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입지 못한 도복

9화

by마짝꿍텝




이야기를 마치자 코치가 정현의 손바닥을 펴 보았다. 바닥에 쓸린 자리가 붉고, 상처 틈으로 자잘한 아스팔트 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네가 넘어뜨린 아이는 바로 일어났니?”


정현이 대답하기 전에 정후가 말했다.


“앉는 건 봤어요.”


“직접 본 게 거기까지고?”


“네.”


코치는 학교 이름과 김영광의 이름을 적었다. 안쪽에서 누가 다음 연습을 물으러 나오자 제일 나이가 많은 아이에게 잠깐 맡으라고 했다. 정현은 가방에서 도복을 꺼내려다 손을 뗐다.


조금 전 꺼내지 말라는 말을 벌써 잊고 있었다.


코치가 꽃집에 전화하는 동안 정후는 뜯긴 단추 자리를 만졌다. 통화가 끝나자 수화기를 받아 외삼촌 집에도 걸었다.


“좀 늦을 것 같아서요.”


정후는 그렇게 시작하고 나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코치는 구급함에서 연고를 꺼내 정현에게 건넸다. 정현이 손바닥에 조금씩 바르는 동안 정후도 통화를 마쳤다.


“정현아. 운동하는 애가 일반 학생하고 싸우면 안 된다는 말, 전에 했지?”


“네.”


“체육관 밖에서 유도기술 쓰는건 위험하다는 말도 했고.”


정현은 연고 뚜껑을 닫았다.


“저희가 먼저 때린 건 아니에요.”


“그건 들었어. 친구가 붙잡혀서 돌아간 것도.”


안쪽에서 매트 치는 소리가 났다. 코치는 소리가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


“여기서는 상대도 넘어지는 법을 알아. 바닥에 매트도 있고. 밖에서는 네가 소매를 잡아 줘도 그 애가 어디부터 어떻게 떨어질지 모르는 거야. 머리로 떨어지면 죽는 수도 있다고. 상대방도 문제지만 그렇게 되면 너도 운동생명 끝나는거야.”


정현은 연고를 구급함에 넣었다. 그 아이가 바닥에 닿을 때 난 소리는 여기서 넘어지는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낙법 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네가 처음에 걔네한테 한 말도 생각해 보고. 그냥 못 본 척 지나갈 수도 있었잖아.”


정현은 고개를 숙였다.


“정후라고 했지?”


정후가 고개를 들었다.


“정현이 앞으로 큰 대회도 나갈 애야. 이런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게 친구가 좀 도와줘. 피시방 같은데 데려가지 말고.”


정후는 벌어진 앞섶을 맞추던 손을 멈췄다.


“네.”


고개를 숙이자 남은 단추가 무릎에 닿았다. 정현은 코치를 보다가 정후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정후는 교복만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체육관 문을 열었을 때도 두 사람은 교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정현은 얼른 일어났다. 아버지의 시선이 턱에 닿았다가 손으로 내려왔다.


코치가 아버지에게 그동안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정현은 옆에서 가방끈을 쥐고 있었다. 피시방 계단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던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오자 손에 힘이 들어갔다.


*


정후를 내려 주고 돌아오는 길에 정현은 앞좌석 사이로 아버지의 옆얼굴을 살폈다. 아버지는 앞만 보고 아무 말 없이 운전했다.


정현은 가방을 무릎 위로 끌어올렸다. 조금 열린 지퍼 틈으로 흰 도복이 보였다. 천이 물리지 않도록 손가락으로 밀어 넣고 지퍼를 닫았다.


신호 앞에서 차가 멈췄다. 정현이 고개를 들자 룸미러에 비친 아버지의 눈과 마주쳤다. 정현은 먼저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저 멀리 체육관 2층 창문에 아직도 불이 켜져 있었다.


김재덕 사건때도 몇 번 훈련을 빼먹었다. 오늘부터는 다시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 가방에 넣어 둔 도복은 결국 꺼내지도 못했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 것 같아 정현은 가방을 고쳐 안았다. 신호가 바뀌고 차가 움직였다. 정현은 다시 옆얼굴을 보려다가 그만뒀다.


