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여행 뒤에 둘이 되어 제주를 걷다.

기다리는 즐거움, 함께하는 여행의 설렘

by오션펌킨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3년 동안 개인적인 여행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여행은 사치였고 맛집을 찾아서 잠시 일탈을 하는 것도 시간이 아까웠다. 모든 나의 시간은 일하고 남는 시간은 공부에 집중시켰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인간관계가 많이 정리되었다.

그래서 자격증 합격 후 잠시 방향을 잃고 공허했었다. 몰입해서 하던 것이 끝나고 나니 남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방황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일단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일을 해야 한눈을 팔지 않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행히 공인중개사로서 개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그곳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고 있었다.

돈을 번다는 목적보다는 일을 경험한다는 의의가 컸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협업을 하면서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잡음이 생기고 관계가 틀어지는 일은 어디서나 발생을 한다.

여행을 결심한 것은 오랜 시간 여유를 주지 않고 경주마처럼 달려온 나를 쉬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관계에 문제가 생겼고 하필 여행을 가는 시기가 그 관계를 마무리하게 된 시점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보다는 심란한 상태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나를 잘 아는 친구가 위로를 하기 위해 여행 중인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되는 마음이 고맙고 감동이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여행을 간다고 하면 부럽다 말하고, 돈과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것에 놀라곤 했다. 여행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지지해 주지만 간혹 현실도피나 사치로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주변에 여행을 간다고 드러내기가 조심스럽다. 하지만 찐친의 경우는 내가 왜 여행을 하는지 이해하기에 마음껏 나의 여행기를 말할 수 있었다. 긴 통화 끝에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고 하는 지인의 말에 가슴이 벅찼다. 내가 제주에 있어서 나와 함께 여행을 하기 위해 온다는 말, 15일 내내 혼자 걷고 여행할 계획만 세웠었는데 함께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새로운 설렘이 나 안을 파고들었다.

이미 일주일 넘게 혼자만의 여행을 하고 있던 내게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지인이 오기로 한 날은 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서 산바카라을 하고 나서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도착하는 시간까지 카페에 앉아 여행 이야기 끄적이면서 기다릴 작정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이 정리되지 않으면 나중에 작업에 혼란이 생기는데 꽉 찬 일정을 소화하느라 차분하게 앉아서 사진을 날짜별로 정리하고 여행 중 느낀 것들을 정리할 시간이 부족했었다. 숙소에 돌아와 자기 전에 정리하려고 했지만 침대에 들어가면 금방 잠이 들어 깨어나면 아침이었다. 오늘은 작정하고 사진과 글을 정리하리라 마음먹고 공항 1층에 있는 매장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해 놓고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 도착 시간이 다가오니 하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꾸 시계를 확인하게 되고 혹시 비행기가 연착되지는 않았을까 전광판을 돌아다보았다.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이다 보니 몰입할 수 없어 손을 놓았다.

차라리 기다림을 즐겨보자.

네 시간 정도 차지하고 앉았던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공항 안으로 들어왔다. 비행기가 들어올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외국인들이 정말 많았다. 내국인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제주 여행 성수기라 그런가 했지만 꼭 그런 것 같지 않았다. 제주도가 해외에 알려지면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제주 여행을 경험하기 위해 오는 것 같았다. 삼삼오오 모여서 두리번거리며 버스 정류장을 찾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한국인 가이드가 없이 자유여행으로 오는 듯 보였다.

육지인들도 알아듣기 어려운 제주 방언을 과연 외국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했지만 잠시였다. 지인이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모든 생각이 리셋되었다.

내가 먼저 지인을 알아보기 위해서 일부러 출입구 쪽에 바짝 서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분하고 있었는데 내 뒤에서 나타나는 지인에 깜짝 놀랐다. 놀라움과 동시에 반가움에 부둥켜안고 방방 뛰었다.

타지에서 보는 지인이라 더 반가웠던 것 같다.

