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원짜리 소금소태

질투로 떠난 여행이 행복할리가 4

by하누

처음 보는 요리를 주문하는 일이란 모험의 일종이다. 유럽 여행 같은 큰돈이 드는 모험은 선뜻 시도할 수 없었지만, 한 끼의 식사라면 달랐다. 여행보다 적은 돈에 모험을 할 수 있었다. 신제품을 먹어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이 설령 편의점 김밥, 프랜차이즈 햄버거라도. 이 작은 모험의 결과는 끔찍하기도,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근사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으로 해외의 맛을 본 나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태국 요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내 입맛에도 쏙 맞았다. 팟타이의 두껍고 쫄깃한 면발, 게살이 덩어리째 아낌없이 들어간 커리, 매콤새콤한 맛과 상쾌한 향이 이국적으로 어우러지는 똠양꿍까지. 대부분의 작은 모험이 대성공이었고,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이 여행 이후로 나는 태국 요리를 일상적으로 즐기게 되었고,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여행에서 나는 태국식만 도전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최초로 한 끼에 5만 원, 10만 원 하는 고급 레스토랑에 가본 것도 이때였다. 양식은 국내에서도 접할 수 있는데 왜일까? 미식 문화가 발달된 태국은 외국 요리들도 훌륭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씀씀이의 벽이었을 것이다. 이때의 나는 8천 원짜리 외식도 큰마음을 먹어야 했고, 학기 중 점심에 주로 먹는 건 2200원짜리 김밥이었는데, 그런 내게 해외여행이란 6만 원짜리 코스요리를 먹어볼 훌륭한 구실이었다.


이때의 나는 치즈 퐁듀에 환상을 품고 있었다. 녹인 치즈를 이것저것에 맘껏 찍어 먹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훌륭한 요리란 말인가? 치즈를 좋아하는 내게는 ‘전설의 포켓몬’ 같은 ‘전설의 요리’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방콕에 퐁듀를 잘하는 스위스 요릿집이 있다는 말에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 찾아가게 된 것은 당연지사였다.


“우와!”


서빙된 퐁듀를 본 나는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황금빛의 녹인 치즈와 빵, 형형색색 다양한 채소와 고기……. 나는 제일 먼저 빵조각을 치즈에 푹 찍어 입에 넣었다. 치즈 특유의 녹진한 감칠맛을 기대하면서.


“윽!”


그런데 이럴 수가, 기대한 맛이 아니었다. 퐁듀는 엄청나게 짰다. 너무 짜서 감칠맛은커녕, 짠맛 외의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소금소태였다.


“저기요, 퐁듀가 너무 짜요. 거의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예요.”


틀림없이 간을 잘못한 것이라고 여긴 나는 웨이터를 불러 말했다. 그런데 웨이터의 반응이 의외였다. 그는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했다.


“짜다고요? 여기엔 소금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어요. 있는 그대로의 치즈의 맛이에요.”


나는 의아했다. 이렇게 짠데 소금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아마 스위스 요리를 처음 먹어봤나 보군.”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아니면 영어 실력이 부족해 웨이터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옆 좌석에 앉아 있던 백인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그는 홀로 퐁듀를 먹고 있었다.


“네, 맞아요.”

“난 프랑스에서 왔고, 11개의 나라를 여행했어. 정말 많은 치즈를 먹어봤지. 이 짠맛은 치즈를 제조할 때 넣는 소금의 맛이야. 이 식당의 요리사에게 말해도 짜지 않게 만들어주진 못할걸. 그리고 이건 내 입맛에는 딱 적당하고 맛있어.”


아저씨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아, 그래요?”


치즈란 전부 고소하고 감칠맛이 나고 짜지 않은 게 아니란 말인가? 치즈를 좋아하긴 하지만, 노란색 네모 치즈나 피자 치즈 정도만 먹어본 내게 미식가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나는 비주얼은 먹음직스러운, 황금빛으로 녹아 흐르는 치즈를 노려보았다.


미식가가 되려면 이런 짠맛에도 익숙해져야 하는 걸까? 지금의 내가 이것을 맛있게 먹을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치즈를 먹어보아야 하는 걸까.


“이 식당의 퐁듀는 정말 훌륭해. 난 스위스에도 가보았지만 스위스에서 먹는 것에 비해 전혀 뒤처지지 않아. 그리고 내가 사는 프랑스에선…….”


프랑스인 아저씨가 끊임없이 설명했다. 이 대화를 여행객 사이에 으레 있는 스몰토크로 여기는 모양이었지만, 그 분량과 일방적인 방식은 거의 양식에 대한 강의에 가까웠다. 중년의 백인 남성에게 어수룩하고 어린 동양인 여자가 얼마나 안성맞춤의 학생으로 느껴질지 예상이 갔다.


그다지 반응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아저씨의 설명을 배경음악으로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런 요리는 평생 맛있게 먹을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러긴커녕, 이런 여행을 또 할 기회가 있을지조차 그때의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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