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월요일 아침, 병실 맞은편 침대의 아저씨가 면도를 했다.
작은 거울을 무릎 위에 세우고 전기면도기를 턱 밑으로 움직였다. 정현은 그 소리에 눈을 떴다. 학교에 늦었다는 생각에 팔부터 움직였다가 다리의 통증 때문에 멈췄다.
어머니는 보호자 침대에서 일어나 있었다. 밤새 덮고 있던 이불을 접어 정현의 발치에 놓고 병실 창문을 조금 열었다. 평소 꽃집에서 쓰던 손수건으로 창틀의 먼지를 닦았다.
“오늘 월요일이죠?”
“응.”
정현은 바카라가방을 찾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토요일에 노래방에 가느라 집에 놓고 나왔었다.
“학교에는 전화했어요?”
어머니는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어제 연락했고 오늘 다시 진단서를 낼 거라고 했다.
“나 며칠간 입원해야 한대요?”
“아직 몰라.”
무엇을 물어도 아직 모른다고 했다. 정현은 이불의 접힌 선을 손톱으로 눌렀다. 다리가 아프면 진통제를 달라고 해야 했고, 등을 조금 돌릴 때도 어머니를 불러야 했다.
소변을 보고 싶다는 말을 꺼낼 때가 제일 싫었다.
간호사가 들어와 다리를 살피고 발끝의 감각을 물었다. 정현이 대답하자 기록지에 적었다. 어머니는 또 언제 수술을 한 번 더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오늘 회진 때 선생님께서 앞으로 치료를 어떻게 할지 설명해 주실 거예요.”
정현은 어머니를 봤다.
“또 해?”
“처음에는 다리 상태부터 안정시켜 놓은 거라고 했잖아. 뼈를 제대로 맞추는 수술은 부기 보고 한다고.”
“나한테는 그런 말 안 했잖아.”
“어제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어머니가 말을 멈췄다. 정현은 마취에서 깨던 밤과 다음 날을 또렷이 기억하지 못했다.
“다시 들으면 돼. 엄마도 옆에 있을게.”
정현은 언제 왔는지 모르는 물컵만 봤다.
의사가 오자 어머니는 정현의 왼쪽으로 비켰다. 정현이 직접 의사 선생님과 대화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며 부서진 뼈와 관절을 설명했다. 당분간 오른쪽 다리에는 체중을 실으면 안 된다고 했다. 목발이나 휠체어를 쓰는 것도 상태를 보고 가르쳐 줄 거라고 했다.
“그럼 저는 언제부터 걸어요?”
“뼈가 붙는 걸 확인하면서 정해야 해.”
“한 달이면 돼요?”
의사는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다. 정현은 이달 말 시합 이야기를 하려다 그만뒀다. 사진 속 뼈가 자기 다리라는 것부터가 잘 믿어지지 않았다.
*
화요일, 두 번째 수술을 마친 뒤에는 낮과 밤이 다시 엉켰다. 전신마취에서 깨어나자 코와 목이 불편했고, 입안에 도는 쓴맛도 괴로웠다.
어머니가 물을 먹여 주었고 아버지가 침대 높이를 조절했다. 둘 중 하나가 잠깐 보이지 않으면 다른 하나가 있었다. 정현은 부모가 내내 병원에 있는 줄 알았다.
수요일 오후 고모가 꽃집 주문서를 가져오고 나서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언니, 내가 내일 오전까지는 볼게. 오후엔 약속이 있어서.”
고모는 어머니에게 주문서 한 귀퉁이를 펼쳐 보였다. 화환을 주문한 손님이 리본에 적을 내용을 바꾸고 싶다고 연락했으며, 장미 몇 단은 시들기 전에 빨리 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은 병실 문 옆으로 가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강현은 정현의 침대 옆에서 빵 봉지를 뜯었다.
“너 피아노 안 가냐?”
“안 가.”
“왜.”
“이번 달은 쉰대.”
강현은 봉지의 접착 부분을 손가락에 붙였다 떼었다. 평소 같으면 좋다고 했을 텐데 말이 없었다.
“맨날 가기 싫다고 하더니.”
“금요일에 과자 주는데.”
“과자 때문에 가냐.”
“친구도 있고.”
강현은 빵을 반으로 나눠 형에게 내밀었다. 정현이 안 먹겠다고 하자 도로 봉지에 넣었다.
문밖에서 고모가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야간 수업 시간을 물었다. 고모가 목소리를 낮췄다. 정현은 몇 마디밖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자동차 보험 쪽에서 연락 왔었다는 말과 화분 대금을 먼저 보내야 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같은 돈 이야기인데 서로 해결해 주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강현이 병실 벽의 달력을 봤다.
