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을 어긴 물
부엌에서 간단한 실험을 해 볼 수 있다. 양초를 녹여 촛농을 컵에 담고, 굳은 촛농 한 조각을 그 안에 떨어뜨린다. 조각은 가라앉는다. 올리브유도, 버터도, 쇠도, 바위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거의 모든 물질은 굳으면 몸이 촘촘해지고 무거워진다. 그래서 고체는 액체 속으로 가라앉는다. 이것이 자연의 규칙이다.
물은 이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물 분자는 얼어붙는 순간 서로 손을 맞잡고 육각형의 벌집 모양으로 늘어선다. 그 사이에 빈틈이 생긴다. 그래서 얼음은 물보다 9퍼센트쯤 가볍다. 얼음은 가라앉지 않고 뜬다.
더 기묘한 것도 있다. 물은 0도가 아니라 4도에서 가장 무겁다. 겨울이 오면 호수의 물은 차가워지며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다 4도가 되면 물은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다. 그보다 차가운 물은 오히려 위로 떠오르고, 수면에서부터 얼기 시작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얼음은 호수를 덮는 뚜껑이 된다. 차가운 바람을 막고, 그 아래의 물이 얼지 않도록 지켜 준다. 한겨울 꽁꽁 언 호수 밑바닥에서 물고기들이 4도의 물속에 머물며 봄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다.
만약 물이 다른 물질처럼 행동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얼음은 생기는 족족 바닥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호수와 강은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얼어 올라갔을 것이다. 물고기도, 개구리도, 물풀도 겨울마다 얼음 속에 갇혀 죽었을 것이다. 바닥에 쌓인 얼음은 여름 햇볕이 닿지 않아 녹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구의 물은 해마다 조금씩 얼음이 되어 갔을지 모른다. 그리고 생명이 처음 태어난 곳은 바로 그 물속이었다.
단 하나의 예외. 그 예외 위에 생명이 서 있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수소 결합으로 설명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설명이 끝났다고 해서 경이로움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왜 하필 생명에게 가장 필요한 물질이 하필 이런 성질을 가지게 되었는가.
물은 자신이 가장 차가워지는 순간에도 아래에 있는 생명들을 덮어 준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우연이라 부른다. 어떤 이들은 섭리라 부른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사랑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