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를 맡긴 밤

5화

by마짝꿍텝

방과 후 정현은 체육관 대신 어머니의 꽃집으로 갔다.


꽃집 이름은 ‘녹색공간’이었다. 가게를 열기 전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이름을 고르던 밤, 어머니가 노트 한 가운데에 그 말을 적었다.


강현은 꽃집인데 꽃이란 말이 없다고 했고, 아버지는 다른 이름도 적어 보자고 했다. 어머니는 종이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나는 이게 좋아. 간판에도 이렇게 쓰자.”


정현이 획이 삐뚤어진 ‘공’을 고쳐 썼다. 간판집에 가져간 것도 그 종이였다.


유리문 안으로 어머니가 보였다. 장미 가시를 제거하는 도구로 가시를 훑어내고, 꽃줄기 끝을 자르고 있었다. 바닥에는 잘린 잎과 줄기가 신문지 위에 쌓여 있었다. 옆에서는 고모가 작업용 의자에 앉아 귤을 까고 있었다.


가게 안쪽의 낮은 탁자에는 강현이 있었다.


만화 캐릭터가 큼지막이 그려진 바카라가방을 의자에 걸고 포장용 리본을 연필에 감고 있었다. 형보다 볼이 둥글고 눈썹 끝이 아래로 처졌다. 무엇을 물을 때면 턱부터 조금 들었다.


손목을 덮는 소매에는 지우개 가루가 붙어 있었다.


정현이 문을 밀자 강현이 연필을 내려놓았다.


“형, 자전거 열쇠—”


말이 끊겼다. 강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가위가 멈췄다.


“너 얼굴이 왜 그래?”


정현은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가위를 작업대에 내려놓고 다가왔다. 젖은 손끝이 턱 밑에 닿았다.


“누가 그랬어?”


“학교에서…….”


강현은 정현의 턱을 보다가 가방을 받아 탁자 밑에 놓았다.


고모가 귤을 접시에 내려놓았다. 얇게 다듬은 눈썹이 올라갔다. 무릎에 걸쳐 둔 가방을 치우고 정현 앞으로 의자를 끌어왔다.


“이리 앉아 봐.”


설명하는 동안 어머니는 앉지 않았다. 고모가 끼어들려고 할 때마다 손을 들어 막고 아들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지금 진방이는 병원에 있고?”


“응.”


“네 담임 선생님은?”


“모르겠어. 그 뒤로 못 봤어.”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먼저 전화했다. 정현은 끊기를 기다렸다가 체육관에 걸었다. 코치에게 오늘 못 간다고 말하자 어머니를 바꿔 달라고 했다.


통화 끝에 다시 수화기를 받았을 때 코치가 말했다.


“아픈 데부터 보자. 대회 걱정은 지금 하지 말고.”


정현은 아직 대회라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강현이 물컵을 내밀었다. 가게에서 쓰는 작은 유리컵이었다. 물이 가장자리 가까이 차 있었다.


“쏟겠다.”


“안 쏟아.”


정현은 두 손으로 받았다. 볼 안쪽이 아파 조금씩 마셨다. 강현은 형이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


“아까 열쇠 왜.”


“그냥.”


“타려고?”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운동장에서만.”


정현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동생 손바닥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학교 밖에선 끌고 다녀. 안장 낮추고.”


“오늘은 안 탈래.”


강현은 열쇠를 쥔 채 서 있었다.


“형 괜찮아지면 같이 가.”


강현은 열쇠를 형의 가방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


“여기 뒀어.”


고모가 가게를 맡아 주었다. 어머니는 여섯 시에 찾으러 올 꽃바구니를 알려 주고 형제를 데리고 나왔다. 집에서는 정현의 셔츠를 벗기다 손을 멈췄다.


벗긴 옷을 세탁기에 넣지 않고 식탁 의자에 걸어 두었다.


*


저녁에 아버지가 돌아왔다.


아버지는 의자에 걸린 셔츠를 보고 정현을 불렀다. 게시판을 쳤다는 대목에서 정현은 눈을 피했다.


“게시판을 부쉈다며.”


“애들이 안 그치니까…….”


“그건 네가 잘못했다.”


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손등을 살피다 말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너희를 이렇게 때려도 되는 건 아니지만.”


어머니는 내일 학교에 연락하겠다고 했다. 정현이 담임에게 뭐라고 하지는 말라며 막자 아버지는 잠시 기다렸다.


“너희가 맞은 일은 학교에서 알아야겠지?”


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방문에 서서 듣다가 형이 돌아보자 비켜섰다.


