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주말이 지나고, 네 사람이 교장실에 한 명씩 불려 갔다. 교장실은 교무실 바로 옆이었다.
진방은 지난 토요일부터 학교에 나왔다. 머리 한쪽을 짧게 민 자리에 붕대를 대고 모자를 눌러쓰고 다녔다. 교장실에서는 벗어야 했는지, 나올 때는 모자를 손에 쥐고 있었다.
“뭐 물어보든?”
정현이 물었다.
진방은 어깨를 으쓱했다.
“잠깐 밖에서 대기하래.”
진방은 모자 안쪽을 손가락으로 폈다. 가려던 발을 멈추고 정현을 봤다.
“반장, 기영이가 우리 집 갖고 생선 냄새 어쩌고 한 것도 들었지?”
“들었어.”
“그런 건 전혀 안 물어보더라. 나한테 불리한 것만… 하아…”
정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방은 모자를 쓰려다가 붕대에 걸리자 도로 벗었다.
교무실 앞에서 경비 아저씨가 우유 상자를 한쪽으로 밀고 있었다. 색이 바랜 남색 점퍼의 지퍼가 배 중간에서 멈춰 있었고, 몸을 숙일 때마다 허리의 열쇠 뭉치가 상자에 닿았다.
아이들이 박 씨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람이었다.
“여기 이런 걸 놓으면 위험하지.”
정현이 얼른 손잡이를 잡았다. 박 씨 아저씨는 정현의 손등을 보고 그냥 놓으라고 했다.
“빈 건데요 뭘.”
“그래도 다친 손으로 들 건 없지. 이리 줘.”
교장실 맞은편 현관 쪽에서 분식집 강아지 복실이가 두 사람을 올려다봤다. 작은 누렁개였다. 접힌 귀 한쪽이 뛸 때마다 펴졌다. 문 가까이 오자 아저씨가 운동화 앞코를 세웠다. 복실이는 그 앞에 앉았다.
“학교 안에는 들어오면 안 된다니까 욘석이.”
아저씨가 상자를 들고 현관으로 나가자 강아지도 그쪽으로 쫓아갔다. 정현은 문득 교무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교무실 문에 난 작은 창으로 들여다본 김영락의 빈 바카라상에는 프리지아가 남아 있었다. 지난주 어머니가 선생님 가져다 드리라며 신문지에 싸 주었던 꽃이었다. 남자 중학생이 등교버스에서 꽃을 들고 서있는 것은 제법 이목이 집중되는 일이었지만 김영락 선생의 기쁜 얼굴을 기대하며 정현은 쑥스러움을 견뎠었다.
역시나 김영락 선생은 얼굴에 만연한 미소와 함께 직접 줄기를 잘라 병에 꽂았었다.
프리지아는 아직 싱싱해 보였다. 꽃을 꽂아 둔 선생님만 자리에 없었다.
교장실에서 이름을 불렀다. 정현은 노크를 두 번 하고 교장실에 들어갔다.
교장은 소파 맞은편을 가리키고 수첩을 펼쳤다.
“얼굴은 좀 어떠니?”
“괜찮습니다.”
“아버지께서 전화하셨더구나.”
정현은 고개를 들었다.
“걱정이 크시지. 아버지도 선생님이시던데… 뭐 학교에서도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다.”
교장이 펜을 들었다.
“양호실에 있을 때부터 네가 본 대로 말해 보렴.”
정현은 기영과 진방이 싸우던 데서 시작했다. 교장이 손을 들었다.
“교실 일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들었다. 네가 본 선생님들 일부터.”
“그런데 진방이가 왜 다쳤는지부터 말씀드려야…….”
“알고 있어. 김영락 선생님이 먼저 멱살을 잡으셨지?”
정현은 소파 끝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네.”
펜이 움직였다.
“그다음에는?”
“밖으로 김재덕 선생님을 데리고 나가셨어요.”
“끌고 갔다며, 혹시 화장실 안에까지 따라갔니?”
“아니요.”
“그럼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은 못 봤구나.”
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장이 수첩을 덮었다.
“그래. 수업 들어가렴.”
정현은 일어났다. 문까지 갔다가 돌아섰다.
“진방이는 주걱에 머리를 맞아서 잠깐이지만 정신을 잃었어요.”
교장이 정현을 봤다.
“김재덕 선생님한테요. 저희도 맞았고요.”
“그것도 확인하고 있다.”
“그럼 그것도 적어 주세요.”
말하고 나니 목이 막혔다. 교장은 잠깐 펜을 내려다봤다.
“정현아.”
“김영락 선생님이 김재덕 선생님 멱살을 먼저 잡으신 건 맞아요. 그런데 그전에 진방이가 김재덕 선생님께 맞고 피를 흘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교장이 정현의 손을 내밀어 정현의 말을 멈추고 수첩을 다시 펼쳤다. 무슨 말을 적었는지는 정현의 자리에서 보이지 않았다.