꽃집 불도 아직 켜져 있었다. 어머니가 안에서 두 사람을 보고 하던 일을 놓았다.


*


정후가 외삼촌 집에 들어서자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외숙모는 욕실에서 젖은 빨래를 안고 나왔다. 머리를 고정한 집게 밑으로 잔머리가 뻗어 있었고, 걷어 올린 바지 밑단에 물이 묻어 있었다. 정후의 얼굴을 보고 빨래를 내려놓았다.


외숙모는 정후의 부은 얼굴과 벌어진 교복 앞을 번갈아 봤다.


“단추가 다 뜯겼네.”


“두 개예요.”


“벗어 봐. 으이그 깃 쪽도 뜯겼네. 이건 꿰매줄께.”


셔츠를 벗자 옆구리에 붉은 자국이 보였다. 외숙모의 손이 멈췄다. 정후는 벗은 옷을 몸 앞으로 당겼다.


“남자애들이 싸울 수도 있지. 그래도 엄마한테는 바로 전화해서 말씀드려.”


정후는 싫다는 말 대신 식탁 의자를 뺐다. 덮어 둔 그릇에 달걀말이가 있었다. 한 조각을 집어 한 입에 넣다가 입이 아파 반으로 잘라서 다시 입에 넣었다.


밥을 먹는 동안 외숙모가 바느질을 마쳤다. 맨 아래 단추 하나를 위로 옮기고, 나머지 자리에는 조금 짙은 색을 달았다.


“당분간 이렇게 입어. 같은 거 찾아볼게.”


정후는 외숙모가 내민 교복의 단추를 채워 봤다. 천이 당기는 쪽을 손으로 펴자 그럭저럭 맞았다.


“내일 배달은 어떻게 해?”


“가야죠.”


“다쳤는데 하루 쉬는 게 낫지 않아?”


정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외숙모는 교복을 옷걸이에 걸었다.


“우유 보급소에 지금 전화해. 내일 쉰다고.”


“새벽에 대신할 사람 구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갑자기 빠지면 그쪽도 곤란해요.”


외숙모는 옷걸이를 든 채 정후를 봤다. 정후는 결국 일어나 벽에 붙은 번호를 찾아 눌렀다. 하루 대신할 사람이 있는지 묻고, 그날 몫을 빼도 괜찮다고 말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에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다.


정현에게 빌려준 백 원까지 떠올리고 다시 넣었다.


사촌동생이 문제집을 들고 식탁으로 왔다. 정후는 숟가락을 든 채 빈자리를 턱으로 가리켰다.


“한 문제만 알려 준다.”


“세 개야.”


“그럼 밥 좀 먹고.”


아이는 옆에 앉아 기다렸다. 정후는 남은 밥을 국에 말았다. 사촌이 펼쳐 놓은 페이지를 당기려다 손목이 아파 그만뒀다.


“네가 문제 읽어.”


사촌동생이 읽는 동안 정후는 밥을 한 숟갈씩 넘겼다. 문제에서 사과를 몇 개 나눠 줬느냐고 묻자 아이가 본문을 다시 찾았다. 정후는 숟가락을 입에 넣고 기다렸다.


*


집에 돌아온 정현은 도복 소매에 붙은 모래를 털었다. 가방을 바닥에 벗어 뒀을 때 지퍼가 조금 열려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 입어 보지도 못한 도복이었다. 어머니가 빨래통에 넣으라고 했는데 안 입어서 괜찮다고 했다.


수학바카라을 꺼내자 프린트 두 장이 딸려 나왔다. 학교에서 받은 같은 문제지였다. 문정후라고 적힌 종이에는 세 문제 옆으로 중요 표시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풀이가 촘촘했다. 정현의 것은 이름과 문제 번호 옆에 찍힌 연필 자국뿐이었다.


숙제를 베끼고 내일까지 돌려주기로 했다.


정현은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정후의 풀이를 보며 자기 프린트에 앞의 두 문제를 옮겨 적었다. 마지막 문제는 두 줄을 쓰고 멈췄다. 정후의 종이를 다시 봤다. 첫 줄의 식이 다음 줄에서는 아예 모양이 달라져 있었다.


