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쓰다
어제부터 읽고 있는 바카라 ㅡ<수월한 농담ㅡ송강원>ㅡ 사이에서 묘하게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의 감정이 올라온다. 확 슬픈 것도 아니고 크게 아픈 것도 아닌, 아린 감정이다. 웃음도 아니고 눈물도 아닌 어중간의 중간 감정을 짧은 내 글로 표현하지 못해 나는 짜증이 난다. 어떻게 그 감정을 드러내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이다. 또 토해내지 못하는 나의 짧은 글을 탄식한다.
엄마를 잃고 나서야 느끼는 감정을, 나는 엄마를 잃어봤는데 너는 아직 그 모를 거야 라는 심정.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을 지금의 네 나이. 느닷없이 다가올 수도 있는 그 감정을 엄마인 나도 설명이 잘 안 되는데 네가 어떻게 알 수 있겠니, 하는 마음.
<수월한 농담>은 평소 엄마와 제법 친하다고 여겼던 작가가 엄마가 아픈 후 더 친해지게 되고 아픈 마음까지 모두 받아내며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 한 30대의 젊은이의 이야기야. 이 바카라을 읽으면서 뭔가 충족되지 않는 사랑이 가슴에 자리하고 있어서 내내 무거운 마음이었어.
모두가 제 살 길 바빠서 바둥거리고 있고 자신의 삶의 무게가 무거워 타인을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가족이 아프고 난 후에야 소중함을 느끼게 될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절감하며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너와 내가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 연락이 뜸해질 때면 우리가 너무 긴 시간을 소원하게 지내는 게 아닐까 조금 걱정이 되더라. 자주 수시로 전화라도 하고 연락이라도 하는 게 왜 그리 안 될까. 아들아, 엄마는 매일이어도 좋은데 너는 그냥 그렇게 지내도 나쁘지 않은 듯 무심해지는 날이 길어진다.
자주 연락하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면 엄마는 무엇이 부족하다 여겨질까. 딱히 바라는 건 없는 건 맞아, 늘 잘하고 있으니까, 단지 연락이 뜸하다는 것, 그것뿐인데 그것이 그리 오늘 아침 이렇게도 마음 시리게 다가올까 몰라. 아닐 거야, 그것이 마음을 시리게 한 건 분명 아닐 거야.
20대의 청춘을 타국에서 보내고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에 귀국을 해 엄마와 3년을 보내다 헤어진 작가 앞에서 엄마 마음이 왜 이리 시릴까. 안 아프게 사는 걸 보여주고 싶은 모든 엄마의 마음일 텐데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나누었던 모자를 보면서 엄마는 그냥 이유 없이 마음이 아팠다.
엄마와 함께 조금 더 일찍 많은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겠지. 수시로 연락을 하면서 목소리라도 들어보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겠지. 아마도 그런 것들이 쌓여 내 일처럼 다가온 건 아닐까 몰라.
극 T와 극 F가 만나면 재미있을까, 없을까. 이성적인 사람끼리 만나면 서로 재미있을 것이고 감성적인 사람끼리 만나면 또 재미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과 감성이 만나면 이성을 이해하기 어렵고 감성의 마음을 읽어주긴 어렵지 않을까 싶다. 너와 내가 그렇듯이.
그러나 서로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조금 더 다정스레 다가가고 싶다. 이성과 감성을 떠나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이므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사랑을 우리 이제 조금만 더 꺼내보도록 하자.
ㅡㅡ사랑하는아들에게ㆍ2025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