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불행은 내가 만든 보고서.

by몽접

내 인생에서 가장 적은 잔액을 가졌던 때가 딱 30세였다. 있는 돈을 다 쓰고 일을 하지 않았고 있는 돈으로 집을 구했고 일을 하지 않고 술을 많이 마셨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정신도 못 차리고 인생이 뭐가 있을까 싶어서 매일 술을 먹는 모습을 보이는 딸을 보고 사는 부모님은 무슨 죄인가 싶어서 과감히 집을 나왔다.


물론 부모님은 걱정을 하셨지만 나 편하자고 나온 것도 있다.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싶어서 철저한 자본주의 슬롯에서 그냥 살아봤다. 밥도 잘 먹지 않고 술로 사는 삶은 엉망이었지만 술기운으로 버티는 삶은 이래서 사람들은 술을 먹는구나 싶어서 다달이 나오는 전기세와 수도세 등등 기타 공공요금을 내면서 밀리지 않게 사는 삶이란 처음으로 그렇게 살아보니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게 된 건 내 잔액에서 휴대폰 요금이 밀리고 있을 때였다. 문자가 왔다. 한 달 요금 미납, 이런 일은 없는데 무슨 일이지? 싶어서 통신사에 의뢰하니 자동납부 계좌에서 돈이 없어서 못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정신줄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몽접아 정신 차리자'

하긴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친구는 나에게 이러고 사는 게 맞는 건지 생각하라고 몇 번의 조언을 했지만 난 사는 게 모두 피곤하다는 핑계로 손을 놓고 지냈다.

그리고 정확하게 두 달 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 사는 거 안 힘들어?"

나는 "엄마 미안해 이제 정리할게"

그렇게 나는 집주인에게 생각보다 일찍 나가게 되었다고 일 년 계약에서 3달 빨리 나가게 됨을 알리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이렇게 저렇게 알아보던 중 친구가 연락을 했다.

온라인 게임생활이 맞지 않아서 공무원 준비를 하는 친구인데 나에게 서울에 집이 있으면 같이 공부하자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때 집이 없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그럼 같이 구해서 살자고 하고 친구와 같이 집을 알아보던 중 친구는 노량진에서 같이 공부를 하자고 권유를 해서 나와 친구는 같이 노량진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이때 난 통장에 찍힌 금액을 확인했다. 19만 5천 원.


턱도 없는 금액에 한숨을 쉬면서 누구에게 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정을 할 수 없어, 인생 처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노량진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돈이 부족해. 엄마 도와줄 수 있을까?"

무거운 마음과 두근거림을 가지고 전화를 했는데 엄마의 반응은 "그럼"이라고 하시고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찍힌 금액은 생각보다 많았고 엄마는 돈 걱정하지 말고 밥도 사 먹고 놀기도 하면서 공부를 하라고 엄마만의 마음으로 편지를 써주셨다.

그리고 당분간 통신비용은 엄마가 내줄 테니 변경을 하자고 하셔서 또 빚을 지는 삶을 지내게 되었다.

이를 물고 공부를 했고 친구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우리는 벼랑이라 라는 말을 정말 자주 했다.

하긴 나이 서른에 어디로 가도 중고인데 신입으로 들어가기가 어디 쉬운가 그래서 결국 우리는 각자의 삶은 각자의 삶이니 공부할 때는 얄짤없이 정말 순 공부시간 10시간은 채우자고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합격을 하고 정말 기뻐하며 술을 마셨는데 친구는 나에게 "너 처음 봤을 때 왜 그렇게 망가졌나 싶더라. 대학 때도 그러지 않던 애가...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또 다르게 사는 거니까. 인생 수업 독하게 했으니 이제 어딜 가도 그만큼 힘들지 않겠자. 힘든 주사 맞았다고 생각하고 우리 잘 버티자. 알겠지?"

나는 "응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난 여기 노량진 이 섬에서 혼자, 그래서 어려웠을 거고 또 공부도 늦게 시작했을 텐데 고맙다:"

우리는 그렇게 지난날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리고 나 망가졌을 때 잔액이 20만 원도 없었어.ㅋㅋ"

친구는 "지겹다 지겹여"


고개를 저으며 "그러니까 이제 정신 차리고 알겠지?"

그렇게 우리는 그날을 보내고 각자 짐을 챙기고 헤어지고 지금까지도 잘 지낸다.


친구는 결혼을 했고 온라인 게임에서 좋은 분을 만나서 제2의 인생을 만났다.

난 축하한다고 했고 친구는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라는 말을 했지만 이미 친구는 결혼은 꼭 하고 싶다고 했기에 나와는 가는 길은 달랐다.

인생에서 가장 적은 금액을 들고 있었을 때 나는 알았다.

밑천 없는 인생은 어딜 가도 흔들리는구나, 그래 너무 나를 놓고 살았다.

이제는 이런 일은 없어야지.

그래서 그런가 나는 이제 항상 잔액을 확인하고 절대적인 금액 이해로 두지는 않는다.

역시 인생수업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다.


엄마가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아빠의 연대보증으로 집이 힘들 때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몰래 돈을 주실 때 엄마는 "엄마 감사해요. 이제 숨이 좀.."

외할머니는 "그래 사는 게 그렇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나이 들고 보니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전 17화17. 온라인 게임은 지키는 곳이 아니라 버티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