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는 눈

꽃은 누구를 위해 피는가

by모모어린



5억 4천만 년 전의 바다를 상상해 보자.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생물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서로를 보지 못했다. 빛은 바다를 비추고 있었지만, 그 빛을 받아들일 눈이 아직 없었다. 세상은 존재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이 나타난다.


영국의 동물학자 앤드루 파커는 이 사건이 지구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주장한다. 눈이 생기자 사냥꾼은 먹잇감을 멀리서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먹잇감은 살아남기 위해 단단한 껍데기를 두르고, 가시를 세우고, 몸의 색을 바꾸었다. 보는 자와 숨는 자 사이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 무렵 지구에서는 생물의 종류가 갑자기 폭발하듯 늘어난다. 과학자들이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 부르는 사건이다. 파커는 그 방아쇠를 당긴 것이 눈이었다고 본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꽃은 왜 붉고, 노랗고, 보랏빛일까. 꽃의 색은 꽃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벌과 나비의 눈을 위한 것이다. 보는 눈이 없었다면 꽃은 화려할 이유가 없었다. 공작의 꼬리도, 나비의 날개도, 노을빛을 닮은 열대어의 비늘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누군가의 눈을 향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눈마다 보는 세상은 다르다. 인간은 세 종류의 색 수용체로 세상을 본다. 갯가재는 12종류가 넘는다. 벌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자외선을 본다. 우리 눈에 그저 노란 꽃이 벌의 눈에는 한가운데로 이어지는 활주로처럼 보인다. 같은 들판에 서 있어도 인간과 벌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어느 쪽이 진짜 세상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1997년, 일본의 두 연구자는 88종의 영장류의 눈을 조사한다. 그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흰자위가 이토록 하얗고 넓게 드러난 영장류는 인간뿐이었다. 침팬지와 고릴라의 흰자위는 어둡거나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어디를 보는지 상대는 알기 어렵다.


이후 독일의 심리학자 마이클 토마셀로는 실험을 한다. 실험자가 머리는 그대로 둔 채 눈동자만 옆으로 돌린다. 유인원들은 머리의 방향을 따라갔다. 그러나 인간의 아기들은 눈동자가 향하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흰자위는 우리의 시선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사냥할 때는 불리한 특징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덕분에 말이 없어도 서로의 생각을 읽고, 함께 사냥하고, 서로를 믿을 수 있었다.


눈은 원래 세상을 보기 위해 생겼다. 그런데 인간의 눈은 다른 길을 걸었다. 인간의 눈은 보여 주기 위해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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