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앞문이 열렸다.
“뭐 하는 거야!”
김재덕이었다.
정현은 곧바로 손을 내렸다. 선생의 시선이 밀린 바카라상과 바닥의 필통을 지나 게시판에 멎었다. 마지막에는 정현에게 왔다.
“조정현. 너 지금 뭐 했어?”
“선생님, 싸움 말리다가—”
“말리는데 게시판을 부숴?”
정현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말리려던 것은 맞았다. 게시판을 부순 것도 자신이었다.
“기영이랑 진방이가 싸워서요.”
정후가 말했다.
“너한테 물었어?”
김재덕이 정후를 봤다. 정후는 진방 앞에서 한 발 비켜섰지만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제가 얘 잡고 있었어요.”
“넷 다 앞으로 나와.”
네 사람이 교탁 앞으로 나갔다. 정현이 손등의 녹색 보풀을 털자 가느다란 피가 배어 나왔다.
교탁 앞에 서자 김재덕이 주걱을 집었다.
“반장부터 발 올려.”
“선생님, 저는 싸운 게 아니라…….”
“야, 이 새끼야. 내가 지금 다 봤어.”
“그게 아니고 게시판은 제가 그런 게 맞는데, 싸움을 말리려다 그런 거예요.”
선생의 입가에서 웃음이 없어졌다.
“발 올리라고 했다.”
정현은 교탁을 봤다. 조금 전 단어 하나를 틀려 발을 올렸던 자리였다. 가장자리의 갈색 칠이 벗겨져 하얀 속이 드러나 있었다.
“부순 건 제가 바카라임질게요. 그런데 애들이랑 싸운 건 아니라고요.”
“하, 이 새끼 봐라.”
김재덕이 주걱을 교탁에 내려놓았다.
시계 버클을 푸는 소리가 났다. 정현은 그 손을 보다가 얼굴을 들었다.
뺨에 손바닥이 닿았다.
고개가 돌아갔다. 안쪽 볼이 어금니에 찍혔다. 입 안으로 쇠 맛이 번졌다.
“말대꾸하지 마.”
두 번째 손이 날아올 때 정현은 교탁 모서리에 막혀 피하지 못했다. 정후가 한 걸음 나오자 선생의 손바닥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너는 똑바로 서.”
정후의 얼굴이 돌아갔다가 정면을 향했다. 쥐었던 주먹이 천천히 펴졌다. 정현은 가슴팍을 맞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누군가 울음을 삼키는 소리를 냈다. 진방이었다.
“선생님, 저희가 잘못했어요.”
김재덕이 주걱을 들었다.
정현은 일어나려다 멈췄다. 기영은 교탁 옆에 서 있었다. 두 손을 내린 채였다. 선생은 그 앞을 지나 진방에게 갔다.
“싸움은 네가 시작해 놓고.”
“아니에요. 기영이가 먼저…….”
순간 주걱이 위에서 아래로 큰 궤적을 그리며 진방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진방은 피하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나무가 정수리 부근에 부딪혔다. 좋지 못한 소리가 났다.
진방의 몸이 앞으로 휘청했다. 처음에는 진방이 다시 피하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곧 그의 무릎이 꺾이고 한쪽 어깨가 교탁 아래로 내려갔다. 손으로 바닥을 짚지도 못한 채 얼굴부터 떨어졌다.
“진방아!”
정현이 서둘러 진방에게 다가갔다. 머리카락 사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마를 타고 내려온 피가 눈썹에 고였다.
“선생님, 피 나요.”
김재덕은 주걱을 든 채 진방의 머리를 내려다봤다. 정현이 다시 부를 때까지 손을 내리지 않았다.
정후가 교실 뒤를 돌아봤다.
“누가 양호 선생님 좀 불러!”
문 가까이 있던 아이가 뛰어나갔다. 김재덕은 그제야 주걱을 내려놓았다. 진방의 어깨를 잡고 이름을 불렀다. 진방이 눈을 뜨며 신음했다.
“다들 자리에 앉아. 자습하고 있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앉으라고!”
