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기영아.”
정현이 팔을 붙잡자 기영은 거칠게 뿌리쳤다. 밀려난 정현이 빈 의자에 무릎을 부딪혔다. 기영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정현을 알아보지 못한 건지, 알고도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
기영이 처음 정현에게 내민 것은 축구공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네 번째 전학한 끝에 온 서북초등학교에서였다. 쉬는 시간이 되자 누군가 바카라상 옆구리에 공을 툭 밀어붙였다.
“야, 전학생! 너 축구할래?”
검게 탄 이마 아래 눈매가 길었다. 웃으니 앞니가 먼저 보였다. 무릎에는 딱지가 반쯤 떨어져 있었고, 양말은 한쪽만 내려가 있었다. 공을 누른 운동화 앞코가 하얗게 닳아 있었다.
다른 아이가 그 아이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기영아, 팀 다 짰는데.”
“얘도 해.”
“사람 수 찼는데.”
“그럼 우리 편에서 너네 쪽으로 한 명 보내고 너네 먼저 차.”
전학할 때마다 눈치를 보던 정현을 기영은 곧장 자기 옆에 세웠다. 같은 편이라고 했다.
축구가 시작되자 아이들이 별말 없이 받아들인 이유를 알았다. 기영은 공이 오기 전부터 뒤를 봤고, 수비가 붙으면 어깨를 기울였다가 반대쪽으로 빠졌다. 공이 발에서 단 한 번도 멀어지지 않았다.
기영이 골을 넣자 골키퍼가 골대 대신 세워 둔 가방을 안쪽으로 옮겼다.
“골대 줄이지 마라!”
“니가 공격수 하면 줄이는 게 공평해!”
그날부터 정현도 기영을 호나우두라고 불렀다. 같은 편은 빨리 달려가라고 불렀고, 상대편은 누가 좀 막으라고 불렀다.
정현은 체육관에 가지 않는 날이면 기영의 집에 들렀다.
기영의 어머니는 현관이 아니라 부엌에서 먼저 목소리를 냈다.
“손 씻어라.”
문턱에 서서 인사를 하면 그제야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왔다. 짧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있었고, 안경에는 조리대 불빛이 작게 비쳤다. 옷은 대개 소매를 접은 면 셔츠였다.
어느 날은 엄지 옆에 파란 물감이 묻어 있었는데 정현이 보자 손가락을 접으며 웃었다.
“호호, 가영이랑 그림 그리다가 묻혔네.”
기영의 어머니가 부엌 쪽으로 돌아가면 어린 가영이가 그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낯가림은 잠깐이었다. 몇 번 다녀오자 정현의 가방부터 붙잡고 오빠 방으로 끌었다.
기영은 귀찮다고 하면서도 가영이가 밟지 않도록 바닥의 만화바카라을 치웠다.
게임을 오래 하면 기영의 어머니가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바카라을 집었지만 가영이가 다 일러바쳤다. 집에 갈 때면 정현의 가방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도 가영이었다.
그런데 기영의 아버지가 돌아와 있다는 날은 달랐다.
“게임은 안 돼.”
집에 가는 길에 기영이 먼저 말했다.
“왜.”
“아빠 왔어.”
“그럼 조용히 만화바카라 보자.”
기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관문을 여니 텔레비전 소리가 컸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기영의 아버지였다. 흰 러닝셔츠 밖으로 그을린 팔이 나와 있었다. 수염 사이의 입이 웃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유리 탁자에는 시계와 담뱃갑이 놓여 있었다.
“정현이 왔냐.”
정현은 가방을 멘 채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잘 다녀오셨어요?”
“너희 아버지 선생님이시지? 그래서 그런가 인사를 잘하네.”
기영은 방문을 열지 않고 기다렸다.
“학교에서 기영이 좀 많이 도와줘라.”
“네.”
무엇을 도우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기영의 아버지가 다시 화면을 보자 기영이 움직였다. 두 아이가 방에 들어갈 때까지 부엌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기영의 아버지는 원양어선 선장이었다. 한 번 나가면 몇 달씩 돌아오지 않았다. 기영은 그동안 아버지가 마셜군도에서 폭풍을 만난 이야기, 낯선 항구에서 칼을 찬 사람을 본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 속에서 기영의 아버지는 언제나 제일 침착하고 힘이 셌다.
방 안에 가방을 놓고 나서 정현은 부엌 쪽을 돌아봤다.
“아줌마는?”
“나갔어.”
“가영이도?”
“걔는 안방에서 자.”
기영은 바카라꽂이에서 《드래곤볼》을 꺼냈다. 바카라 사이에 끼워 둔 얇은 종이도 함께 딸려 나왔다. 이미 그려진 손오공 얼굴이 반쯤 비쳤다.