혼자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가지고 나와 나흘간 함께할 숙소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고 나니 얼추 저녁 시간이 되었다. 지인이 육지에서 검색해서 찾아온 맛집으로 갔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짐을 풀고 나와 가벼운 몸으로 걸으며 찾아온 곳은 골목부터 맛집이었다.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이 골목에서는 어떤 식당을 들어가도 다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흑돼지에 한라산은 국룰이지. 조금 이른 저녁시간이라 다행히 매장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북적이며 시끄러울 것을 염려했었는데 다행히 조용했다. 말이 필요 없었다. 눈빛 교환만으로 빈 속에 첫 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시원하고 짜릿한 맛에 눈물이 고일정도였다.

매장 직원이 구워주는 고기라 원 없이 수다를 떨 수 있었다. 고기를 굽고 뒤집는데 시간을 쓸 필요가 없었다. 오랫동안 못 본 사이도 아니었는데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저녁을 먹으면서 혼자 여행하며 못했던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했다. 술은 거들뿐, 맛있게 과하지 않게 식사를 하고 회포를 풀었다. 앞으로 나흘 동안 어떻게 여행을 할지 여행 계획까지 다 털어내고 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 가까이에 있는 재래시장에 갔다. 더위를 피해 여행을 하려면 조식 시간보다 일찍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식사 대신 먹을 것과 여행 중 먹을 간단한 간식거리를 찾아야 했다. 시장 구경도 하면서 산바카라을 했다. 재래시장 골목 끝에 다다르니 가까이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밤바다를 보려고 걸었다. 소화도 시킬 겸해서 산바카라을 했다. 바닷바람이 시원해서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설레는 마음 때문에 쉽게 잠이 들지 않아서 가볍게 맥주 한잔씩 하고 나서야 잠을 청했다. 올레시장에서 사 온 달콤 쌉싸름한 디저트와 함께 입가심하고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원래 여행을 좋아했다. 주로 친구들과 무리 지어 다니는 여행을 많이 했다. 6인승 이상의 차를 타고 이곳저곳 다니는 것을 좋아했지만 언제부터인지 혼자 여행을 더 즐기게 되었다.

잠시 외롭기는 하지만 여행 와서까지 상대방에게 맞추느라 눈치 보고 신경 쓰는 일들이 귀찮게 느껴지면서 홀로 하는 자유여행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랬던 내가 함께 여행할 친구가 생겼다는 것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하는 것을 보며 신기했다. 세월은 참 많은 것들을 변하게 하는 것 같다. 취향마저도 변하게 하는구나.

그렇다면 정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진리가 아닐까.

유한한 시간 속에 모든 것은 변해간다. 사람의 마음도 변한다. 변화의 방향이 어디냐에 달린 것이지 변하지 않는 마음도 없다. 시간이 갈수록 더 사랑하는 마음도 처음 그 마음과 달라진 것이 아닌가. 처음 마음보다 덜 사랑하는 마음만 변한 마음이라 정의할 수 있는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한 때, 일관되지 않은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를 꾸짖곤 했었다. 자바카라도 많이 했었다. 그러다 지쳐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일관되지 않은 사람이고 변덕이 심하고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었다. 자기 객관화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힘들게 나를 직면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조금씩 쉬워졌다. 실수를 해도 인정하기 수월해지고 그런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점차 줄어들었다. 인간은 원래 불완전하고 그래서 부단히 수련하고 노력하는 것이고 그 애쓰는 마음이 기특한 것이지 결과에 집착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 실수가 많고 부족함 투성이인 나를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타인의 잘못이나 실수에도 점차 너그러워질 수 있게 되었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조금 불편해도 그 마음이 오래가지 않고 그냥 나와 좀 다르구나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 여행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것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나와 다른 누군가와 같이 여행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그렇게 변한 나를 발견하고 더 기뻤다. 무사히 여행을 마친 것보다는 모든 것을 품으면서 여행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 나를 발견해서 더더욱 행복했다.

이제는 함께하는 여행도 두렵지 않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