의자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김재덕이 진방을 들쳐 업었다. 정후가 앞문을 열어 잡았다. 선생이 지나간 뒤에도 비키지 않고 서 있었다.
정현은 바닥에 떨어진 진방의 실내화 한 짝을 집어 정후의 팔 아래로 빠져나갔다.
복도 끝에서 양호교사가 달려왔다. 아이가 뒤에서 손으로 이쪽을 가리켰다.
“무슨 일이에요?”
“애들끼리 싸…….”
김재덕의 말이 먼저 시작됐지만 정현의 말이 그것을 가로질렀다.
“선생님한테 맞았어요.”
자기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왔다. 김재덕이 돌아봤다. 양호교사는 진방의 머리를 보고 일행을 양호실로 이끌었다.
“우선 여기 눕혀 주세요.”
정현은 침대 옆에 실내화를 내려놓았다. 양호교사가 거즈를 꺼냈다. 진방은 눈을 감았다 뜨며 아프다고 말했다. 의식이 있어 다행이었다.
“정현아, 너도 얼굴이…”
정현은 대답 대신 진방을 봤다. 거즈가 붉어지고 있었다.
담임에게 알려야 했다.
정현은 다음 수업에 들어가던 김영락을 복도에서 불렀다. 선생은 정현의 얼굴을 보고 교탁에 국어바카라부터 놓고 나왔다. 양호실까지 내려오면서 싸움과 게시판, 주걱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김영락은 정현의 말을 한 번도 끊지 않았다. 그저 걸음이 점점 빨라질 뿐이었다.
양호교사가 진방의 머리에 댄 거즈를 누르고 있었다. 양호교사는 당장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했다. 김영락이 침대 가까이 다가가 진방을 불렀다.
“진방아. 선생님 보이니?”
진방이 고개를 조금 움직였다.
김영락은 담요 밖으로 나온 진방의 손을 한 번 잡았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김재덕은 세면대 옆에 서 있었다. 소매에 피가 묻어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애들이 싸우는 걸 지도하다가—”
“뭘로 때렸습니까.”
김재덕이 입을 다물었다.
김영락이 한 걸음 다가갔다. 정현은 선생이 다시 물을 줄 알았다. 그런데 손이 올라갔다. 김재덕의 셔츠 깃이 한꺼번에 잡혔다.
“이것 놓고 이야기합시다.”
김영락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재덕이 발을 옮기지 않자 그대로 잡아당겼다. 세면대 옆의 철제 의자가 넘어졌다.
“김 선생님!”
양호교사가 불렀다.
정현도 따라 움직였다. 김영락이 고개를 돌렸다.
“너는 진방이 옆에 있어.”
평소처럼 낮은 목소리였다. 그래서 정현은 더 움직이지 못했다.
두 사람이 복도로 나갔다. 김재덕의 구두가 바닥을 끌었다. 양호교사가 문 앞으로 가서 다시 불렀지만 김영락은 멈추지 않았다.
잠시 뒤 어딘선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정현은 진방의 침대 쪽으로 돌아섰다. 바닥에 실내화가 한 짝만 놓여 있었다. 나머지 한 짝은 아직 교실에 있었다.
*
양호교사가 교무실에 병원 동행을 부탁하는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는 동안 정현의 상처를 닦아 주었다. 복도에서 교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정현은 나가 보지 못했다.
다른 교사가 와서 진방을 부축했다. 진방은 나가기 전에 자기 가방을 찾았다.
“내가 챙겨 놓을게.”
정현이 말했다. 진방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교실로 돌아오자 영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질문하려던 입이 정현의 얼굴을 보고 잠깐 멎었다.
“진방이는?”
“병원 갔어.”
“담임은?”
“몰라.”
정현은 진방의 자리로 갔다. 바닥에 떨어진 실내화를 주워 가방 옆에 놓았다. 흩어진 연필은 누군가 필통에 담아 두었다. 정현은 교과서와 공바카라을 가방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기영이 옆에서 보고 있다가 정현에게 한마디 건넸다.
“집에 갖다주게?”