어떻게 넘어간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교과서 예제를 찾았다. 숫자가 달랐다. 같은 방법으로 해 보려는데 어느 숫자를 어디에 넣어야 할지부터 막혔다. 공바카라을 찾아도 그 대목이 비어 있었다.


거실에서 아버지의 발소리가 났다. 정현은 방문 쪽을 봤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발소리는 방 앞을 지나갔다.


정현은 정후의 프린트를 뒤집어 놓고 자기 종이의 빈 곳에 처음 식부터 다시 썼다. 두 번째 줄로 내려가려는데 또 연필이 멈췄다.


종이를 돌려줄 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현은 막힌 곳에 작게 물음표를 그렸다.


*


다음 날 조회가 끝나자 정후가 손을 내밀었다.


“유인물.”


정현은 수학바카라 사이에서 두 장을 꺼냈다. 이름 칸을 확인하고 정후의 것을 내밀었다. 정후가 종이 끝을 잡자 정현이 다른 손으로 자기 프린트를 펼쳤다.


“여기 왜 이렇게 넘어가?”


마지막 문제의 두 번째 줄이었다.


“나중에 알려 줄게.”


“다음 시간 수학이잖아.”


정후는 돌려받던 종이를 조금 당겼다. 정현은 얼른 손을 놓지 못했다.


“너도 좀 노력이라도 해 보고 물어봐.”


“해 봤으니까 물어보지.”


옆에서 듣던 영재가 고개를 들었다. 정현은 자기 유인물을 바카라상 안으로 밀었다.


“어제 집에 늦게 들어가서 공부할 시간도….”


정후가 정현을 봤다.


“나도 너랑 같이 있었거든.”


정후가 다시 종이를 당겼다. 정현은 그제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


그날 덕포여상에서 민호는 학생부 문에 붙은 지난 학기 명단을 떼었다. 이름 옆에는 흡연, 무단결석, 복장 불량이 적혀 있었다. 어떤 이름은 세 번 나왔다.


“얘네 상습범들이라 얼굴부터 외우셔야 할 겁니다.”


서류를 넘기던 교사가 말했다.


점심이 끝날 무렵 생활지도 교사가 이희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교사는 바카라상에 빈 담뱃갑을 놓았다. 그 교사는 희수의 머리를 지적하며 불량하게 파마까지 말고 왔다고 했지만, 희수는 원래 악성곱슬이라고 반박했다.


“담뱃갑이 소지품 검사하다 나왔습니다. 자기 건 아니라는데요.”


교사가 나간 뒤에도 희수는 문 가까이에 서 있었다. 민호가 바카라상 앞으로 오라고 하자 두 걸음 다가왔다.


“네 거 아니야?”


“네.”


“그럼 누구 건데.”


희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친구가…… 갖고 있으라고 해서요.”


“친구 누구.”


희수는 고개를 숙였다. 민호가 서랍을 열자 시선이 따라갔다. 안쪽에 놓인 자가 보였는지 두 팔을 몸에 붙였다.


민호는 자에 얹었던 손을 옮겨 반성문 용지를 꺼냈다.


“거기 앉아서 써.”


희수는 의자를 조금만 빼고 앉았다.


서류 몇 장을 넘긴 뒤 민호가 다시 봤을 때도 종이는 거의 비어 있었다. 이름 아래에 앞으로 다시는이라고 적혀 있었다.


“왜 안 쓰고 있어.”


희수는 연필을 고쳐 쥐었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데.”


희수의 입술이 움직였다. 민호가 기다리자 겨우 말이 나왔다.


“저 안 피웠는데요.”


희수는 담뱃갑을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냥 주머니에만 있었는데.”


민호는 바카라상 위의 담뱃갑을 집었다. 안을 확인하고 다시 내려놓았다.


“받을 때부터 비어 있었니?”


“네.”


“그런데 걔가 왜 너한테 갖고 있으라고 했어?”


“검사한다고 하니까…….”


“빈 걸?”


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은 어디든 버리면 되는 걸 왜 너한테 줬을까.”


희수는 한동안 종이만 봤다.