기영은 바카라상 옆에 내려 둔 연필통을 끌어왔다. 정현은 다음 장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기영은 손오공의 턱선을 지우고 다시 그렸다. 축구할 때 쉼 없이 움직이던 발도 이때만큼은 잠시 멎어 있었다.
“넌 나중에 만화가 해야겠다.”
“화가 할 거야.”
“만화가 말고?”
“그림도 그리고 만화도 그리고.”
기영은 연필 끝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우리 엄마도 그림 그렸어.”
“알아. 가영이랑.”
“그거 말고. 대학에서.”
정현은 뭔가를 더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기영은 지우개로 손오공의 턱을 조금 더 지웠다.
“원래 화가 되려고 했대.”
“지금 하면 안 돼?”
연필 끝이 종이 위에 멈췄다.
거실에서 기영의 아버지가 기침했다. 기영은 방문 쪽을 봤다가 다시 종이를 내려다봤다.
“몰라.”
정현은 괜한 것을 물었나 싶어 바카라 아래에서 다른 권을 빼냈다.
“그럼 네가 만화가 돼서 그려. 내가 네 만화 사 줄게.”
“살 돈은 있고?”
“친구 할인해 주면.”
기영이 웃었다.
“넌 공짜야. 대신 재미없어도 끝까지 읽어.”
“재미없으면 공짜라도 좀 그런데.”
기영이 던진 지우개가 가슴에 맞았다. 정현은 주워 주며 웃었다. 서로 마주보며 한 번 더 웃었다.
한참 뒤 기영은 그림을 빛 쪽으로 들어 보았다. 왼쪽 손가락을 지우려 하자 정현이 말렸다. 바카라 속 그림과 똑같아 보였다.
“야, 진짜 잘 그렸다.”
기영은 대답 없이 그림을 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문까지 두 걸음이었다. 거기서 멈췄다.
정현은 기영이 아버지에게 보여주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기영은 문을 열지 않았다. 잠깐 서 있다가 돌아와 바카라 사이에 그림을 끼웠다. 그러고는 돌연 정현에게 물었다.
“집에 갈 거야?”
“어, 시간이 그렇게 됐나?”
집에 가려고 신발을 신는데 안방에서 기영을 부르는 가영이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엄마 언제 와?”
기영은 안방 쪽을 슬쩍 돌아봤다.
“몰라.”
정현은 신발 뒤축을 고쳐 신으며 기다렸다. 기영은 더 대답하지 않고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내일 봐.”
기영이 말했다.
정현은 손을 들었다. 문이 닫혔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날 기영의 어머니는 잠깐 외출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는 말을 기영에게서 직접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른들의 사정이 아이들 사이의 소문이 되어 돌아오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었다.
정현의 어머니는 바빠서 오지 못했다. 기영의 뒤에도 아무도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뒤를 돌아 손을 흔들 때마다 정현도 돌아봤다.
기영은 바카라 귀퉁이를 손톱으로 누르고 있었다.
또각, 또각, 또각.
교실 복도에서 날 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운동화 바닥이 먼지를 끄는 소리도 아니고, 실내화 끌리는 소리도 아니었다. 뾰족구두 굽이 나무 바닥을 찍는 소리였다.
한 여자가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보랏빛이 도는 긴 머리, 선글라스, 팔꿈치를 덮는 장갑. 정현은 저런 장갑을 낀 사람이 학교에 온 것을 처음 봤다.
교감이 따라와 여자를 불렀다.
“학부모 되세요? 신발은 벗고 들어가셔야 합니다.”
“5학년 4반 이기영이 엄마인데요. 여기서 벗을까요?”
교감은 여자의 구두를 봤다가 교실을 가리켰다.
“우선 저쪽으로 가시죠.”
여자가 문을 열고 선글라스를 벗었다. 정현은 옆자리 기영을 봤다. 바카라 귀퉁이를 누르던 손톱이 하얬다.
교실 뒤에서 이야기하던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한 사람이 의자를 조금 당겼고, 다른 사람은 여자의 얼굴에서 구두까지 시선을 내렸다. 담임도 출석부를 내려놓았다.
“어서 오세요.”
“늦어서 죄송해요.”
여자는 웃으면서 교실 안을 둘러봤다. 아이들은 칠판 대신 뒤를 보고 있었다.
“누구 엄마야?”
“기영이 엄마래.”
앞자리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났다. 정현은 여자를 다시 봤다.
기영의 어머니는 저렇게 생기지 않았다. 손 씻으라던 목소리와 손톱 옆의 파란 물감이 떠올랐다.
정현은 기영을 돌아봤다. 기영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바카라 귀퉁이를 누르던 손이 바카라상 아래로 내려갔다.
“기영아.”
여자가 손을 들었다.
“엄마 왔어.”
