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내 신발을 신겨준 남자

질투로 떠난 여행이 행복할리가 3

by하누

고생길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치앙마이 대학교는 캠퍼스가 넓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걸어서 캠퍼스를 한 바퀴 돌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선택지에는 여행사 투어나 기사 대절이라는 선택지가 없었는데, 물론 예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설마, 넓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나 넓을 줄이야! 오후 4시부터 걷기 시작한 나는 6시가 넘어서야 캠퍼스 반대편에 도착했는데, 정문과 달리 그곳은 굉장히 한적했고 드물게 오토바이나 승용차가 지나다닐 뿐 툭툭이나 썽태우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굉장히 지쳐 파김치 상태였으며, 설상가상으로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지고 있는 상태였다.


막막한 내 눈앞에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젊은 여성 두 명이 타고 있는 오토바이였다.


“저기요, 잠깐만요!”


그렇게 나는 오토바이를 세 명이서 나눠 타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첫 여행이라 그랬을까, 젊어서 그랬을까? 내게는 가고 싶은 곳이 넘쳐났다. 치앙마이에서 봉고차를 타고 굽이굽이 산골짜기를 3시간 달려야 갈 수 있는 작은 산속 마을, 빠이도 가보고 싶었다. 푸켓에서 버스로 8시간, 남단 마을에서 하룻밤 숙박한 뒤 아침 배를 타고 1시간을 항해해야 도달하는 국립공원 섬, 무꼬 쑤린도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갔다.


무꼬 쑤린의 자연환경은 태국 정부로부터 철저히 보호받고 있다. 사설 숙소 같은 상업 시설이 전무하며, 오로지 공원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식당과 샤워장, 캠핑장이 전부다. 나는 그곳에서만 2박 3일을 묵었다.


육지 선착장에서 무꼬 쑤린으로 향하는 보트 안에서 한국인 여행객들을 만났다. 50대 중년 부부와 그들의 친구였다. 상당히 운이 좋은 일이었다. 이 여행을 통해 혼자 놀기에 도가 튼 나라도 2박 3일 동안 그 작은 섬에서 혼자 놀면 외로웠을 것이다.


“무꼬 쑤린에 혼자 간다고? 첫 여행인데? 이십 대 여자애가?”


부부의 친구가 기함했다. 그들은 무꼬 쑤린에만 두 번째라고 했다.


“좀 용감했죠?”


멋쩍게 웃자, 부부의 친구가 단언했다.


“용감하긴 얘, 만용이지!”


나도 겁을 안 먹었던 건 아니다. 무꼬 쑤린에 있는 내내 텐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도 내게 상당히 걱정스러운 부분이었다. 그래서 문단속을 하기 위해 자물쇠를 챙겨온 참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나 보다.


걱정과 달리 무꼬 쑤린에서의 2박 3일은 즐거웠다. 난생처음 한 스노클링은 무척 재미있어서 오전, 오후에 한 번씩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스노클링을 하지 않을 때는 해먹에서 낮잠을 자거나 바카라을 읽었다. 함께 밥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도 좋았다. 오래 같은 곳에서 숙식하다 보니 내성적인 나도 자연스레 다른 여행객들과 말을 섞게 되었다.


하루는 한국인 일행 세 명과 함께 식당에서 원카드를 하고 있으니 백인 남자아이 한 명이 기대에 찬 얼굴로 기웃거렸다. 가족들과 함께 온 스위스 아이였다.


“같이 할래?”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쳤다.


“예스!”


무꼬 쑤린에서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오전, 오후마다 공원관리공단에서 진행하는 스노클링 투어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섬에 상주하는 싸바나 여행사에서 비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스노클링 투어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미 공원관리공단 투어에 거의 대부분 출석하고 있었지만, 여행사 투어는 가이드가 개인적으로 아는 더 비밀스럽고 좋은 스팟에 간다고 들었기에 내심 그쪽도 기대하고 있었다.


