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시계 없는 코치

15화

by마짝꿍텝

코치는 운동복 차림으로 왔다.


체육관에서 자주 보던 남색 옷이었다. 언제나 목에 부적처럼 걸고 다니던 초시계만 없었다. 정현은 코치가 병실 문을 열었을 때부터 오른쪽 주머니를 보고 있었다.


접은 경기 일정표가 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정현아, 밤새 잠은 좀 잤냐.”


“네.”


거짓말이었다. 잠들면 누군가 들어와 다리를 살폈고, 눈을 감고 있으면 노래방 간판이 옆으로 누웠다. 코치는 밤새 잘 잤는지 다시 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의자를 당겼다. 넥타이 매듭 아래 셔츠가 조금 구겨져 있었다. 수업을 바꾸고 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병실 탁자의 컵을 치웠다.


코치가 앉을 자리는 이미 있었는데 어머니가 의자를 하나 더 가져왔다가 한쪽에 조용히 놓았다.


의사가 들어오자 코치가 목례했다. 정현은 서둘러 물었다.


“철심은 언제 빼요?”


의사는 정현의 다리를 보고 사진을 꺼냈다.


“지금은 철심 제거 날짜부터 정할 단계가 아니야. 철심이 지금 네 조각난 뼈들을 겨우 이어 붙여주고 있는 중이니까.”


“다 붙으면 다시 운동해도 돼요?”


의사는 침대 옆에 서서 사진을 펼쳤다.


“무릎 아래 뼈만 부러진 게 아니야. 관절을 받치는 부분이 여러 조각으로 깨졌고, 관절 안쪽과 주변도 크게 다쳤어.”


의사가 사진의 무릎 부분을 짚었다.


“수술은 잘됐다. 뼈를 최대한 맞춰 고정했어. 그래도 관절이 사고 전처럼 돌아간다고 보장할 수는 없어.”


정현은 사진을 봤다. 밝은 조각과 선들이 겹쳐 있었다. 자기 무릎 사진보다 그 옆에 붙은 이름표가 더 익숙했다.


“유도할 때 발을 딛고 몸을 돌리는 동작을 하지? 상대 몸무게까지 몸으로 다 받아 내고.”


“네.”


“수술에서 확인한 손상으로 보면, 선수로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어.”


정현은 코치를 봤다. 코치는 입을 꾹 다물고 엑스레이 사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올해는 안 된다고요?”


의사는 대답을 늦추지 않았다.


“올해만 쉬면 된다는 말이 아니야.”


정현은 사진에서 시선을 뗐다. 어머니가 침대 난간을 잡고 있었다.


“그래도 가능성은 있는 거죠?”


“우리는 정현군이 다시 걷고 생활할 수 있도록 치료할 거야. 다리 힘과 움직임을 되찾는 것도 해야 해.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과 시합에서 상대를 메치고 버텨내는 것은 다른 일이야.”


“힘은 다시 기르면 되잖아요.”


의사는 고개를 조금 저으려다가 말았다.


정현은 말을 빨리 이었다.


“저 원래 하체 힘이 세요. 다쳤다가도 쉬면 금방 돌아와요. 초등학교 때도 크게 다쳤는데 다시 운동했어요.”


코치가 정현의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는 그때하고 달라.”


정현은 코치에게서 눈을 돌렸다. 의사는 앞으로 사진을 보며 체중을 실을 시기와 관절을 움직일 범위를 정하겠다고 했다. 정현은 범위라는 말에서 더 듣지 못했다.


무릎을 얼마만큼 굽힐 수 있는지 허락을 받아야 했다.


“다른 병원에서도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의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고는 정현을 봤다.


“서울에서도 한번 보자.”


정현이 아버지를 봤다. 그제야 숨을 조금 쉴 수 있었다.


의사는 수술에서 확인한 손상과 치료 기록을 준비해 주겠다고 했다.


“다만 다른 의견을 듣는 동안에도 지금 치료는 이어 가야 합니다.”


정현은 입을 다물었다. 코치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


의사가 나간 뒤 코치는 한동안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복도에서 식판을 미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가 점심이 왔는지 보러 나갔다. 아버지도 따라 나갔다. 나가기 전에 정현을 보았지만, 정현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애들 시합은 언제 출발해요?”


“다음 주 월요일.”


“제 자리에는 누가 가요?”


코치는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이번에 네 체급은 빼고 간다.”


정현은 시트를 잡았다. 누가 대신 나간다는 말을 들었어도 싫었을 것이다. 아무도 나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니 또 다른 곳이 막혔다.


“덕포고 스카우터는요? 이번에 제 경기 보러 와 주신다고…”


“수술해서 출전 못 할 거라고 말씀드렸다.”


“다시는 못 한다는 것도요?”


코치가 정현을 봤다.


“아니,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제 하실 거잖아요.”


코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정현은 코치의 운동화 끝을 보았다. 바닥 가장자리에 매트 색과 비슷한 녹색 자국이 있었다. 코치는 여기서 일어나 체육관에 갈 것이었다. 며칠 뒤에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대회장에 갈 것이었다.


“저번에 연습하던 기술 겨우 됐었는데.”


정현이 말했다.


“마지막 날. 저 제대로 들어갔잖아요.”


