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셨나요 히치하이킹

질투로 떠난 여행이 행복할리가 2

by하누

“저는 한국을 좋아해서 매년 여름마다 가요.”


그렇게 간 태국 여행에서 나는 난생처음 히치하이킹을 했다.


나를 태워준 자동차 운전자,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언니가 친근하게 말을 붙여왔다.


“한국 드라마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별에서 온 그대’ 봤어요?”


언니는 패션과 트렌드에 능한 듯, 스타일리시한 차림새에 머리 위엔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었다.

그에 반해 어중간한 핏의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나.


“아, 아니요…….”


난 트렌드라고는 정말로 젬병이라, 당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구가하던 드라마조차 보지 않은 상태였다.


“아아…….”


언니가 어색하게 웃었다.


큰일 났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한국을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 팬인 운전자 언니는 모처럼 한국인과 동행하게 되어 반가운 모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기대에 화답해줄 수 없었다.


접해본 한국의 방송과 트렌드를 기준으로 국적을 정한다면, 나보다는 언니 쪽이 더 한국인에 가까울 거다.


모처럼 남의 차를 얻어타게 되었으니, 재미있는 말상대라도 되어주는 것이 보답할 도리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러기엔 난 말주변 없고 내성적인데다 영어 실력도 변변치 않은 외국인이었다.


조수석과 옆좌석에서 언니의 일행들이 재잘재잘 태국어로 떠들어댔지만, 나는 그 말을 이해하거나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어쩌다 남의 차에 동승하게 되었느냐면, 거기엔 사정이 있었다.


내 첫 여행은 순탄치 않았다. 경험도 없는데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않으니 당연했다. 식사는 거의 로컬 식당에서 해결했고, 항상 6~8명이 한 방을 쓰는 숙소에서 잤다. 그래도 태국 음식은 어디서 먹어도 맛있었고, 욕심에 비해 부족한 일정에 빡빡한 계획을 소화한 뒤 자는 잠은 어떤 침대에서라도 달콤했다.


하지만 첫 여행이라고 신이 나서 그렇게 열심히 조사하고 준비했는데도, 여행에선 절대 계획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배웠다.


태국의 제2 도시인 치앙마이는 높은 지대 위, 산속에 둘러싸여 있다. 태국에는 약 110개의 온천이 있는데, 목욕을 좋아하면서 천연 노천 온천에 가본 적이 없던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치앙마이 근교의 싼캄팽을 일정에 넣었다.


치앙마이에서의 교통수단이라곤 오토바이 인력거와 비슷한 툭툭과 트럭 모양의 버스, 썽태우가 전부였다. 택시가 존재하긴 했지만, 당시엔 그랩과 같은 어플 서비스가 없었기에 바가지를 쓸까 봐 잘 이용하지 않았다. 나는 썽태우를 타고 치앙마이의 숙소에서 싼캄팽 온천으로 향했다. 굽이굽이 시골길을 1시간 30분 정도 달린 끝에 나는 온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온천엔 사람이 제법 많았고, 특히 어린이를 대동한 가족 단위 이용자가 많았다. 물장구치는 어린이들을 구경하며 나는 온천을 즐겼다. 싼캄팽 온천의 물은 기대만큼 훌륭했고, 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후 3시쯤 되었을까, 온천욕을 실컷 즐긴 나는 조금 이르지만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는 데 1시간 30분이 걸렸으니, 지금 출발하면 적당한 시간에 치앙마이의 시내에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주차장이 있는 싼캄팽 온천의 입구로 왔는데, 뭔가 이상했다. 입구가 굉장히 한적하다. 오가는 사람이나, 주차장에 차도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대중교통수단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 같은 여행객을 위한 썽태우나 툭툭이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은근한 불길함을 느꼈지만, 이때만 해도 당연히 돌아갈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불안감과 희망 사이에서 두리번거리던 나는 썽태우 정류장을 발견했다. 이거다! 정류장이 있으면 썽태우가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정류장에 적힌 시간표를 살펴보았다.


마지막 차…… 오후 2시 45분. 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마지막 차가 이미 떠났다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당시의 싼캄팽 온천은 산골짜기 교외에 있으며 주변에 온천 외의 시설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마저도 오후 6시면 닫는다.


그랩 같이 택시를 호출할 수 있는 어플도 없었다. 이 산속에서 정처 없이 걸어 내려갈 수도 없는 일이다.

대체 왜, 온천 영업시간이 오후 6시까지인데 온천에서 나가는 썽태우의 막차가 오후 3시도 되기 전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나 같은 뚜벅이 이용자가 거의 없는 곳일지도.


아무튼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말도 안 돼! 내일 아침까지 나가는 차를 탈 수 없단 말이야?’


나는 멍하니 주차장을 바라보았다. 밝은 얼굴로 온천에서 나온 한 가족이 차에 타는 모습이 보였다. 아아…… 저 차에, 저 차에 탈 수만 있다면. 제발 곤란한 제 모습을 보고 차에 태워주세요. 하지만 나의 애타는 심정은 꿈에도 모른 채로 차는 금방 주차장을 넘어 치앙마이 방향으로 사라져버렸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차에 타는 생각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온천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차에 태워달라고 하는 것.


그렇다, 히치하이킹!


당연히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히치하이킹은 꽤 위험한 일이었고, 20대 초반의 외국인 여자애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는 사실을 나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명 꺼진 온천 시설에서 밤을 새우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게다가 나에게는 나름 전략이 있었다.


‘남자들만 있는 차는 타지 말아야지. 무서우니까.’


마침 눈앞에서 젊은 남성 무리가 차에 타고 있었으나 나는 그들을 붙잡지 않고 떠나보냈다.


‘한 명은 안 돼. 가급적 젊은 여성 여러 명. 놀러 온 대학생 친구들처럼 보이면 더 좋고. 아니면 어린이가 있는 가족도 좋아.’


그게 그때의 내게 가장 경계심이 덜 드는 집단이었나 보다.


때마침, 눈앞에 내가 생각한 그대로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젊은 여성 세 명에 순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 한 명, 또래 친구로 보이는 무리가 웃고 떠들며 차에 타고 있었다.


“저기요, 잠깐만요!”


난 창피함을 참으며 용기를 내어 소리쳤다.


“죄송한데, 저 좀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실은…….”


운 좋게도, 마음 착한 그들은 내게 흔쾌히 뒷좌석 한 자리를 빌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치앙마이의 숙소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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