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토요일 오전, 정현은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 앉는 연습을 했다.
치료사가 의자를 고정하고 오른쪽 다리를 어떻게 받칠지 먼저 보여 주었다. 어머니는 뒤에서 기다렸다. 정현은 침대 가장자리까지 몸을 옮기고 왼발을 바닥에 댔다.
체육관에서는 상대를 업고도 일어났다. 지금은 자기 몸만 옮기면 됐다.
팔에 힘을 주자 받쳐 놓은 오른쪽 다리가 아래로 쏠리는 것 같았다. 정현은 난간을 다시 붙잡았다.
“잠깐만요.”
치료사는 기다렸다. 오른발은 바닥에 대지 말라고 했는데, 발이 어디 있는지 자꾸 확인해야 했다. 멀쩡한 왼쪽 다리까지 덜덜 떨렸다.
겨우 휠체어에 앉고 나니 침대가 너무 가까웠다. 이 거리를 옮기려고 셋이 모여 있었다.
“잘했어. 처음에는 이만큼도—”
“잘한 거 없잖아요.”
어머니가 이름을 부르려는데 치료사가 먼저 오른쪽 발받침을 확인했다.
“다리를 바닥에 안 딛고 옮긴 건 잘한 거야.”
정현은 바퀴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에 피시방에서 쓸린 자리가 남아 있었다. 밀어 보려 하자 아직 조금 당겼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오후에 다시 옮길 때도 혼자 하지 말고.”
“한 번 더 해 봐도 돼요?”
“오후에도 해야 하니까 지금은 좀 쉬자.”
“네.”
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에 돌아와 누웠을 때 등판이 완전히 젖어 있었다.
*
강현은 점심 뒤에 고모와 왔다.
고모가 어머니와 복도에서 이야기하는 동안 강현은 가방을 의자에 놓고 나갔다. 돌아왔을 때는 종이컵을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형, 먹어 봐.”
“뭔데.”
“율무차.”
정현은 동생의 손부터 봤다.
“네가 돈이 어딨어서.”
강현은 괜히 더 으쓱한 얼굴로 컵을 내밀었다.
“일단 먹어 봐. 뜨거워.”
종이컵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정현은 손가락을 위쪽으로 옮겼다. 소독약과 점심 국 냄새 사이로 달고 고소한 김이 올라왔다.
“그러니까 어디서 났냐고.”
강현은 의자를 끌어 침대 옆에 붙였다. 둥근 무릎이 침대에 닿을 만큼 바짝 앉더니 커튼 쪽을 한 번 봤다.
“형, 나 이상한 거 발견했어.”
“뭔데.”
“자판기.”
정현은 컵을 입에 가져가다 말았다.
“자판기가 왜.”
“아까 계단 옆에 갔거든. 밑에 오십 원이 하나 떨어져 있었어.”
“누가 흘렸나 보지.”
“그래서 주웠지. 율무차는 백 원이더라.”
“반밖에 없네.”
“응. 그냥 넣어 봤어.”
“오십 원 넣으면 되겠냐.”
“안 되면 빼면 되잖아.”
강현은 답답하다는 듯 자기 무릎을 쳤다.
“그래서 반환하는 걸 돌렸어. 근데 안 나오는 거야. 조금 있다 다시 돌렸거든?”
“응.”
“백 원이 나왔어.”
정현은 동생을 봤다.
“백 원을 넣었겠지.”
“나도 그런 줄 알았어. 그래서 확인했어.”
“어떻게.”
“매점에서 그걸로 껌 샀어. 오십 원짜리.”
정현은 강현의 입을 봤다. 말할 때마다 한쪽 볼이 움직였다.
“그게 그거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스름돈 오십 원 받았지. 그걸 다시 넣었어. 이번엔 잘 보고 넣었어.”
“또 백 원이 나왔다고?”
“응.”
강현이 앞으로 더 숙였다. 정현도 컵을 탁자에 놓았다.
“그래서 그 백 원을 오십 원 두 개로 바꿨어.”
“또 매점 가서?”
“아줌마가 어디 쓰냐고 하더라.”
“뭐라고 했는데.”
“형이 쓴다고.”
“나를 왜 팔아.”
“형 보여 주려고 그랬으니까.”
강현은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이건 남겨 놓은 거. 다른 하나로 백 원 만들어서 이거 뽑았어.”
정현은 종이컵을 봤다.
“네 거는.”
“형 주려고 뽑았지.”
강현은 그게 왜 궁금하냐는 얼굴이었다.