이틀째 되는 날 오후였다. 싸바나 여행사에서 스노클링 투어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명부에 제일 먼저 이름을 올렸다.


여행사의 스노클링 투어의 방식은 공원관리공단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트 운전사와 가이드, 5~6명 정도의 여행객들이 작은 보트에 타서 스팟으로 향한다. 약 2시간 동안 몇 군데의 스팟에서 스노클링한 뒤 돌아온다.


여행사 직원이 추천하는 스팟들은 끝내줬다. 알록달록한 산호와 열대어로 가득한 그곳은 총천연색의 천국이었다. 정말 많은 니모와 도리, 그 외에도 이름 모를 물고기들을 잔뜩 보았다.


더 좋았던 건, 가이드가 나를 정성껏 챙겨줬다는 거다. 미취학 아동까지도 보호장구 없이 헤엄을 치는 외국인 여행객들 사이에서 수영을 못하는 내 손을 이끌고 다녔다. 말미잘 안에 숨어 있는 니모를 보여주겠다고 말미잘을 맨손으로 뒤지기도 했다.


마지막 스팟을 찍고 배에 오를 때, 젖은 발이 미끄러져 오리발과 아쿠아슈즈가 통째로 벗겨졌다. 나는 두툼한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아쿠아슈즈를 신으려고 허우적거렸다.


그때, 누군가가 내 손 안의 아쿠아슈즈를 가져갔다. 가이드였다. 그는 배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내 발에 신발을 신겨주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가 함께 투어를 온, 전에 원카드를 함께했던 스위스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어색하게 웃었다. 봐서는 안 되는 내밀한 풍경을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보트가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여행객들은 즐겁지만 지친 얼굴로 보트에서 내렸다. 하늘에는 벌써 오렌지색이 비치고 있었다.


“이봐.”


따라 보트에서 내리던 내게 가이드가 말을 걸었다.


“이 섬에서 제일 석양이 아름다운 스팟을 알아. 함께 갈래? 단둘이서.”


그가 그을린 입술 사이로 흰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깨달음이 섬광처럼 스치고, 내 머릿속에 지난 투어의 풍경들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왜 가이드가 나를 끌고 다니며 좋은 구경을 시켜주었을까? 난 그냥 내가 제일 수영을 못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왜 가이드가 무릎을 꿇고 내게 신발을 신겨 줬을까? 난 그가 서비스 정신이 아주 투철한 줄 알았다. 왜 그걸 본 스위스 남자아이가 어색한 얼굴을 했을까? 난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아니!”


난 그가 무안해질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난 됐어! 괜찮아, 고마워!”


나는 해변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창피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눈치가 없을 줄이야! 어떤 의미가 담긴 줄도 모르고 호의를 덥석덥석 다 받다니!


그리고 솔직히, 조금 무섭기도 했다.


현지인인 데다가 이 장소에는 잔뼈가 굵은 여행사 직원과 태국어도 영어도 서툰 나 홀로 여행객 외국인 여자애인 나.


이건, 빈약한 자물쇠 따위로는 막을 수 없는 위협이었다.


“여행사 투어는 어땠어?”


그 길로 식당에 가자 중년 부부 중 한 사람이 물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았다.


“좋았어요.”

“그러니까 세금이 너무 많은 게 문제야. 이건 계급 상승의 사다리를 끊는 거야. 우리 같은 의사들은, 영영 상위 계급에 진입하지도 못한 채…….”


세 명 중 두 사람은 정치 얘기에 한참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하누 넌, 사범대생이라고 했지?”

“네. 자퇴할지 고민 중이지만요.”

“세상에, 미쳤다. 사범대를 그만둔다니.”

“절대 그러지 마라, 얘.”


의사도 상위 계급에 진입하기 어려운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사범대를 자퇴하고 글을 쓴다는 생각은 확실히 ‘미친’ 발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의 걱정 섞인 호들갑을 웃어넘기며 나의 여행에 대해 생각했다. 이 햇병아리의 만용으로 가득한 미친 여행에 대해.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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