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길

올레7구간 완주를 향해

by오션펌킨

1흩어져있던 퍼즐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지금이 그 시기인 것같다. 하지만 이럴 때 더 방심하지 않아야 한다.

힘든 시기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칠 수록 물 웅덩이에 깊이 빠져들어 간다. 몸에서 힘을 빼고 호흡을 가다듬다 보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몸을 발견하게 된다.

여행을 시작하고 끝날 때 까지도 답은 찾지 못했다. 일정이 끝나서 육지로 돌아와서 한참을 아무 것도 시작할 수가 없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노력만 할 수 있었다. 늘 하던대로 이른 시간에 일어나고 일이 없어도 일찍 나갈 준비를 하고 바카라상 앞에 앉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했다. 그렇게라도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애처로운 노력 끝에 조금씩 무기력감을 극복해냈고 지금은 이전과 다를 바없이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다.

제주 올레 7코스

계획했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속상한 마음으로 제주행 비행기를 탔었지만 사나흘 정도 우울감을 떨쳐내기 위해 몸을 극한으로 내몰았더니 정신이 돌아오기는 했다. 그래도 숙소에 돌아와 오롯이 혼자있는 시간이 되면 잠들기 전까지는 걱정이 먼저 머릿 속에 들어 앉아 버렸다. 몸이 피곤해서 곧잘 숙면에 빠져들어 버렸지만, 속이 편치 않았던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육지에서 지인이 오기로 한 날이 다가오면서 함께 여행할 계획을 짜느라 들떴다. 그러면서 생각의 흐름이 바뀌었다.

일단 여행은 즐기고 보자.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른 아침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늘은 그래도 견딜만 했지만 정수리를 쏘아대는 햇볕은 뜨거워서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그래도 함께 걷는 존재가 있어 신났다.

발길에 채이는 돌부리 마져도 대화거리가 되었다. 순간순간 느끼는 작은 감정선을 즉각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정말 좋았다.

우리가 작정하고 나선 길은 제주올레 7구간이었다. 다녀간 여행자들의 추천 장소이기도 했고 시작부터 바다를 보면서 끝까지 걸을 수 있는 길로도 유명해서 선택한 구간이었다. 선택은 옳았다. 제주는 섬이라 어디든 바다를 볼 수 있지만 이 길을 따라 보는 바다는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거대한 성 위에 올라서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몰아치는 파도를 넋놓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화가 되었다.

높은 곳에서 막연히 바라보기만 하는 바다는 외골개를 돌아 선 후부터 끝이 났다. 잠깐 해안선이 끊기는 듯 했지만 모퉁이를 돌아 나오니 다시 바다였다. 지금부터는 가까운 곳에서 그 바다를 느낄 수 있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한참 듣고만 있던 우리는 주변에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감행했다.

바다에 발 담그기.

철썩이는 파도가 내 발을 간지럽히는 그 느낌을 동심의 기억 안에서 끄집어 내보고 싶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파도와 장단 맞추며 뛰놀던 추억을 소환해 내고 싶었고 우리는 성공했다.

언제 어떤 곳이었고 누구와 갔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린 내가 파도와 놀던 시간으로 돌아가 그 날의 기분을 온전히 다시 느끼고 돌아왔다.

뜨거운 햇살에 달궈진 돌을 밟으며 파도를 직접 느끼며 한창 신나게 들떠 놀고 다시 걷다보니 마을이었다. 기념품을 사는 일은 즐겨하지 않지만 여기는 들어가보고 싶었다. 외관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장이었다.

시원한 냉방 상태에서 잠시 휴식도 취하고 아주 작은 기념품 하나 사서 들고 나왔다. 아이가 장난감을 얻은 기분이 이럴까?!

끝이 없을 듯하던 해안선을 걷고 올레7구간 종료지점을 찾아 걷다보니 마을로 들어가고 있었다. 육지에서도 늘 보던 대형 마트와 프랜차이즈 매장들도 보였다. 걷는 중간에 시원한 음료도 사먹고 간식도 먹었지만 본격적으로 밥을 먹지는 않았다는 것을 도시로 들어 와서야 깨달았다.

음식 냄새를 맡으니 배가 고파진 것처럼 말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저녁을 먹고 싶었다. 힘들고 지쳤지만, 맛있는 식사는 포기할 수 없었다. 고픈 배를 채우는 것으로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꾸역꾸역 맛집을 검색하고 찾아갔다.

올레7구역 종착지에서 식당까지 거리는 걸어서 15분이었다. 가는 중간에 두 번을 쉬어야 할 만큼 지쳐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무거운 두 발을 끌고 억지로 걸었던 수고가 아깝지 않았다. 우리는 식당 안에 들어가자마자 동시에 시원한 맥주를 시켰다. 이의가 있을리 없었다.

맥주와 반찬으로 허기를 달래며 기다렸던 음식은 그 맛이 지금도 그립다.

냉짬뽕의 감칠맛과 탕수육의 바삭함, 짜장면마저 맛있는 이 곳은 제주에는 잘 없다는 중국집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앞날에 대한 고민과 관계에 대한 걱정으로 찌들었던 머릿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듯했다.

먹고 보자.

고민은 나중에 하자.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마쳤다. 화끈거리는 발바닥 통증이 진정이 된 때에 숙소로 가기 위해 식당을 나섰다.

진심이었다. 음식이 맛있었던 것에 고마웠던 그 마음이.

우리의 여행을 두 배 더 풍요롭게 해 주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