정현은 컵 가장자리에 입을 댔다. 달큰한 것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축축한 환자복이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컵의 온기가 손바닥으로 번졌다.
“어때?”
“뜨끈한 맛.”
“그게 뭔 소리야.”
“맛없다는 뜻은 아니고.”
강현이 웃었다. 정현도 컵 뒤에서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형도 해 볼래?”
“그게 맨날 되겠냐.”
“세 번이나 됐는데.”
강현은 탁자 위의 동전을 손끝으로 형 쪽에 밀었다.
“마법 같지 않아?”
정현은 웃으려다가 동생의 얼굴을 봤다. 놀리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마법이 왜 여기 있냐.”
“그럼 어디 있어야 되는데.”
정현은 대답 대신 탁자 위의 오십 원을 집었다. 벼 이삭 무늬 사이에 검은 때가 끼어 있었다. 문방구 바닥에서 주워도 이상하지 않을 동전이었다.
“다른 사람이 놓고 간 게 걸려 있었나 보지.”
“그럼 형이 보면 되잖아.”
강현은 벌써 의자에서 일어나 있었다.
정현은 휠체어 쪽을 봤다. 오전에 거기 앉으려고 했던 일이 먼저 떠올랐다. 안 가겠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강현이 실망한 얼굴로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조금 있다가 또 혼자 갔다 올 것이다.
정현은 손안의 동전을 뒤집었다.
“엄마 불러 와. 옮기는 거 도와달라고.”
*
어머니가 간호사에게 말하고 휠체어를 가져왔다. 오전에 배운 대로 브레이크부터 확인했다. 정현은 왼발을 바닥에 대고 몸을 옮겼다. 어머니가 다리를 받치는 동안 강현은 옆에서 의자를 붙잡았다.
앉고 나니 숨이 찼다.
“괜찮아?”
강현이 물었다.
“안 괜찮으니까 병원에 있지.”
“말은 잘하네.”
“시끄러.”
강현은 웃으며 손잡이를 잡았다. 어머니는 발받침 위의 다리를 한 번 더 살폈다.
“가까운 데만 있다 와. 오래 앉아 있지 말고.”
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먹 안에서 동전 가장자리가 손바닥을 눌렀다.
복도로 나오자 바퀴 구르는 소리와 엘리베이터 앞의 말소리가 한꺼번에 들렸다. 줄눈을 넘을 때마다 휠체어가 조금씩 떨렸다. 강현은 정현이 팔걸이를 고쳐 잡을 때마다 속도를 늦췄다.
“멀면 돌아간다.”
“다 왔어.”
“아까도 다 왔다며.”
“이번엔 진짜.”
계단 옆에 자판기가 있었다. 누렇게 바랜 음료 그림 아래로 버튼들이 늘어서 있었다. 율무차 옆에 백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래쪽에 붙은 종이는 모서리가 말려 올라가 있었다.
강현은 휠체어를 가까이 붙였다가 정현의 발받침이 닿을 것 같자 조금 뒤로 뺐다.
“아까처럼 하면 돼.”
“알았어.”
정현은 동전을 넣었다.
달칵.
반환 레버를 돌렸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강현이 옆에서 입을 다물었다. 정현은 잠깐 기다렸다가 레버를 다시 움직였다.
달그락.
강현이 먼저 몸을 숙였다. 정현이 팔로 막았다.
“내가 볼게.”
반환구에 손가락을 넣었다. 동전이 손톱에 닿았다. 집어 올려 손바닥에 펴 보니 이순신 얼굴이 위를 향하고 있었다.
백 원이었다.
복도 저쪽에서 엘리베이터가 멎는 소리가 났다. 정현은 손바닥을 편 채 한동안 동전을 내려다봤다. 분명 벼 이삭을 보고 넣었는데, 손안의 얼굴이 낯설었다.
정현은 앞뒤를 뒤집어 봤다. 아까 오십 원을 넣기 전에 손가락으로 문질렀던 검은 때가 없었다.
“뭐야.”
강현이 형의 팔을 잡았다.
“봤지?”
“가만있어 봐.”
정현은 반환구 안을 다시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자판기 아래쪽으로 몸을 기울이다 다리가 당겨 도로 앉았다. 강현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내가 거짓말 안 했지?”
정현은 동전을 조금 더 들여다보다가 강현에게 내밀었다.
“매점 가서 오십 원 두 개로 바꿔 와.”
“왜.”
“한 번 더 해 보게.”
