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대기업을 갔다고 좋아했지만 난 6개월을 거의 울면서 지냈다. 뭐 말해 뭐 하겠는가. 여기가 대학이냐부터 너는 글이 안는다 말을 줄여야 한 다부터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인사성 하나는 달라서 뭐라 말을 못 하니 한숨을 쉬면서 내게 알려주는 사람들은 바로 해라 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셨다. 그때는 어려웠다. 정말 어려워서 회사를 나가기 싫어서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 버티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하면 나도 참 일머리가 없었다 싶다. 그렇게 6개월 지나고 1년이 지날 무렵 우리 팀에는 다른 사수가 들어왔다. 말로는 일은 끝내준다는 사수였다.
첫인상은 환한 웃음에 좋겠다 싶었으나 딱 2분 "자 다들 회의실로"
오자마자 회의실 요청에 다들 한숨을 내쉬며 들어갔다.
사수는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이야기하며 뼈를 묻을 거라며 이야기를 하셨고 다들 땅을 보듯이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사수는 딱 하나 "일을 하세요, 그리고 끝내고 가세요" 이 한 줄로 마무리를 했다.
다음날 사수는 정말 일찍 오셔서 인사를 하고 내 자리에 앉아서 나도 일을 시작하려고 했더니 "몽접?"
나는 "네"
사수는 "아니 여태 한 게 이거야?"
나는 "네"
사수는 "아니 여기에서는 이걸로 하고 이거에서는 그걸로 하고 바뀌지 않았어?"
나는 "전 사수님께서 하라고 한걸 한 건데.."
사수는 "그건 전 사수고 사람이 바뀌었는데 시스템이 바뀌어야지. 사람이 맹꽁이도 아니고 안 그래?"
나는 "네 적응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인사를 폴더각으로 했다.
사수는 "응 아니야 아니야, 바로 적응"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속으로 '아 얼마나 있을까?' 생각을 했다.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를 시작으로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전 사수는 모르면 이야기를 해주셨고 꼭 집어서 어디를 고쳐와라 하셨고 이런저런 사적으로 힘든 생활도 들어주셔서 회식에서도 정말 막냇동생 철없는 애 다닌다 생각해 주셨는데 이 분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뭐 평판으로는 능력으로 고속승진 했다고 하는데 상사는 정말 철두철미했지만 자신에게는 한없는 관용이 있었지만 타인에게는 자비가 없었다.
그날이었다. 회사와 미팅이 잡혀서 한 달을 공들인 미팅 날짜가 잡혀서 나는 전날 잠도 설쳤다. 영어로 미팅이 있어서 발음에 더 신경을 쓴다고 한 달 동안 영어학원을 다니며 딕션 공부까지 했던 터라 내 목소리를 폰으로 녹음을 하며 버텼다. 그리고 당일 10시, 회의실의 공기는 차갑기 그지없었지만 난 웃으며 인사를 했고 영어로 준비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사수가 있었다. 사수는 전날의 숙취 때문인지 주제를 잡지 못했고 주제에 벗어난 이야기를 하자 상대는 시간이 없으니 빨리 넘어가자며 농담은 여기까지로 충분하다며 다소 억양이 높았다. 그러자 사수는 나에게 "몽접 오늘 우리 주제가 프레젠테이션에 다 있는데 애네 왜 이래?"
나는 "아무래도 좀 더 필요한 자료가 있는 것 같아서 더 준비를 했는데 이어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나 다음 동료가 준비한 자료를 설명을 했고 지루해졌는지 3시간이 이어진 열띤 준비를 하고 마지막 사인을 남겨두고 내려진 결론은 no였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어이가 없었고 다시 생각을 해 보라고 했고 이미 서면으로 작성을 하고 결정된 사안에서 우리는 충분히 설명을 하고 이 자리는 yes를 받고 사인을 위한 최종자리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상대방 팀장은 우리에게 "너희 보스는 준비가 안 됐어"라는 말로 그냥 자리를 떠났다.
이후 우리 팀은 욕을 먹어야헀고 사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자리로 가버렸다.
점심도 먹지 않고 오후 그리고 퇴근시간까지 아무 말도 없는 사수는 우리를 불러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하는 이야기는 "각자 노력한 건 알겠는데 내가 들어도 별로였어. 몽접이 그리고 기타 등등. 난 너희들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뭐야 이게?."