정현은 교장이 펜을 내려놓을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렸다.
*
화요일 저녁, 기영은 방문을 닫지 못한 채 바카라상 앞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거실에서 새어머니에게 물었다.
“학교에서는 더 연락 없고?”
“네. 제가 계속 알아볼게요.”
“애 공부에 집중하게 해. 또 이런 일로 전화 오게 만들지 말고.”
기영은 영어바카라을 한 장 넘겼다. 같은 줄을 다시 읽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문이 열려 있는 방 안까지 똑똑히 들렸다.
“성적 떨어지면 당신이 챙겨야지. 당신이 당신 입으로 애들 일은 맡겠다고 했잖아. 밖에서 돈 버는 사람이 집안일까지 신경 쓰게 하면 되겠어?”
기영은 바카라장을 세게 넘겼다. 아버지가 기영에게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아 마음이 상했다.
기영은 바카라 아래에 깔린 공바카라을 안쪽으로 밀었다. 연습할 동작을 그려 둔 페이지가 조금 나와 있었다.
새어머니가 대답하는 소리는 작았다. 아버지는 곧 다른 곳에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바뀌었다. 조금 전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게 크게 웃었다.
새어머니가 문 앞에 서서 과일을 먹겠느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기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통화하며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새어머니도 기영의 방으로 들어왔다.
새어머니가 펼쳐진 영어바카라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까도 이 페이지 아니었어?”
기영은 바카라을 조금 당겼다.
“하고 있어요.”
새어머니가 바카라 밑의 공바카라을 집었다. 힙합 스타일의 옷을 입은 아이들이 모여 춤추는 그림이 나왔다.
“이런 건 열심히 하네.”
기영이 공바카라을 당겨 덮었다.
“네 아버지가 나한테 뭐라는지 들었지?”
“그래서요?”
“말하는 것 좀 봐. 학교에서는 주먹질하고 집에서는 말대꾸하고. 너 때문에 내가 무슨 소리를 들어야 되는데?”
기영은 바카라 모서리를 눌렀다. 손톱 끝이 희어졌다.
가영이 복도에서 문제집을 안고 기다리고 있었다. 새어머니가 돌아봤다.
“너는 숙제 다 했어?”
“여기 모르겠어서…….”
“모르겠다고 하기 전에 제대로 읽어 봤어? 학교에서 배운 거 아냐.”
가영은 문제집을 내려다봤다.
기영이 손을 뻗었다.
“이리줘봐 내가 알려 줄게.”
새어머니가 다시 기영을 봤다.
“이기영, 너는 네 거나 잘 해. 하여간 둘 다 성적표 나오면 보자.”
가영은 문 옆에 붙었다. 새어머니가 나가고 나서야 방 안으로 들어왔다.
기영은 의자 옆으로 자리를 내줬다. 문제집에 지우개로 문지른 자국이 여러 겹 나 있었다. 종이가 일어나 있었다.
“어디.”
가영이 손가락으로 짚었다.
기영은 문제를 읽고 옆의 빈 종이를 당겼다. 작은 동그라미를 몇 개 그려 가며 설명했다. 가영이 세다가 손가락을 멈추면 다시 처음부터 짚어 주었다.
답을 쓰고도 가영은 가지 않았다.
“엄마가 계셨으면…….”
기영이 연필을 멈췄다.
“어느 엄마. 너 버리고 간 엄마?”
가영의 입이 닫혔다.
기영은 동생을 봤다가 종이로 눈을 내렸다. 펴 둔 바카라장이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손바닥으로 종이를 폈다.
“됐어. 다음 거 읽어.”
가영이 작은 목소리로 문제를 읽었다. 기영은 바카라 사이로 조금 삐져나온 종이를 봤다. 어머니가 고쳐 그려 주었던 손 그림이었다.
엄지를 왜 이렇게 길게 그렸냐고 비율이 중요하다며 자기 손을 종이 옆에 놓아 주고 따라 그리게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기영은 종이 끝을 잡았다. 구겨질 듯 접히자 손가락을 풀었다. 가영은 아직 문제를 읽고 있었다.
어머니는 저 아이까지 두고 나갔다. 우릴 버리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겠다고.
기영은 그림을 바카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오빠.”
기영은 동생이 짚은 문제를 눈으로 얼른 다시 읽었다. 조금 전 읽는 것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
*
그날 저녁, 정현네 식탁에서는 어머니가 국그릇을 놓다가 아버지의 말을 되물었다.
“학생부장을?”
아버지는 수저를 가지런히 놓았다. 정현은 아버지가 아직 밥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을 그때 봤다.
“맡기로 했어.”
“아니, 결정이 났어?”
강현이 텔레비전 소리를 줄였다. 어머니는 앉지 않았다.
지난겨울, 아버지 학교의 전임 학생부장이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검은 양복을 꺼냈고 어머니는 장롱에서 넥타이를 찾아 주었다. 아이고 뒷 골이야를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이 심장 질환으로 쓰러진 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정현은 그 사람을 몰랐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와서도 한동안 양복을 벗지 않았던 것은 기억했다.
