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맺힌 세상
사진가들은 조리개, 셔터, 감도를 〈노출의 삼각형〉이라 부른다. 처음 배울 때는 셋이 서로 다른 장치처럼 보인다. 하나는 구멍의 크기, 하나는 시간, 하나는 민감도. 그래서 셋을 따로 외우고, 따로 계산하고, 따로 헤맨다.
기독교 신학에는 〈삼위일체〉라는 오래된 수수께끼가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셋이지만 하나의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신학자들이 이것을 설명하려 애썼다. 3세기의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는 태양을 예로 들었다. 태양과 그 햇살과 햇살이 비추는 빛은 셋으로 나뉘어 보이지만 결국 같은 빛이라는 것이다. 4세기에 만들어진 니케아 신경은 성자를 이렇게 고백한다. 〈빛에서 나신 빛.〉 신학자들이 삼위일체를 설명하려 할 때마다 빛을 붙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출의 삼각형도 그렇다. 어느 순간 사진가는 깨닫게 된다. 셋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같은 질문에 대한 세 가지 대답일 뿐이다. 〈빛을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가.〉 구멍을 넓힐 것인가, 오래 기다릴 것인가, 더 예민해질 것인가. 길은 셋이지만 그 끝에서 만나는 것은 하나다. 셋이면서 하나인 것, 그것은 빛이다.
눈도 평생 같은 일을 한다. 동공을 열고 닫고, 눈꺼풀을 깜빡이고, 어둠 속에서 민감해진다. 오직 빛을 알맞게 받아들이기 위해서.
사진, 포토그래피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왔다. 그 뜻은 〈빛으로 그린 그림〉이다. 사진가는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다. 빛을 다루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