의자가 뒤로 넘어졌다.
기영이 벌떡 일어섰다. 옆자리 아이가 놀라 팔을 움츠렸다.
“씨발.”
담임의 얼굴이 굳었다.
“기영아!”
“누가 우리 엄만데?”
여자의 손이 어깨 높이에서 멈췄다. 웃던 입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기영아, 잠깐—”
기영은 바카라상 사이를 빠져나갔다. 여자가 비켜서며 손을 뻗었지만 기영은 어깨를 틀었다. 복도로 뛰어나가는 발소리가 길게 울렸다.
정현이 따라 일어났다.
“정현이 앉아.”
담임이 말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이 갈 테니까 앉아 있어.”
정현은 반쯤 빠져나온 무릎을 도로 바카라상 밑으로 넣었다. 담임이 다른 학부모들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한 뒤 여자를 데리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 바카라상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다시 일었다. 뒤에 있던 어머니 한 명이 조용히 하라고 했다.
기영의 의자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정현은 의자를 세워 바카라상 아래로 밀어 넣었다. 바카라은 펼쳐진 채였다. 기영이 손톱으로 누르던 귀퉁이가 삼각형으로 접혀 있었다.
*
기영의 부모가 이혼했고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러 먼 나라에 갔다는 것은 나중에 가영이에게 들었다. 가영이는 나라 이름을 처음에는 파리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프랑스라고 말했다.
참관 수업에 온 여자는 새어머니였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들었다는 말을 학교로 가져왔다. 기영이 멱살을 잡고 누구에게 들었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달라졌다. 다음 날이면 다른 아이가 같은 말을 했다.
정현이 집에 놀러 가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기영은 오늘도 내일도 안 된다고 했다. 그다음에는 묻지 않았다. 6학년에 반이 갈리면서 같이 집에 가는 날부터 줄었다.
중3이 되어 다시 같은 반이 되었을 때는 서로 턱만 들었다.
“같은 반이네.”
“응.”
기영은 먹겠다는 아이에게 얼마든지 자신의 찬합을 내주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집에 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
밀린 의자가 옆 바카라상에 부딪쳤다.
기영은 진방의 교복을 놓지 않았다. 손등의 핏줄이 불거져 있었다. 손오공의 턱선을 지우던 때보다 훨씬 커진 손이었다. 진방도 기영의 깃을 힘껏 당겼다.
다음 순간 진방의 손바닥이 기영의 뺨을 가격했다. 기영의 주먹이 곧바로 진방의 광대에 날아 앉았다. 진방의 고개가 돌아갔다. 깃을 놓지 않은 손이 기영까지 옆으로 끌어당겼다.
정현은 통로의 의자를 한쪽으로 밀어 놓고 둘 사이에 얼른 어깨를 넣었다. 기영을 껴안듯 붙잡자 다른 아이들도 서둘러 진방을 붙들었다.
“기영아, 그만해.”
“이 새끼가 먼저 때렸다고!”
도복보다 얇은 교복 소매가 손안에서 비틀렸다. 정현이 놓치지 않으려고 당기자 기영은 반대쪽 팔을 뺐다.
뒤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곧 의자 하나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두 사람 사이로 나뒹굴었다.
“그만.”
정후의 목소리였다.
정후가 천천히 다가오자 구경하던 아이들이 통로를 비웠다. 내내 기영 옆을 지키던 명진도 한 발 물러났다.
“그만하라고, 씨발 새끼들아.”
진방은 대꾸하려다 정후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팽팽하게 당겨 있던 팔이 느슨해지고, 말아 쥔 손가락이 풀렸다. 정후는 진방과 기영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쟤가 먼저 욕했다고.”
기영이 말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기영은 정후의 어깨 너머를 노려봤다. 곧장 달려들지는 못했다. 그러다 진방이 다시 입술을 움직이자 정현의 손을 쳐냈다.
정현은 기영을 뒷벽 게시판 앞까지 밀었다.
“그만 좀 하라고.”
“저 새끼가… 넌 뭔데 나만 잡아! 너는 좀 빠져.”
기영이 어깨를 빼며 정현의 가슴을 밀었다. 정현은 다시 앞을 막았다. 말이 먹히지 않았다. 뒤에서 구경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정후가 진방 쪽으로 몸을 돌린 틈에, 기영이 다시 한 번 정현의 손을 쳐냈다.
“그만하라고 했지!”
정현은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을 내질렀다. 기영의 얼굴 바로 옆이었다.
쾅.
게시판이 꺼졌다. 압정 하나가 튀고 시간표가 비스듬히 돌았다. 기영이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정현은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손을 뺐다. 주먹만 한 구멍의 가장자리에 피가 묻어 있었다.
교실은 조용해졌다. 기영은 더 달려들지 않았다. 정현도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