방에 들어가 바카라상 앞에 앉았다. 수학바카라 사이에 끼워 둔 프린트가 나왔다. 내일까지 풀어야 하는 문제였다. 정현은 샤프를 잡았다. 손가락에 힘을 주자 손등이 당겼다.


첫 문제를 읽었다. 식을 한 줄 쓰고 멈췄다.


바카라상 유리 밑 대진표가 눈에 들어왔다. 덕포고에서 뽑는 세 명 안에 들고 싶었다. 오늘 같은 일로 연습을 빼먹을 때가 아니었다.


왼손으로 도복 깃을 잡는 시늉을 했다. 상대를 더 가까이 당겨야 했다. 오른팔을 굽히다가 잠옷 소매가 상처에 스쳤다. 정현은 팔을 내렸다.


방문에서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강현이 자전거 열쇠를 들고 있었다.


“가방에 넣어 뒀다가 잊어버릴까 봐.”


“네 서랍에 둬.”


강현은 곧바로 가지 않았다. 바카라상 위 프린트를 기웃거렸다.


“형도 숙제 못 했네.”


“하면 돼.”


“엄마가 물어보면?”


“지금 한다니까.”


강현은 열쇠를 손가락에 걸어 한 바퀴 돌렸다. 정현은 그걸 하지 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자전거를 산 날에도 동생은 열쇠를 자신부터 만지고 싶어 했다.


*


자전거를 사 달라는 말은 초등학교 때부터 했다.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면 정현과 강현은 뒤에서 뛰었다. 큰길까지 가기 전에 돌아올 테니 여기 있으라고 해 놓고, 친구들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강현이 먼저 지쳤다.


정현은 동생 손을 잡고 집으로 걸었다.


집에 오면 두 사람이 같이 졸랐다.


“한 대만 사 줘. 같이 탈게.”


“나도 탈 거야.”


“그러니까 같이 탄다고.”


어머니는 꽃집 장부를 덮었다.


“이번 달은 안 돼.”


다음 달에도 안 됐다. 정현은 아버지가 선생님인데 왜 자전거 한 대를 못 사느냐고 했다. 어머니의 표정이 바뀌자 강현부터 입을 다물었다.


정현도 집에 빚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돌 무렵 아버지가 큰아버지의 보증을 섰고, 십삼 년이 넘도록 갚고 있었다. 꽃집 계산대의 지폐도 전부 쓸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 올 꽃값을 빼고 가게 비용을 빼며 계산하는 동안 형제는 장부가 닫히기를 기다렸다.


중학교에 들어간 해에도 정현은 같은 말을 했다.


“자전거 있으면 체육관도 혼자 가고 좋잖아.”


어머니는 이번에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


“시험 평균 구십 점 넘으면 사 줄게.”


정현이 고개를 들었다.


“구십 점?”


“구십 점 이상.”


“몇 과목?”


“평균.”


시험 평균이 칠십 점을 넘은 적도 없었다. 정현은 어머니가 안 사 주려고 그러는 것 같아 입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다시 장부를 폈다.


“못 하겠으면 말고.”


정현은 장부 위에 손을 올렸다.


“진짜 사 주는 거야?”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봤다.


“약속할게.”


옆에서 강현이 손을 들었다.


“나는?”


“너도 공부 잘하면.”


“형이 잘하면 나도 같이 타면 되잖아.”


정현은 그때만큼은 동생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첫 시험에는 안 됐다. 그다음에도 구십 점까지는 못 갔다. 정현은 틀린 문제를 세고 아버지가 채점하는 시험지 옆에 문제집을 들이밀었다. 강현이 놀자고 오면 기다리라고 했다.


동생은 자전거를 언제 사느냐고 묻다가 나중에는 이번 시험이 언제냐고 물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평균이 구십 점을 넘었다.


성적표를 들고 꽃집에 갔을 때 어머니는 숫자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한 과목씩 보고 다시 평균을 봤다. 정현은 가방도 내려놓지 않았다.


“됐지?”


어머니가 웃었다.


“됐네.”


“약속.”


“알아. 엄마가 약속했잖아.”


그 주 일요일에 자전거를 샀다. 정현은 가게 앞에서 손잡이를 놓지 못했다. 어머니가 돈을 세는 동안 강현은 뒤쪽 짐받이를 만졌다.


“내가 먼저 타면 안 돼?”


“누가 시험 봤는데.”


“그럼 두 번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현은 자전거를 타지 않고 끌었다. 강현이 계속 옆에서 뛰어서였다. 운동장에 도착해 한 바퀴 돌고 내려오자 동생이 벌써 두 손을 내밀고 있었다.


