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의 불빛

13화

by마짝꿍텝



횡단보도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다.


정현은 앞에 서 있던 여자를 따라 자전거를 끌었다. 여자는 장바구니를 반대 손으로 옮기며 빠르게 걸었다. 정현도 바퀴가 흰 줄의 경계를 넘는 것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 2층 창문에서 붉은 불빛이 꺼지고 파란 불빛이 켜졌다.


민정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면 먼저 인사하면 됐다. 버스에서 만났다고. 그때 내 무릎이 좀 불편하지 않았느냐고. 그건 좀 이상했다. 불편했던 것을 굳이 다시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옆에서 여자가 빽 소리를 질렀다.


정현은 그쪽을 봤다. 여자가 자기 쪽으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방금 지나간 버스 뒤에서 차 한 대가 횡단보도로 꺾여 들어왔다. 차가 어떻게 꺾여들어 온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자전거를 잡아당겼다.


앞바퀴가 옆으로 돌아갔다. 손잡이가 오른쪽 허벅지를 쳤다. 정현은 왼발로 바닥을 밀어 몸을 뒤로 빼려 했다. 경적이 울렸다. 그 발이 다시 땅을 찾기 전에 차에 부딪쳤다. 몸이 떠올랐다.


낙법.


팔을 움직이려 했다. 체육관에서는 생각하지 않고도 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바닥인지 알 수 없었다. 차갑고 단단한 것이 어깨를 때렸다. 숨이 끊겼다.


눈을 떴을 때는 노래방 간판이 옆으로 누워 있었다.


입을 벌렸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팔꿈치를 댔다. 그 순간 오른쪽 다리에서 시작된 통증 때문에 팔에 힘이 풀렸다.


“움직이지 마. 학생, 가만히 있어.”


누군가 정현의 어깨 가까이에 무릎을 꿇었다. 아까 장바구니를 들고 가던 여자였다. 파 한 단이 길에 떨어져 있었다.


“구급차 불렀어요?”


“불렀어요. 조금만 비켜 봐요.”


사람들이 둘러섰다. 어떤 남자가 전화기를 귀에 대고 위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정현은 자기 발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왼쪽 운동화는 보였지만 오른쪽은 자전거에 가려져 있었다.


자전거 앞바퀴가 천천히 돌았다. 자전거 프레임이 꺾인 곳에서 검은 칠 아래의 은색이 드러나 있었다.


“엄마한테…….”


여자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뭐라고?”


정현은 꽃집 전화번호를 말하려 했다. 앞의 세 자리는 생각났는데 다음이 나오지 않았다. 늘 걸던 번호였다. 눈을 감고도 누를 수 있었다.


여섯 시였다.


정후가 기다릴 텐데.


*


정후는 노래방 복도에서 세 번째로 시계를 봤다.


방 안에서는 성훈의 친구가 노래 제목을 찾다가 같은 번호를 두 번 눌렀다. 수진이 리모컨을 빼앗으며 그건 방금 불렀다고 했다. 웃음소리가 났다. 정후는 문을 반쯤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카운터로 가서 꽃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정현이 진작 나갔다고 했다.


“아직 안 왔어?”


“금방 오겠죠. 제가 삐삐 쳐볼게요.”


전화를 끊고 정현의 삐삐 번호를 눌렀다. 카운터 전화번호를 남긴 뒤 입구로 갔다. 계단 아래에서 사람들이 길 쪽을 보고 있었다. 경광등 불빛이 건물 유리에 번졌다. 정후는 난간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횡단보도 옆에 엉망으로 망가진 자전거가 한 대 쓰러져 있었다.


자전거 검은 안장 아래에 빨간 반사 스티커가 보였다. 정현은 동생이 비뚤게 붙인 게 못내 마음에 안 들어 했었다. 떼라고 하면 강현이 서운해할까 봐 그냥 둔다고도 했다.


정후는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사람 사이로 들어가다가 제지당했다. 친구라고 말했다. 남자가 비켜 주자 들것이 보였다. 파란 셔츠 소매가 한쪽만 펴져 있었다. 접혔던 자리를 따라 피가 번져 있었다.


“정현아!”


정현은 눈을 감고 있었다. 들것 옆 사람이 어깨를 만졌다. 정후가 다시 부르자 정현의 눈꺼풀이 조금 움직였다. 정후의 시선이 정현의 발 쪽으로 내려갔다. 정현의 오른발이 이상한 모양으로 꺾여있었다.


“혹시 보호자 연락처 알아요?”


정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꽃집이요. 녹색…녹색공간.”


“전화번호요.”


정후가 번호를 말했다. 조금 전까지 눌렀던 번호였다. 말을 마치고 나자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성훈이 뒤에서 정후의 어깨를 잡았다. 누가 알려 줬는지 수진도 함께 내려와 있었다. 성훈은 구급차가 가는 병원이 어딘지 듣고 정후를 카운터로 돌려보냈다.


“얘 엄마한테 바로 말해.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정후는 움직이지 못했다.


“문정후!”


성훈이 정후의 어깨를 붙들고 한 번 흔들었다. 정후는 그제야 돌아섰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사람들이 내려왔다. 방 안에서 들리던 노래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화기를 들고 같은 번호를 눌렀다.


