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지하철을 타고 9 개단을 지나면 도착을 한다. 언제나 무수한 사람들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대학 때 친구와 함께 2호선 내선을 한 바퀴 돌면서 여름방학을 보낸 적이 있다. 한 바퀴 돌면서 친구와 잠을 자고 깨고 나면 어느 구역에서는 지금은 없는 상인 아저씨는 CD를 판매하고 계셨다. 승객에게 불편을 준다고 내리라는 방송이 있었지만 그래도 팝송을 틀어서 판매를 하시는 아저씨는 "이건 오래되었지만 적어도 100곡은 녹음, 자 정말 저렴합니다" 아직도 생생한 아저씨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실까.
우리 할머니는 사람은 서울로 가고 말은 제주도에 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그럼 시골은 누가 소를 키워라고 물으면 "네가 늙으면 어차피 시골로 가니 그때 소를 키워도 늦지 않다"라고 하셨다.
수능을 치르고 점수를 받기까지 한 달의 여유가 있을 때 친구들과 대학을 가면 운동권을 할 것인지 말지 이야기를 많이 했다. 뭐 우리가 생각하는 운동권은 80년대까지는 아니어도 끓어 넘치는 열정은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 세대가 마지막 운동권이고 이미 운동권의 이미지는 세탁이 되었다는 걸. 학교를 가니 운동권으로 일을 하기는 그렇고 동아리 방에 대자보를 쓰는 역할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어서 2년을 활동하고 친구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 꼭 빠지지 않는 게 지하철이었다.
그해는 정말 추웠다. 친구들과 신촌에 가서 포장마차에서 소주 두 병에 우동하나 두고 여기는 진짜 자본주의다라고 웃으며 앞으로 졸업을 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이야기하면서 그동안 읽은 바카라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20대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서로 다른 바카라을 읽었으니 재미는 있었지만 우리가 공통으로 느낀 점은 서울은 사람을 외롭게 한다는 거였다.
우리와 합석한 동훈이는 서울이 고향이다. 그래서 추석이나 설날이 되면 더 외롭다고 했다. 우리는 고향이라고 어딜 간다지만 자신을 갈 곳이 없어서 괜히 한강공원에 가서 통닭을 먹고 그러다 이것도 지겨우니 텔레비전 영화를 보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하는데 정작 서울에 태어났지만 본인도 서울은 외롭다고 하니 그 이유인 이유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가를 마련하는 모습을 너무 잘 알기에 서울은 너무 힘든 곳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동훈이 말로는 동훈이 아버지는 세탁소를 하셨는데 잘 곳이 없어서 다락방에서 4명이 잠을 청했다고 한다. 비좁은 다락방에서 동훈이는 죽어도 돈은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딱 두 가지 대학 가고 빨리 돈 벌기여서 20살이 되면서 바로 알바를 하고 돈을 지출할 때마다 기록을 하는 습관을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세탁소는 어느덧 먼 이야기가 되고 아버지 일도 근근이 먹고살만해져 아버지는 마지막 통장을 털어서 아파트를 마련하셨는데 전세 계약을 하고 그날 첫날 그 아파트에서 잤었던 기억을 지울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전세를 자가로 돌리기 위해서 아버지 어머니는 잠을 줄이고 3 잡을 뛰며 돈을 모으셨고 그렇게 집을 자가로 마련하고 살만해질 때 즈음 어머니가 요구르트 배달을 하시다가 언덕에서 굴러서 큰 사고를 겪으셨다고 한다.
친척들은 돈을 빌려 달라고 할까 봐 연락을 거의 끊다시피 했고 동훈이는 시멘트를 옮기는 일당벌이를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 일터로 나가고 아버지와 그렇게 3달을 일하며 어머니의 두 번 수술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장 외로울 때는 지하철에서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서 서로 말없이 그냥 지하철 멍을 할 때라고 했다.
아무 말하지 않았는데 여기 서울이고 그래 너 힘들었어, 까지 이야기해 주는 그 지하철이 그냥 싫었다고 했다.
나는 사실 서울에 살면서 유목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게르에 사는 몽골인처럼 떠돌아다니는 유목민 말이다. 서울에 살지만 이곳은 내가 끝내야 하는 장소가 아니라 잠시 머무리는 장소, 최근에는 고향에 가고 싶어서 이리저리 알아보기도 했지만 직업이 여의치 않아 퇴사도 쉽지 않아서 그냥 더 연장을 했다.
하지만 고향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향은 내 어릴 때 추억을 주고 나를 키워낸 곳이다.
고향에 가면 시간이 느리다. 같은 시간이라도 그곳에서는 바람도 느리게 분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없어서 3반이 전부이고 작은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씁쓸하지만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지금 생각에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고향에서 카페를 하고 싶다. 바카라과 함께 하는 카페.
이름도 지었다. 살롱으로 끝나는 이름으로.
하지만 이것도 쉽지는 않겠지 하고 다시 생각에 생각을 더듬고 어제는 집에 가는 길, 지하철을 겨우 탔다.
4번을 그냥 보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발을 간신히 넣고서 버텨서 성공했다..
절벽에 서 있는 느낌으로 버티자, 하고 버티니 쥐가 나서 간신히 내려서 잠시 앉아서 다시 지하철 멍을 했다.
서울을 오래 살고 있지만 난 아직 집이 없다. 언제 내 집을 가지겠는가 생각을 하다가 그냥 접기로 했다.
그리고 고향으로 가게 된다면 집을 사기로 했다.
변명이 될지도 모르지만 서울은 나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막상 서울을 벗어나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있겠지만 집은 아마도 힘들 것 같다.
서울 언덕에서 보면 수많은 집, 그러나 내 집은 없다.
때로는 당연하고 때로는 슬픈 현실에서 나는 그냥 멍을 한다.
아무도 보지도 묻지도 듣지도 않는 지하철 역에서 사람을 구경하기란 어렵지 않지만 외로움은 서로에게 전달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괜히 올라오는 쓸쓸함을 누르며 개찰구에서 팔고 있는 팬케이크 하나를 들고서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