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왜 응답되지 않았을까

테아노는 왜 끝까지 손을 모았을까

by운조



​살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끝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때이다.


​우리는 기도하면 당연히 어떤 형태로든 응답이 돌아올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일리아스』에는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한 기도가 등장한다.

​그 기도를 드린 사람은 트로이의 여사제, 테아노였다.


​『일리아스』 제6권.

전쟁의 기운은 점점 트로이에 불리하게 기울어가고 있었다.

트로이의 수호자 헥토르는 잠시 성안으로 돌아와 어머니 헤카베 왕비에게 부탁한다.

아테나 신전으로 가서 가장 아름다운 예복을 바치며, 트로이를 구해 달라고 기도해 달라는 청이었다.

​헤카베는 왕실 깊은 곳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예복을 골라 여사제 테아노에게 건넸다.

테아노는 트로이의 여인들과 함께 아테나 신전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려 간절히 기도했다.

​"트로이를 살려주소서. 우리의 아이들과 남편들을 지켜주소서."

​그러나 호메로스는 그 절박한 순간을 짧고도 담담한 한 문장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아테나 파라스는 기도를 거절했다."

​그 한 문장을 읽으며, 나는 한동안 바카라장을 넘기지 못했다.


​기도가 부족해서였을까.

바친 예복이 미흡했거나, 그들의 믿음이 약해서였을까.


​아니다. 『일리아스』는 기도를 올린 이들의 진심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아무리 눈물로 애원한다 해도,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흐름이 있음을 가만히 보여줄 뿐이다.


​그 장면은 자연스럽게 내 삶의 지나온 순간들을 돌아보게 했다.

​우리 역시 살아가며 응답받지 못한 기도 몇 채쯤은 가슴에 품고 살아가지 않는가.

차디찬 병상 곁에서 밤을 지새우며 드렸던 기도.

숨죽여 눈물 흘리며 드렸던 기도.

내가 아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온 마음을 쥐어짜며 드렸던 기도들.

​응답이 끝없이 지연될 때, 혹은 끝내 바람과 다른 결과를 맞이할 때,

우리는 문득 외롭고 쓸쓸해진다.

'내 기도가 온전히 닿지 못한 것은 아닐까', '기도란 한낱 헛된 메아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테아노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기도의 참된 가치는 오직 '응답의 여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도는 신의 뜻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놓는 기술이 아니라,

어떠한 절망 앞에서도 기도하는 사람 자신의 마음을 단단히 붙드는 거룩한 행위였다.


​성경에도 응답을 조급히 구하기보다, 그 과정 자체를 견디며 기다리는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성경 역시 우리가 바라는 모든 기도가 원하는 모양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에도 기도의 손을 놓지 말라고 나지막이 당부한다.


​『일리아스』 속 테아노는 거절당할 운명 앞에서도 끝까지 두 손을 모았다.

치열했던 전쟁의 함성보다 더 오래 내 마음에 남은 것은 바로 그 여사제의 기도하는 뒷모습이었다.


​바카라을 덮으며 가슴에 새겨진 것은 '응답받지 못한 기도의 슬픔'이 아니었다.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한 인간의 숭고한 신앙과 믿음이었다.


​어쩌면 기도는,

내 뜻대로 결과를 바꾸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떠한 결과가 찾아오더라도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이며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가만히 두 손을 모으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