 바쁜 일정에 실내에서 반려 식물들을 살피는 일과만이 구멍 난 가슴을 메울 뿐이다. 테이블 위에 있는 반려 식물을 들여다보니 이파리에 내 맘처럼 구멍이 나있다. 수경 재배가 가능한 아이로 단단한 녀석인데, 공간에 가득했던 무거운 기운을 대신 받아낸 것만 같았다. '내일은 따스한 햇살과 은은한 달빛을 받아 내 기운을 채워 너를 치유하는 에너지를 보내줄게. 상처는 아물고, 언젠가 새 살이 돋겠지. 그 치유는 스스로 일으키니 우리 힘을 내 보자.' 혼자 중얼거리며, 반려 식물의 이파리를 만지작 거려본다.


05 남한산성

눈 쌓인 남한산성 입구 언저리에서 서성이고 싶어서 차를 타고 나섰다. 이른 아침이면, 사람들도 거의 없어서 주차하기도 편하다. 차로 타고 구불구불 고개를 넘어간다. 경기 경기 광주에서 넘어오는 그 길도 아름답지만, 성남에서 넘어가는 남한산성 가는 길도 아름답다. 나뭇가지 위에 소복이 쌓인 흰 눈은 나를 마치 겨울 왕국으로 초대하는 듯하다. 주차장에서 차를 세워두고 남한산성 행궁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는데, 그 길이 무척 아름다워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카메라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무언가 남기고 싶었다. 사진으로 몇 장을 남기고, 눈으로 담아 기억의 바위에 새겨보기로 했다. 꼭꼭 눌러 그림으로 새겨 두면 원할 때 바위에 새겨둔 그림이 햇빛을 조명 삼아 하늘 스크린에 그림을 띄어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06 바다

아버지가 해군이셨기 때문에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주로 바다를 끼고 살았다. 바다와 태풍은 나에게 참 익숙하다. 겨울 바다는 매섭지만, 답답한 내 마음을 뻥 뚫어 준다. 아침 일찍 차를 타고 나섰다. 유난히 오늘은 춥다. 손도 시리고, 귀도 시리지만, 우울했던 마음은 조금씩 뻥 뚫리는 듯하다. 한숨을 세 번 내쉬고, 다시 깊이 숨을 들이마시기를 반복한다. 바다는 나에게 친정 같은 곳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무인도로 낚시를 가곤 했다. 바다를 넘나들며 석화를 따 먹고, 조개껍데기를 줍던 기억이 떠오른다. 얼굴이 새까맣게 타도록 모래찜질을 하며 세상 편안하게 지내던 여름 바다도 생각난다. 그런 바다를 마주하니, 이제는 내가 바카라임져야 할 무언가가 생겼다는 사실을 느낀다. 언젠가 동해의 겨울 바닷속으로 들어가 겨울에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미잘을 꼭 보고 싶다.


1월 생각의 조각들은 조금씩 퍼즐이 맞추어지고 있다. 어떠한 생각은 우울함으로 다가왔고, 다시 기쁨으로 바뀌고, 또 어떤 생각은 기쁨이었다가 어둠으로 변한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는 나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안다. 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얼어 있던 땅이 조금씩 녹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싹이 자라나듯, 나 역시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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