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울었던 사람들은 여인들이었다
『일리아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한동안 바카라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내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 울림을 준 것은 승리한 영웅의 고함도, 패배한 군대의 비가(悲歌)도 아니었다. 성벽 안쪽, 어두운 그늘 아래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여인들의 모습이었다.
아킬레우스는 마침내 분노를 거두고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준다.
늙은 왕 프리아모스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안고 아들의 차디찬 시신을 품에 안은 채 트로이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침내, 트로이 성안에서 영웅 헥토르를 보내는 마지막 장례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모두 모여 트로이의 수호자였던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러나 그 애도의 문을 가장 먼저 열고 울기 시작한 이들은 여인들이었다.
첫 번째로 안드로마케가 앞으로 나선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절망으로 운다.
이제 지붕이 사라진 집에서,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온기 없이 가혹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이어서 헤카베가 운다. 그녀는 제국의 왕비이기 전에, 아이를 품에 안아 키워낸 어머니의 고통으로 운다.
자식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엄혹한 운명 앞에서 왕비의 존엄은 무너지고 오직 엄마의 눈물만 남는다.
마지막으로 헬레네가 다가온다.
모두가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전쟁의 원흉이라 비난할 때, 유일하게 따뜻한 눈길로 감싸주었던 헥토르의 다정함을 기억하며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린다.. 전쟁은 끝났지만 눈물은 끝나지 않았다ㄴ2
세 사람의 울음은 저마다 달랐다.
그러나 그 눈물들이 다다르는 곳은 모두 같았다.
"전쟁은 누군가의 승리로 끝날지 몰라도, 남겨진 이들의 슬픔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일리아스』를 다 읽고 나서야 새삼 깨달았다.
호메로스는 칼과 창이 부딪히는 영웅들의 장엄한 전투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었다.
그 찬란한 서사 뒤편에 남겨진 이들의 조용한 눈물 역시 똑같은 무게로 기록해 두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일리아스』는 삼천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우리 마음을 깊게 흔드는 것이리라.
우리의 삶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세상은 누군가를 성공이나 승리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부재(不在)', 한 사람의 깊은 빈자리로 기억될 뿐이다.
세월은 상처 위로 흉터를 덮을 수는 있어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의 흔적을 영원히 지워내지는 못한다.
성경은 애통해하는 이들의 마음에 대해 이렇게 나지막이 전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마태복음 5장 4절
눈물은 결코 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누군가를 온 온기 다해 사랑했다는 가장 투명한 증거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울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내 마음 깊은 곳에 사랑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리아스』는 정복의 환호나 승리의 노래로 끝나지 않는다.
가장 인간적인 애도의 노래로 그 거대한 막을 내린다.
그 마지막 장례의 풍경이 오래도록 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어쩌면 위대한 서사시란 전쟁의 잔혹함을 기억하게 하는 바카라이 아니라,
그 절망적인 전쟁 속에서도 끝까지 '인간의 마음'을 잃지 않았던 이들을 기억하게 하는 바카라인지도 모른다.
바카라을 완전히 덮은 지금,
내 마음에 가장 길게 잔향으로 남아있는 것은
영웅들의 드높은 함성이 아닌,
세 여인이 조용히 흘렸던 그 눈물방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