“아주머니.”


조금 전과 같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어, 정현이 왔니?”


수화기가 손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정후는 다른 손까지 올려 잡았다.


*


조민호는 응급실 앞에서 아내를 만났다.


영진은 꽃집 앞치마를 벗지 못한 채였다. 팔에 걸친 겉옷 한쪽 소매가 바닥에 끌렸다. 민호가 그 옷을 받아 들자 아내가 치료실 문을 가리켰다.


“저기 들어갔어요.”


“의식은? 말은 했어?”


“들어갈 때는요. 아프다고…….”


의사가 나와 보호자를 찾았다. 민호는 손을 들었다. 의사는 오른쪽 무릎과 그 아래 뼈가 크게 손상됐다고 했다. 관절까지 다쳤고, 피부에도 상처가 있어 우선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리의 상태를 설명하는 동안에 안쪽에서 비명 소리가 났다.


민호는 마음을 가다듬고 서류를 받았다. 아이 이름을 쓰는 칸에 조정현이라고 적었다. 관계를 쓰는 칸에서 펜이 잠깐 멈췄다.


부(父)


한 글자를 쓰고 서류를 돌려주었다.


아내가 의사에게 혹시 걷는 데 지장이 있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지금 해야 하는 치료부터 차례로 설명했다. 민호는 같은 말을 다시 묻지 않았다. 정현을 실은 침대가 수술실 쪽으로 움직였다. 아내가 따라가자 민호도 그 뒤를 걸었다.


강현은 고모와 함께 뒤늦게 도착했다. 현관에서 형에게 열쇠를 건네준 지 얼마 지나지 않고 벌어진 일이라 잔뜩 놀라고 겁먹은 얼굴이었다. 어머니를 보자 강현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형 어디 있어?”


고모가 등을 쓸어 주었지만 강현은 어머니의 앞치마부터 붙잡았다.


“자전거 타고 가다가 사고 난 거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형은 괜찮아?”


민호는 강현의 가방을 받아 의자에 놓았다. 강현은 신발을 가지런히 붙인 채 앉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두 손을 무릎에 올렸다.


정후는 복도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성훈이 함께 있었다. 민호가 다가가자 정후가 허리를 숙였다.


“제가 정현이한테 오라고 했어요.”


민호는 정후의 얼굴을 봤다. 며칠 전 차에 태워 집에 데려다줬던 아이였다. 헐렁한 티셔츠 차림이었고, 입가에는 그날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방 가기로 한 건 정현이한테 들었다.”


정후가 얼굴을 들었다.


“집에 연락은 했니?”


“아직요.”


“먼저 댁에 연락드려라. 너희 집에서도 기다리시겠다.”


민호는 성훈에게도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정후는 그 말에 더 고개를 숙였다.


수술실 문이 열릴 때마다 모두 일어났다. 다른 환자의 이름이 불리면 다시 앉았다. 밤이 깊어지자 고모가 강현을 데리고 갔다. 강현은 끝까지 버티다가 아버지가 내일 오라고 하자 일어났다.


민호는 복도 벽에 등을 기댔다. 허벅지에 힘이 풀렸다. 의자까지 가려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내가 놀라 손을 뻗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눈을 눌렀다. 안경 다리가 손가락에 걸렸다.


내 다리를 가져가도 좋으니 저 아이를 다시 걷게 해 달라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왔다. 기도를 끝내기도 전에 울음이 터졌다. 아내가 곁에 와 등을 쓸다가 함께 몸을 숙였다. 민호가 아내의 팔을 붙잡았다.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울었다.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


정현은 누군가 자신의 발가락을 만지는 것을 느꼈다.


눈을 뜨자 천장이 보였다. 노래방 간판은 없었다. 몸을 움직이려는데 어머니가 팔을 잡았다.


“가만히 있어. 너 수술했어.”


목이 말랐다. 물을 달라고 하자 어머니는 간호사부터 불렀다. 정현은 이불 아래를 봤다. 오른쪽 다리 쪽만 높고 낯선 모양이었다.


“몇 시야?”


어머니가 시계를 봤다. 정현은 대답을 듣고도 다시 물었다.


“토요일?”


“일요일 아침.”


여덟 시까지 들어가기로 했었다. 아버지가 화를 냈을까. 정현은 의자에서 고개를 숙인 아버지를 봤다. 안경을 쓴 채 앉아서 자고 있었다.


“다리는…….”


어머니가 침대 난간을 조금 내렸다.


“의사 선생님 오시면 설명해 주실 거야.”


정현은 오른쪽 발을 움직이려 했다. 발끝이 조금 움직인 것 같기도 했다. 무릎까지 움직이려다 숨을 멈췄다.


“엄마.”


“응.”


“나 이달 말에 시합인데.”


어머니의 손이 이불 위에 놓였다. 다친 곳을 누르지 않으려고 조금 떨어진 자리였다.


“코치 선생님께는 엄마가 연락했어.”


정현은 천장을 봤다. 시합에 나갈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인데, 어머니는 누구에게 연락했는지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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