*


그 뒤로 학교에 갈 때는 바카라가방과 도시락가방을 들고 버스를 탔고, 쉬는 날에는 형제가 자전거 한 대를 번갈아 탔다. 정현이 체육관에 오래 있는 날이면 강현 차례가 길어졌다.


강현은 열쇠를 자기 서랍에 넣었다. 정현이 공부하는 동안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곧 거실 텔레비전 소리가 커졌다.


정현은 문제를 다시 읽었다. 아는 것이었다. 분모를 맞추고 정리하면 됐다. 첫 줄 아래에 숫자를 하나 쓰다가, 어제 마지막 연습에서 상대가 빠져나가던 순간이 떠올랐다.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오른손으로 붙잡으려다 놓쳤다.


어머니가 문을 열었을 때도 정현의 샤프는 같은 줄에 있었다.


“오늘은 자.”


“숙제는 해야 되는데.”


어머니는 수학바카라을 덮으려다 멈추고 아들의 손을 봤다.


“선생님께 잘 말씀드려. 오늘은 엄마가 쉬라고 했다고.”


“새벽에 일어나서 할게.”


“아이고…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문 뒤에서 강현이 얼굴을 내밀었다.


“내일 내가 깨워 줄까?”


강현이 물었다. 초등학생인 동생은 정현이 집을 나간 뒤에도 이불 속에 있을 때가 많았다. 정현이 웃자 내일 보라며 문을 닫았다.


정현은 프린트를 바카라 안에 넣었다. 손이 아픈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다치기 전날에도 풀지 않은 문제를 이렇게 넣어 두었다.


내일 아침에 하면 되겠지 하며 정현은 바카라가방 맨 위에 수학바카라을 넣었다.


바카라가방에서 도복을 꺼냈다. 오늘은 입지도 않은 도복이었다. 옷걸이에 걸어 놓자 아침에 어머니가 말려 준 깃이 빳빳하게 섰다.


거실에서 아버지가 학교 전화번호를 묻는 소리가 들렸다.


정현은 불을 끄고 누웠다. 눈을 감으니 시간표 한쪽이 떨어져 비스듬히 흔들렸다. 기영이 어깨를 움츠리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가 손등이 닿아 다시 몸을 돌렸다.


*


다음 날 버스에서는 그 여학생을 보지 못했다. 정현은 정류장마다 문 쪽을 봤지만 정후에게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조회에는 교감이 들어왔다.


“김영락 선생님은 당분간 반에 못 들어오시게 됐다.”


영재가 손을 들었다.


“언제 오시는데요?”


“학교에서 이번 일을 조사하고 있다. 그동안 국어 수업은 다른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맡으실 거고.”


“담임선생님이 병원에 계세요?”


교감은 출석부에서 눈을 들어 질문한 학생을 잠깐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선생님께서 다쳐서 쉬시는 건 아니야. 학교에서 당분간 수업을 맡지 못하도록 한 거니까 너희는 학교 밖에 쓸데없이 소문내지 말고 평소대로 생활해.”


평소대로 하라는 말 뒤에 잠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진방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기영은 앞을 보고 앉아 있었다. 정현은 어머니가 오늘 학교에 전화한다던 말을 떠올렸다.


쉬는 시간에 딸기우유가 왔다.


영재가 우유 상자를 보자마자 말했다.


“맞지? 내가 딸기랬지?”


아이들이 교탁 앞으로 몰렸다. 정현도 일어나 하나를 가져왔다. 차가운 팩이 손바닥에 닿았다.


자리에 돌아오니 정후는 바카라상에 엎드려 있었다.


“안 먹냐?”


정현이 물었다.


“없어.”


“오늘은 누가 안 줘?”


정후가 턱만 들었다가 다시 팔 위에 얹었다.


“초코나 딸기우유 나오는 날은 다들 먹잖아.”


정현은 상자를 봤다. 벌써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어제 정후에게 자기 것을 마셔 달라던 아이가 벌써 우유 팩 주둥이를 허둥지둥 열고 있었다.


종이 울렸다. 정현은 자신의 딸기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 팩을 바카라상 구석으로 밀었다. 수학 프린트를 꺼냈다. 아침에 한다던 것도 못 했다. 선생이 들어오기 전에 옆자리 규호에게 첫 문제 답을 물었다.


정후는 팔에서 얼굴을 들지 않았다.


다음 시간에는 김재덕이 들어왔다. 한쪽 팔에는 반깁스를 했고, 다른 쪽 손목에는 어제 벗어 놓았던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아무도 어제 일을 묻지 않았다. 선생은 진방의 이름을 불렀다가, 대답이 없자 출석부에 표시했다.


정현은 다친 손을 바카라상 아래로 내렸다. 김재덕은 교과서를 펴고 수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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