“그 전 부장님도 쓰러지셨잖아.”
어머니가 말했다.
“그분은 퇴원하셨어.”
“퇴원하신 이후에 다시 부장을 맡으신건 아니잖아.”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전 부장도 고혈압이 있었고, 심혈관 질환으로 입원한 뒤 학생부 일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병문안을 다녀와 식탁에서 했던 이야기였다.
“같은 자리에서 벌써 두 분째잖아.”
어머니가 국그릇을 내려다봤다. 아버지는 잠깐 뜸을 들였다.
“다들 맡기를 꺼리더라고. 내가 보다못해 하겠다고 하니까 교감 선생님이 고맙다고부터 하시더라.”
“당신도 혈압 오르는 거 아니야? 요즘 애들이 보통 애들이야?”
“검진받았을 때 정상인데 뭘.”
“애들이 속 썩이고, 선도 나간다고 밤거리 헤매고 다닐거야?”
아버지는 국에 뜬 파를 수저로 밀었다. 정현은 수저 끝이 그릇 가장자리에 닿았다가 돌아오는 것을 봤다.
“혼자 다 하겠다는 거 아니야. 다른 선생님들도 돕기로 했고…”
“당신이 어떤 일이든 대충하는 법이 없어서 걱정인 거지.”
아버지는 부인하지 않았다.
강현이 물었다.
“학생부장이 교장보다 높아?”
“아니.”
“그럼 월급 더 줘?”
“그거 보고 맡을 만큼은 아니야.”
“그럼 아버지는 왜 하겠다는거야?”
정현이 웃으려다가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버지는 강현에게 국그릇을 당겨 주며 말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어머니가 그제야 앉았다.
“그 누군가가 맨날 당신일 필요는 없고.”
전화가 울렸다. 모두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는 일어나려다가 멈췄다. 어머니가 받았다. 꽃바구니 주문이었다.
아버지는 그제야 식사를 시작했다.
*
이튿날 점심을 먹은 정현은 기영의 자리로 갔다.
기영은 공바카라 한쪽에 교복 입은 아이를 그리고 있었다. 몸은 작고 운동화만 컸다. 공을 차는 것 같기도 하고, 발을 앞으로 뻗고 춤추는 것 같기도 했다.
정현이 옆에 서자 연필이 멈췄다.
“너 아직 그림 그리네.”
기영의 손바닥이 그림 위로 올라갔다.
“그냥 낙서야.”
“옛날에도 잘 그렸잖아.”
기영은 공바카라을 덮었다.
“뭐 할 말 있어?”
다른 반 아이가 기영을 불렀다. 기영이 바카라상 안에 손을 넣자 정현은 조금 더 가까이 섰다.
“그날 싸움 말린다고 네 얼굴 옆에 주먹 휘두른 거.”
기영의 손이 바카라상 안에서 멎었다. 뒷문 아이는 옆 반에서 나온 친구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미안해서.”
“나는 진짜 때리는 줄 알았다.”
정현은 손등의 딱지를 봤다.
“안 때리려고 거길 친 건데.”
말하고 나니 기영의 얼굴이 더 굳었다.
“내가 너한테 안 때려줘서 고맙다고 해야 되나?”
정현은 입을 다물었다. 뒤에서 정후가 누군가에게 웃으며 대꾸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내가 잘못했어.”
기영은 바카라상에서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꺼냈다. 춤 연습에 쓰는 건가 싶어 정현이 눈길을 주자, 기영은 얼른 호주머니에 넣었다.
“알았어.”
정현이 한 걸음 더 비키자 기영은 지나갔다. 뒷문의 아이가 늦었다며 등을 밀었다. 기영이 그 손을 털었지만, 둘은 곧 나란히 걸었다.
정현은 잠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기영의 바카라상 밑으로 지우개가 떨어져 있었다. 주워 바카라상 위에 놓았다. 기영은 돌아보지 않았다.
충근이 바카라을 안고 기다리고 있었다.
“반장, 특수반 가야 돼.”
“가자.”
복도를 걷다 보니 빈 교실에서 음악 소리가 났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기영과 아까 그 아이가 바카라상을 벽 쪽으로 밀어 놓고 서 있었다. 창가에 작은 카세트가 놓여 있었다.
기영이 한쪽 발을 옮기자 옆 아이가 다른 쪽으로 돌아 팔이 부딪쳤다.
“야, 반대잖아.”
기영이 웃었다. 정현은 걸음을 늦췄다. 기영은 음악을 멈추고 옆 아이에게 처음부터 다시 해 보라고 했다. 두 사람의 발이 나란히 움직였다.
충근이 앞에서 돌아봤다.
“반장.”
“응.”
“늦어.”
정현은 다시 걸었다. 기영이 이쪽을 봤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