“제가 버리려고 했는데요.”


“그랬더니?”


“버리지 말고…… 그냥 주머니에 넣고 있으래요.”


민호는 내려놓은 담뱃갑을 봤다. 빈 갑을 버리는 것까지 못 하게 하고, 소지품 검사를 받을 아이의 주머니에 넣어 두게 했다.


“누가 그랬는지 말해 봐. 그 애도 불러서 물어봐야겠다.”


희수가 고개를 들었다.


“여기로요?”


“응.”


복도에서 여학생들 목소리가 들렸다. 희수는 열린 문 쪽을 봤다가 민호에게로 눈을 돌렸다.


“제가 말했다고 하시면…….”


말이 끊겼다. 민호가 의자를 당기자 희수는 곧장 종이로 고개를 숙였다.


“제가 쓸게요.”


“뭘.”


“반성문이요. 제가 잘못했다고 쓴다구요….”


희수는 앞으로 다시는이라고 쓴 다음에 연필을 댔다. 한 글자도 잇지 못한 채 끝을 누르고 있었다.


민호는 입을 다물었다. 희수의 연필 끝이 종이에 박혀 있었다.


“그 애가 네가 지금 여기서 자신에 대해 이를지 궁금하겠지?”


희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


“오늘 처음이에요.”


이번에는 대답이 빨랐다. 민호가 기다리자 희수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담뱃갑은요.”


민호는 더 묻지 않고 바카라상에 놓인 반성문을 당겼다. 희수의 손이 종이를 따라왔다가 멈췄다.


“이건 그만 쓰자.”


희수가 민호를 올려다봤다.


“피우지도 않은 담배를 피웠다고 쓸 필요는 없어.”


“그럼…….”


희수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시선이 다시 문 쪽으로 갔다.


“오늘은 더 안 물을게.”


민호는 반성문을 자기 서류 밑에 넣었다.


“너를 그 애와 함께 세워 놓고 따져묻지도 않을 거고.”


희수는 무릎 위에 손을 내려놓았다. 고개는 여전히 숙이고 있었다.


“대신 내일 점심 먹고 다시 와.”


“또 반성문 써야 돼요?”


“아니. 오늘 교실 돌아갔을 때 혹시 너한테 무슨 일이 있지는 않았는지 얘기하자.”


희수는 작게 대답하고 일어났다. 의자를 밀어 넣은 뒤에도 바로 돌아서지 못했다.


“선생님.”


“응.”


“걔가 여기서 제가 무슨 얘기 했냐고 물으면요…….”


민호는 잠깐 말을 고르다가 대답했다.


“오늘은 그냥 반성문만 쓰라고 했다고 해. 그리고 당분간 나한테 오라고 했다고도.”


희수는 그 말을 듣고도 잠시 서 있었다. 민호는 수업에 늦은 것은 학생부에서 붙잡고 있어서 그랬다고 말하라고 했다.


아이가 나간 뒤 민호는 기록의 흡연에 빨간 줄을 긋고 담뱃갑 소지라고 고쳤다. 검사 직전 다른 학생이 빈 갑을 맡겼고, 버리는 것도 막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희수의 담임이 오자 민호는 의자를 권했다. 이야기를 들은 담임은 반 아이들에게 누구 것인지 물어보겠다고 했다.


“잠깐만요. 일단 이 문제는 제가 해결해 보겠습니다.”


민호는 기록을 담임 쪽으로 돌려놓았다.


“혹시 희수가 누구누구하고 다니는지 아십니까?”


담임은 기록에 적힌 이름을 보고 반에서 자리를 자주 옮긴다고 했다. 누구와 붙어 다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민호는 기록을 돌려받았다. 내일 점심에 희수를 다시 보기로 했다는 말을 적었다.


“누가 희수한테 자꾸 뭘 시키는지 먼저 봐 주십시오. 아이들 앞에서 희수를 불러 묻지는 마시고요.”


담임은 알겠다고 하고 나갔다. 민호는 반성문을 다시 펼쳤다. 이름 아래에는 앞으로 다시는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뒷말을 채우지 않은 종이를 기록 밑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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