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대학생 전재산을 털다

질투로 떠난 여행이 행복할리가 1

by하누

꿈만 같았어야 할 나의 첫 해외여행은 의외로 불행했다.


어릴 때의 나는 항상 ‘여행’, ‘모험’이란 말에 가슴이 뛰는 어린이였다. 그때의 나는 애니메이션 <핑구> 비디오를 돌려보고 또 돌려봤는데, 비디오의 오프닝 영상에서는 핑구가 봇짐을 매단 막대기를 들고 걸어갔다. 나는 엄마를 채근해서 만든, 야구방망이에 매단 봇짐을 들고 자랑스레 걷곤 했다. 언젠가 이 봇짐에 내가 좋아하는 과자와 음료를 잔뜩 싸 들고, 여행 놀이 따위가 아닌 ‘진짜’ 여행을 할 거라고 기대하면서.


하지만 ‘진짜’ 여행을 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1990~2000년대에는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이 지금만큼 흔치 않았기도 하거니와, 그런 흔치 않은 여행을 할 정도로 우리 집은 형편이 좋지도 않았다. 짜장면이 생일에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부모님은 비행기를 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성인이 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가족여행이라곤 네다섯 번 계곡이나 바닷가에 간 일 정도가 전부였다.


“나는 절대 비행기는 안 탈 거야.”


아빠는 큰소리쳤다.


“차로도 갈 수 있는 곳이 이렇게 많지 않니?”


비행기는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나. 바카라과 신문을 많이 읽어 잡지식이 많았던 아빠의 머릿속에 숱한 비행기 추락 사건들이 깊은 공포심을 남겼던 건지, 아니면 비행기를 탈 수 없는 당신의 사정을 수용하는 방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의 덜컹거리는 다마스 뒷좌석에서 나는 비행기에 타면 어떤 기분일지, 얼마나 흔들릴지 상상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대학교에 들어가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우리 집 같은 형편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역 명문이었던 고등학교에서 사귄 친구들 중 해외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격차는 서울 소재 명문 여대였던 대학교에서 더욱 심각해졌다. 부모님이 대학을 나오지 못했을 거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학우들의 말에서, 교수님이 극찬을 하며 교재로 다룬 가난을 형편없이 재연하고 대상화한 소설 작품에서 순간순간 벽을 느끼곤 했다. 여긴 나를 위한 곳이 아닌 것 같았다. 훗날 내가 대학 자퇴라는 모험을 하게 된 것은 그런 경험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동안은 견딜 수 있었지만, 가장 참을 수 없었던 사건은 따로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여행을 간다고 했다. 유럽에. 2달 동안. 친구와 함께.


“엄청 비싸지 않아?”

“부모님이 내주셔서 괜찮아. 게다가 둘이서 가는 여행이니까 숙박비도 나눠 내는걸.”


항상 ‘흙수저’를 자칭하는 친구였다. 계급 의식과 슬롯주의에 관심이 많은 이 친구는 종종 ‘프롤레타리아’라느니 ‘맑스’라느니 당시의 내가 잘 모르는 종류의 말을 쏟아내며, 혁명가 캐릭터에게 깊이 이입하곤 했다.


뭐, 집에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계신다고 했던 시점에서 나도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2달짜리 유럽 여행이라니! ‘아주머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내 가슴을 불태우는 일이었다.


2달 유럽 여행 비용을 부모님이 다 내주신다고? 게다가 일정과 예산을 맞출 수 있는 친구가 있다고? 무척 친한 친구였으나 그 친구는 내게는 한 번도 유럽 여행을 제안하지 않았다. 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런 여행에 일정과 예산을 맞출 형편이 아니라는 걸…….


‘모든 불행은 비교에서 온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수업 중심으로 예복습 철저히 하면 서울대 갈 수 있다’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매운맛이 중독성 있는 통증이듯이 질투심에도 마조히즘적 즐거움이 있다. 어떤 근사한 말로도 한 번 시작된 비교를 멈출 수는 없었다. 타지에서의 자취, 학비, 유럽 여행 비용까지 대주는 친구의 부모님과 여행은커녕 학비도, 용돈도 대주지 않는 내 부모님. 아르바이트 한 번 해 본 적 없는 친구와 학비는 학자금 대출로 미래의 내게 가불하고 용돈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어 쓰는 나. 2달 유럽 여행을 가는 친구와 해외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 계급에서 우러난 이 까마득한 격차를 메울 방도는 도저히 없어 보였다…….


아니다! 격차를 메울 단 하나의 방법이 있었다. 대학 입학 후,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어 쓰면서도 자잘히 모아 저축한 통장이 내게 있었다. 나는 저금액을 살폈다. 200만 원. 그게 내 전 재산이었다.


2달 유럽 여행을 가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세계지도를 살폈다. 유럽은 불가능하고……. 동남아가 좋겠다. 동남아에서 가장 여행으로 유명한 국가가, 어디 보자, 태국, 태국인가?


설령 태국을 간대도 2달을 버틸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나는 손가락을 꼽았다. 이 금액으로 태국에서 있을 수 있는 기간은……. 3주. 3주가 최대였다. 같이 가 줄 친구는……. 없었다. 난 친구가 적었다.


그렇게 해서 난 인생 첫 해외여행 일정을 결정했다. 태국, 3주간, 나 홀로.


질투심에 불타는 바람에 결정한, 평생 관심도 없었지만 예산 맞추느라 고른 나라에, 인생 첫 여행인 주제에 전 재산 털어 3주간 자유여행.


이러니 여행이 행복할 리가 있겠는가? 이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기대에 차 있던 그때에는 미처 몰랐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