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라는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며 '그래 이래야 밥 벌이지' 하면서 하루 이틀 삼일을 하루하루 달력을 지워가면서 일을 할 때였다. 그리고 거의 마무리를 다 할 때 즈음 또 일이 주어지고 누군가는 나에게 실력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나에게 미련 곰탱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나에게 스스로 만든 업이라고 했다.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결국 나에게는 쓴소리이자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언제 사표를 쓰지?
대기업을 다닐 때 사표를 처음 쓴 건 다니고 2년이 지났을 때였다. 회사는 나날이 바빠지고 나도 연차가 생겨서 후임이 한 명이 들어왔을 때 이것저것 알려주면서 일을 할 때인데 하필이면 윗 사랍들이 하나 둘 빠지면서 산타 선물도 아니고 일을 맡다 보니 나는 너무 힘들어서 이러다 내가 죽지, 하는 말을 하면서 결국은 집도 포기하고 근처 찜질방에서 잠을 대체하고 다시 출근 그러길 2주를 내리 보내고 나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힘들었지만 나름 뿌듯한 생각에 '그래 이거지' 하면서 출근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업무 미팅이 잡혀서 또 날밤을 새고 그렇게 3년을 가다가 난 숨이 찼다.
그래서 결국은 사표를 던졌다. 사람들은 다시 한번이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사용했고 그때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공무원으로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순 공부시간과 어떻게 공부했는지 알기 위에서 주말에 약속을 잡아서 이것저것 물어봤고 결국은 학원까지 알아보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사표를 냈으니 수리가 되겠지 했는데 반려, 이유는 간단했다.
부장님은 자신의 방으로 불러서 "야 몽접이 너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사춘기야!! 인마 여기 다 10년 이상 베테랑이야. 이 사람들은 사표 못 써서 안 쓰냐! 자식, 그리고 먹고살만한 가정 없고 혼자 산다고 불쑥불쑥 이렇게 내면 일 년에 몇 명이 내겠냐? 나는 못 받은 걸로 알 테니 오늘 받은 일이나 해서 끝내!!"
나는 "아니 그게 아니라 번아웃이 지금 너무 심해서.."
부장님은 내 사수를 불러서 "야 몽접이 번아웃이란다. 오늘 일찍 퇴근시키고 내일 일 줘라"
사수는 나를 보더니 "네 알겠습니다"라고 하고 일단 상황은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나에게 라운지로 불렀다.
"야 또 썼어?"
나는 "네"
사수는 "왜 내가 마음에 안 들어?"
나는 "아니 그게 아니라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습니다."
사수는 "야 여기 들어오려고 다들 사시 패스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해, 어쩌다 소 뒷다리 잡아서 들어온 놈이 무슨.. 나는 매일 내고 싶다. 그런데 아침에 아들이 아빠 하는 소리 들으면 눈이 떠져. 그리고 편지도 아니고 매해 내면 어떡하냐?"
나는 "... 그래서.. 그런데 받아주세요"
사수는"들었지. 오늘 일찍 퇴근하고 내일 일해"
그렇게 나는 오후를 나와서 반차 겸 커피숍에 앉아서 멍을 때렸다.
인생이 뭐 있겠는는가, 맛있는 거 먹고 하늘 보면서 사람 구경을 하니 그나마 좀 좋았다.
그래 돈 많고 할 일 없이 사는 백수가 최고구나 하는 생각에 강남바닥에 앉아서 구경을 하니 다들 바쁘게 산다는 생각에 사직서를 다시 가슴에 넣고 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결국 사표를 썼다.
수리까지 6개월이 걸렸고 중간에서는 다시 한번이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들었지만 나와는 맞지 않아서 결국 퇴사하고 그 덕분에 퇴직금으로 외국을 다녀와서 무엇을 하고 먹고살아야 하나,라는 현실 앞에서 나는 또 다른 번아웃을 맞이하였다.
괜히 아침에 바쁜 사람들이 부러웠고 어딘가 간다는 게 그저 부러운 백수에게는 소속감이란 게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싶었고 단 한 번도 원칙을 깨본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깨보고 나니 현실은 막막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나가면 다시는 컴백이 힘들 거라고 했고 나는 다시는 대기업에 입사를 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눈에 들어오는 회사들은 대기업 그래서 결국은 다시 공부를 하고 내 직무에 맞는 곳을 지원했지만 줄줄이 퇴짜를 맞고 편의점에서 울기를 여러 번 냉혹한 현실은 나에게 '그때 참았어야 했나?'를 물었다.
그래 인내라는 단어가 괜히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다음 온라인 게임은 무조건 버텨야지 하고 친구가 공부하고 있다는 노량진을 향해 나는 남은 마지막 돈을 가지고 마지막 지원서를 넣고서 이곳에 오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면접 질문은 "왜 대기업을 퇴사하셨어요?"였다. 많은 질문들 중에 늘 빠지지 않은 질문 나도 사실 잘 모르겠지만 내 역량의 문제일 수 있고 시스템의 문제일 수 있으나 확실한 거 일 년에 2번씩 찾아오는 번아웃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하면 오해가 풀리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계절병이라고 했다. 계절이 오면 호르몬의 수치가 달라져서 사람마다 우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어쩌면 그럴 수 있으니 정신과 상담을 받으라고 했다. 그러기도 했다. 하지만 정신과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미약하다며 일이 지배적이라고 하셨고 무슨 일을 하시는지는 모르나 잠시 쉬라고 하셨다. 나는 늘 그랬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퇴근하면 몸이 짐이 돼서 누워있기 바쁘고 눈을 감고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던 날들이 많았던 별이 보고 싶어서 고향이 그리웠던 날들이 더 많아 이곳 서울이 그저 슬프게만 느껴졌던 과거의 그 수많은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번아웃은 그렇게 나를 무너져 내리게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기도 했다. '너 서울사람이잖아. 다들 바쁘게 다녀. 지하철에 자기 발 하나 넣기 힘들어'라고 말이다.
나를 놓아준 용기가 있어서 그때를 버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눈을 감고 나를 놓아준다. 그래야 이 서울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아 그렇다고 이제는 사직서를 쓰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은 반차를 쓰며 하늘을 가끔 보며 나를 놓아주며 눈을 감는다. 가을이다. 바람이 좋고 차향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