강현은 대답도 하지 않고 뛰었다.
“복도에서 뛰지 마!”
정현이 낮게 불렀다. 강현은 걸음만 크게 벌렸다.
혼자 남으니 허리가 뻐근했다. 팔걸이를 짚고 앉은 자세를 고쳤다. 복도 저쪽에서는 누군가의 보호자가 검사 시간을 묻고 있었다. 정현은 대답하는 소리를 듣다가 자판기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도 나오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강현이 돌아와 오십 원 두 개를 손바닥에 펼쳐 보였다.
“아줌마가 또냐고 했어.”
“넌 뭐랬는데.”
“형이 또 쓴다고.”
정현은 웃음을 참으며 그중 하나를 집었다. 다시 넣고 레버를 한 번 돌렸다. 기다렸다가 다시 움직였다.
동전이 떨어졌다.
이번에도 백 원이었다.
정현은 고개를 숙인 채 웃었다. 강현이 형의 얼굴을 보려고 옆으로 돌아왔다.
“왜 웃어.”
“몰라. 진짜 되니까.”
강현도 웃었다. 정현은 동전을 쥐었다가 다시 손바닥을 펴 보았다. 눈앞에 놓여 있는데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내가 그랬지.”
이번에는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마법이 왜 병원에 있느냐고 했는데, 여기 있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정현은 자판기 윗부분의 흐린 불빛을 올려다봤다. 아까 복도를 올 때까지는 그저 먼 계단 옆이었던 곳이었다.
“다른 사람한테도 보여 줬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형한테만.”
정현은 동전을 손안에 쥐었다. 다른 사람까지 데려와서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정현은 그 돈을 다시 넣고 율무차 버튼을 눌렀다. 종이컵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뜨거운 율무차가 종이컵 안으로 쏟아졌다.
“마셔.”
“형 마셔.”
“아까 내가 마셨잖아.”
“그건 내가 준 거고.”
“그러니까 이번에는 네가.”
강현은 컵을 받았다.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럼 반만.”
“그래. 반만.”
한 모금 마신 강현이 혀를 내밀었다.
“뜨거워.”
“식혀 먹어.”
“형은 아까 그냥 먹었잖아.”
정현은 컵을 받아 가장자리를 불었다. 강현이 똑같이 옆에서 불다가 마주 보고 웃었다.
*
두 사람은 복도 창문 아래에 잠깐 멈췄다.
강현이 휠체어 옆에 서서 창밖을 봤다. 화단의 나뭇잎이 흔들렸다. 정현은 종이컵을 천천히 돌렸다. 바닥에 붙어 있던 가루가 조금씩 풀렸다.
“형.”
“왜.”
“우리 이거 비밀로 할까?”
정현은 동생을 봤다.
“왜.”
“다 알면 안 될 것 같아.”
“뭐가.”
“그냥. 안 나오게 될까 봐.”
정현은 남은 차를 내려다봤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몇 명이나 믿을까. 전부 데려와서 보여 주는 것은 싫었다. 다른 사람이 여기 줄을 서 있는 모습도 싫었다.
“엄마는 안 믿을걸.”
정현이 말했다. 어머니에게 설명하려면 자판기를 통째로 가져다 보여 줘야 할 것 같았다. 말로만 하면 강현이 처음 이야기했을 때 자기처럼 들을 테니까.
강현은 남은 오십 원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 있었다.
“우리 둘만.”
정현은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비밀.”
강현이 동전을 주머니에 넣었다.
병실로 돌아오는 길에는 강현이 가끔 멈춰 서서 발받침을 확인했다. 정현은 재촉하지 않았다. 들어가기 전, 강현이 입술 위에 묻은 가루를 혀로 훑었다. 정현은 손등으로 자기 입도 닦았다.
그날 밤 다리는 여전히 아팠다. 누운 자세를 바꾸려다가 어머니를 불러야 했다. 오전의 휠체어가 싫었던 마음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눈을 감으면 자꾸 백 원짜리 앞면이 보였다. 내일 아침에도 자판기가 그 자리에 있을지 궁금했다.
정현은 이불 끝에서 보이는 오른발을 조금 안쪽으로 거두려다 그만뒀다. 어머니가 아프냐고 물어 고개를 저었다.
“내일도 복도 나가도 돼?”
“힘들지 않으면.”
그는 눈을 감았다. 반환구를 더듬던 손끝에 동전이 다시 닿는 것 같았다. 내일 강현이 오면 자기가 먼저 가자고 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