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한다.”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정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날은 상대의 체중이 뒤쪽 발에 실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발뒤축을 바깥쪽에서 후리자 버티던 상대가 뒤로 넘어갔다. 늘 한 박자씩 어긋나던 것이 처음으로 맞았다. 상대의 발이 걸리던 감각을 연습이 끝나고도 몇 번이나 떠올렸다. 다음에 해도 똑같이 될 것 같았다.


“그거 한 번만 더 해 보면 되는데.”


코치가 의자를 가까이 당겼다. 정현은 이불을 자기 쪽으로 끌었다.


“코치님 제 상태 알고 있었어요?”


“수술 끝나고 아버지께 대충은 들었다. 심각하다고.”


“나만 빼고 다들 알고 있었네…”


“오늘 나도 내 귀로 네 앞에서 같이 듣고 싶었다.”


정현은 코치의 얼굴을 봤다.


“저는 코치님이 오시면 뭔가 다른 말씀 해 주실 줄 알았어요. 기운 내라. 시합 나가 보자 같은…”


코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현은 그 침묵이 싫었다. 잘못 들어갔을 때는 어디가 틀렸는지 곧바로 말해 주던 사람이었다.


“코치님 가세요.”


코치는 조금 더 있다가 일어났다.


문에서 돌아서며 말했다.


“다음 주에 올게.”


정현은 창문을 봤다.


코치의 발소리가 복도로 멀어졌다.


*


어머니는 병원 밥을 침대 탁자에 놓았다. 정현은 손대지 않았다.


“약 먹으려면 조금이라도…….”


“안 먹어.”


어머니가 숟가락을 정현 쪽으로 밀었다. 정현은 그것을 집어 던졌다. 숟가락이 바닥에서 튀어 맞은편 침대 아래로 미끄러졌다. 어머니는 손을 내민 채 서 있었다. 간호사가 무슨 일이냐며 들어왔다.


맞은편 아저씨도 텔레비전 소리를 조금 줄였다. 정현은 아무도 보지 않았다.


“엄마, 좀만 나가 있어.”


“엄마 여기 있을게.”


“좀 나가 있…으라고.”


어머니는 물컵을 정현의 손이 닿는 곳까지 옮기고 나갔다. 간호사도 커튼을 치고 뒤따랐다. 정현은 컵을 반대쪽으로 휙 밀었다. 물이 조금 넘쳤다.


오른쪽 다리를 움직여 봤다.


발가락이 움직였다. 보이지 않는 무릎에도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프지만 더 힘을 주면 될 것 같았다. 정현은 팔로 침대 난간을 잡았다.


상체를 일으키는 동안 무릎 깊은 곳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몸이 도로 내려앉았다.


숨을 참아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릎 위의 이불을 들추려다 손을 거두었다. 간호사를 부르는 단추가 바로 옆에 있었다. 침대를 세워 달라고 해야 겨우 앉을 수 있었다.


정현은 자신의 다리였던 어떤 것을 보다가 얼굴을 팔로 가렸다.


처음에는 소리 없이 울었다.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다가 가슴이 들썩였다. 멈추려고 할수록 더 크게 숨이 나왔고, 그때마다 다리가 아팠다.


간호사가 커튼을 열고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정현은 얼굴을 가린 채 무릎이라고 했다. 다리를 움직이려 했느냐는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간호사는 다리를 살핀 뒤 진통제를 가지러 갔다.


어머니가 들어왔을 때도 정현은 얼굴을 들지 않았다. 우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보여 주기는 싫었다.


우리 아들 고쳐 달라는 기도가 들렸다. 어머니의 젖은 목소리에 또 울컥했다. 손이 등에 닿자 정현은 몸을 움츠렸다가 어머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엄마, 나 어떻게 해? 나 유도밖에 하고 싶은 게 없는데. 나 이제 어떻게 해.”


정현은 어린아이 때처럼 울었다. 어머니는 다른 것을 찾아보자고 하지 않았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아들의 어깨를 감쌌다. 정현은 어머니의 카디건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가게에서 늘 두르던 앞치마와 달리 털실이 손가락 사이로 늘어났다.


*


저녁에 아버지가 다시 왔다.


정현은 자는 척했다. 강현도 따라왔는지 낮은 목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지금은 깨우지 말라고 했다. 강현이 과자 봉지를 놓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정후에게서 병동으로 전화가 왔다. 간호사가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가 받아 보겠다고 나갔다.


돌아온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정후한테는 지금 잠들었다고 했어.”


정현은 눈을 뜨지 않았다.


밤이 되자 어머니가 창문을 닫았다. 밖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줄었다. 정현은 이불 밖으로 나온 왼발을 안으로 넣었다. 오른발은 그대로 있었다.


다음 주면 아이들은 익산대회에 가 있을 것이다. 경기 전에는 몸무게를 재고 대진표를 살펴볼 것이다. 코치는 도복 깃을 매만져 주고 각자의 손가락 테이프를 고쳐 줄 것이다.


정현은 천장을 보며 그 순서를 끝까지 생각했다.


어머니가 불을 끄려 하자 정현이 말했다.


“내일 누가 와도 그냥 나 잔다고 해.”


“정후도?”


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불을 껐다. 천장의 모양이 사라졌다. 그러자 매트가 더 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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