나는 "최선을 다했고 시안에 프리젠테션 사인을 하신 건 사수님이셨습니다"라고 말을 하자
사수는 "그때는 내가 너 뭔가 더 하겠지 하고 사인한 거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옆에 있던 동료도 "저희 여기까지 한 달을 미친 듯이 했습니다. 아시잖아요."
이어지는 사수는 "달리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이게 말을 해도"
분위기가 점점 뜨거워지자, 우리는 자리를 뜨려고 하자 사수는 마지막 비수를 꽂았다.
"아 이런 월급 루팡들..."
다들 가방을 들다 말고 사수를 봤다. 그리고 우리는 침묵에 엘리베이터를 보면서 아무 말 없이 그냥 자리를 떠났다.
마음이 허해서 근처 포장마차에서 한 잔 하려고 앉아서 소주잔을 기울이니 눈물이 났다.
내 월급은 어디까지일까? 사수와 어디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등등 많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소주잔에 뜨거운 가락국수 국물을 마시며 나 혼자 그러고 있자니 세상 천애 없는 고아였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는 엄마 나는 엄마에게 씩씩하게 전화를 받았다.
"응 엄마"
엄마는 "회사는 괜찮아. 요즘 집에는 왜 이렇게 안 와?"
나는 "바빠. 엄청 바빠. 엄마 고추농사만큼 바빠"
웃으며 말을 하지만 쏟아지는 눈물을 무시하며 목구멍이 좁아지는데 나는 애써 빨리 끊으려고 하자 갑자기 어딘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내 자리에 동료가 왔다.
나는 "엄마 나 회식"
엄마는 "그래"
동료는 "튀어봐야 여기지"
그렇게 동료와 함께 쓴 소주를 마시며 월급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동료는 여기저기 원서를 100곳을 썼는데 다 떨어지다 왔다며 눈이 높아서 중소기업은 생각을 안 했다며 재수해서 대기업에 합격을 해서 누가 나가라고 소리 지르면 자기는 더 열심히 해서 버틸 거라며 쓴 소주를 내리 부으며 마시더니 우리가 만난 사수는 어쩌면 우리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며 편하면 또 우리는 어쩌면 우리 현실에서 너무 낭만이 아니겠냐고 말을 하는데 그도 다르지 않을 거라 느는 위안을 삼으며 나는 동료와 시간을 보냈다.
동료는 아버지가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다가 IMF에 부도를 맞아서 정말 집을 날려 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돈의 소중함을 알아서 다시는 이렇게 살기 싫다고 생각해서 대학도 좋은 곳을 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 지방대학을 나름 선택해서 4년 장학생을 받고서 여기까지 올라온 거라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하지만 자신은 용이 아니라고 했다. 용이 되려고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용의 꼬리라고 웃으며 이야기를 했고 잠깐 중소기업을 다니다나가 이직을 한 케이스라고 했다. 중소기업에서 겪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게 또 삶의 밑천이라는 썰을 풀면서 결국 우리는 그 포장마차 새벽 3시를 마감하게 되었다.
다음날 사수는 우리에게 그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도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이 커피를 사주며 "우리가 이제 한 팀이 되나 싶었는데 아쉽게 가네요. 다른 사수 오면 열심히 배우도록" 정말 자리를 비우고 다음 사수가 왔다.
다음 사수는 정말 젠틀했다. 너무 보편적인 사람이었다. 우리에게는 판타지였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사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다. 월급에는 눈물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 눈물의 무게는 그때그때 다르다. 좋아서 흘리는 무게 그리고 슬퍼서 흘리는 무게 얼마나 생각을 해야 할까, 생각을 하면 나는 늘 그랬던 것 같다. 슬퍼서 흘리는 무게가 좀 더 가벼웠던 것 같다. 인생은 항상 행복할 수 없으니 우리 엄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몽접아 부처님도 하나님도 반반이다. 모두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물며 인간들이 다 너를 좋아하기를 바라지는 말아라"
맞다. 너무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일이 힘들어지면 늘 생각한다. 엄마 아빠 공무원 어떻게 버티시고 사셨을까?
결국은 가족이었겠지?
그러다 술 한잔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는 길, 높디높은 언덕이 보이는 길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무게는 눈물의 무게와 비례한다는 생각을 접을 수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다음날은 다르겠지? 하지만 뭐 다음날도 또 일이니까 , 그래서 난 생각한다. 거침없이 사는 삶보다는 일상적인 삶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삶이 좋은 거라고, 평범한 삶이 얼마나 힘든 건지 아는 나에게는 일이 있어서 다행이다 하고 사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