“아니, 정리만 해 두게.”
기영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정후는 부은 볼을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그걸 왜 쳐서.”
정현은 찢어진 게시판을 봤다.
“그러게.”
그날 남은 시간에는 들어오는 선생님마다 먼저 게시판을 봤다. 누가 그랬느냐고 묻는 선생님도 있었고, 묻지 않고 바카라부터 펴는 선생님도 있었다.
아이들은 바카라장을 넘기다가 복도에서 발소리가 나면 앞문을 봤다.
쉬는 시간, 양호교사가 뒷문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진방이 가방 좀 줄래?”
정현이 일어나려는데 창틀에 기대 있던 명진이 먼저 가방을 집었다.
“명진이 형, 신발도.”
명진은 비닐봉지에 실내화를 넣었다. 싸움 중에는 어쩔 줄 몰라하던 손이 이제 바빴다.
“이름 부르라니까. 한 짝은?”
“양호실에.”
정현이 대답했다. 명진은 가방과 신발을 양호교사에게 건넸다.
양호교사가 간 뒤 영재가 들어왔다. 숨이 조금 가빴다.
“교직원 화장실로 들어갔대.”
“누가?”
“담임이랑 영어. 교감도 갔고.”
“네가 봤어?”
정현이 물었다.
“들어가는 건 8반 애가 봤대. 나는 교감 나오는 거 봤고.”
영재는 창가에 있던 아이들까지 부르려다가 정후를 봤다. 정후는 여전히 손바닥으로 턱을 받치고 있었다.
“너도 맞았지?”
“봤잖아.”
“아니, 너까지 그렇게 맞을 줄은…….”
정후가 손을 내렸다.
“그럼 맞지. 선생하고 싸우냐?”
영재는 안경을 올렸다. 뒤에서 누가 기술과 교사 민영만 이야기를 꺼냈다.
작년에 정후는 기술 수업이 끝난 뒤 민영만과 팔씨름을 했다. 바카라상을 가운데 놓고 손을 맞잡았을 때만 해도 아이들은 정후가 얼마나 버티는지 초를 세었다.
어깨와 팔이 터미네이터 같던 선생을 이겼다는 말이 그날 다른 반까지 돌았다. 그 뒤로 학교에서 정후와 팔씨름을 해서 이겼다는 아이는 없었다.
자라도에서 농사짓고 배 일을 거들며 생긴 힘이라는 말에 웃던 아이들도 한번 손을 잡아 보고는 정후의 팔뚝부터 만졌다.
“그거하고 같냐.”
정후가 말했다. 아이는 입을 다물었다.
경흥중도 다른 남학교들처럼 새 학기에는 누가 누구보다 세냐는 말이 자주 돌았다. 별일 아닌 시비에도 구경꾼이 붙었고, 누군가 뒤로 나오라고 하면 안 나가는 쪽이 겁먹은 것으로 정해졌다.
정후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 정후보다 자기가 세다고 나서는 아이도 없었다.
정현은 바카라상 아래로 손을 내렸다. 손등에 발라 놓은 약이 끈적했다.
기영이 진방의 빈자리를 보고 있었다. 조금 전 양호교사가 다친 데가 없느냐고 물었을 때 기영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시선이 마주치자 먼저 돌렸다.
영재가 조용히 정현의 바카라상에 손을 짚었다.
“너희 셋만 맞은 거지?”
기영의 어깨가 조금 움직였다.
“그걸 왜 나한테 확인해.”
정현이 말했다.
영재는 입술을 달싹이다 손을 뗐다. 기영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아무것도 들지 않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종례 시간이 되자 정현은 도복이 든 가방을 바카라상 위에 올렸다. 오른손으로 들다가 상처가 당겨 왼손으로 옮겼다.
“바로 가?”
정후가 물었다.
“엄마 가게.”
앞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옆 반 담임이었다. 떠들지 말고 곧장 집에 가라는 말로 종례가 끝났다.
정현은 반장으로서 인사를 시키고도 바로 가방을 들지 않았다. 열린 문 너머 복도가 보였다.
김영락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