“우리 학교 토요일에 공작 준비물 있는데.”
“엄마한테 말해.”
“말했어.”
강현은 대답하고 빵 봉지를 무릎에 놓았다. 잠시 뒤 어머니가 들어오자 같은 말을 다시 했다.
*
정후가 하교하고 병실에 들렀다.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너무 작아서 맞은편 아저씨가 들어오라고 대신 말했다. 정후는 문을 조금 열어 얼굴부터 들이밀었다. 정현을 보고도 바로 농담하지 않았다.
“왔냐.”
정현이 먼저 말했다.
정후는 편의점 봉지를 내려놓았다. 초코파이와 음료수, 새우깡, 자갈치 등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의자를 내주자 고개를 두 번 숙였다.
“그걸 다 먹으라고?”
“안 먹으면 내가 먹고.”
“그럴 줄 알았다.”
정후가 조금 웃었다. 강현이 초코파이부터 집어 들었다. 어머니는 고모와 아래층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강현도 따라 나갔다.
어머니가 나가자 정후는 비닐봉지 손잡이를 만졌다.
“토요일에…….”
“재밌었냐? 노래방.”
정후가 고개를 들었다.
“몰라. 금방 나왔어.”
“성훈 형이랑 누나들은?”
“다 헤어졌지.”
정현은 민정의 이름을 기다렸다. 정후는 성훈이 자전거를 삼천리 자전거포에 맡겨 두었다고만 했다. 고칠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그…… 누나도 내가 다친 거 알아?”
“어. 민정 누나도 그날 노래방에 와 있었어. 수진 누나한테 너 얼마나 다쳤냐고 물었대.”
“그래?”
“응.”
정현은 침대 난간을 봤다. 누가 이불을 펴 놓았는지 무릎 위가 유난히 반듯했다.
“내 다리 얘기도 했냐.”
“수진 누나한테 수술했다고만 했어. 더는 나도 모르잖아.”
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하게 다친 애로 기억되는 것은 싫었다. 다음에 다시 소개해 달라는 말을 하려다가 입 안에서 지웠다.
정후가 의자를 당겼다.
“그날 그냥 내가 너랑 같이 갔으면…….”
“너도 사촌 봐줘야 된다고 간 거잖아.”
“그래도…….”
“내가 안 늦게 가겠다고 했잖아.”
정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현은 새우깡 봉지를 가리켰다.
“그거나 까. 네가 다 먹는다며.”
정후가 봉지를 뜯었다. 한 번에 벌어지지 않아 양쪽을 다시 잡았다. 정현은 평소 같으면 힘 좋은 놈이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냐고 놀렸을 텐데, 그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둘은 과자를 몇 개 먹었다. 입에서 종이가 씹히는 맛이었다. 새우깡이 이렇게 맛없는 건 생전 처음이었다. 정후가 학교 이야기를 했다. 임시로 진방이가 반장 일을 보고 있고, 영재는 아직 발표하지도 않은 중간고사 날짜를 떠들고 다닌다고 했다.
“기영이는?”
“똑같아. 명진이랑 춤추고.”
정현은 창문을 봤다. 자신의 자리는 다른 아이가 맡고, 기영은 다른 아이와 웃고 있었다. 정후는 오늘도 학교에 갔다 왔다. 교복 소매에 분필가루가 묻어 있었다.
“너 배달은 해?”
“어. 하루만 쉬었어.”
“너 지난번에 다친 상처는?”
정후가 손목을 한 번 돌렸다.
“이 정도야 뭐.”
말하고 나서 손을 내렸다. 정현은 모르는 척 음료수 병의 글씨를 읽었다.
*
저녁 회진이 끝나고 어머니가 침대 곁에 앉았다.
“내일 코치 선생님도 오신대.”
정현이 바로 고개를 들었다.
“곧 대회일 텐데?”
“그 전에. 의사 선생님 만나 보시겠대.”
“의사 선생님을?”
어머니는 그렇다고 했다. 코치님이 회진 시간에 맞춰서 수술 경과를 같이 듣고 싶다고 하셨다고 했다. 아버지도 시간을 맞춰 오기로 했다고 했다.
정현은 이불을 조금 내렸다. 수술한 다리는 두껍게 감겨 있어 원래 모양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혹시 들었어?”
“뭘.”
“나 이제 운동 못 한대?”
어머니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열었다.
“내일 같이 여쭤보자.”
정현은 이불을 다시 올리지 않았다. 문이 열리면 누구든 자기 다리를 먼저 보게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손이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