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후 사라진 것

by고들정희

5차 항암을 무사히 끝내고 왔다.

항암을 다 끝내고 나면 약 때문인지 잠이 너무 쏟아진다. 남편과 함께 오지 않았으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매주 함께해 줄 수 있는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얼마 전 개그우먼 박미선이 유방암에 걸린 후 항암치료 중에 찍었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녀도 나처럼 림프절에 전이가 되어 항암치료를 17번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항암치료 전 날 병원에 입원을 하고,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혈관이 녹을 것을 걱정해서 정맥주사가 아닌 쇄골아래에 케모포트라는 걸 삽입했다고 한다. 일반적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이후에도 항암치료를 받는 날에는 전 날 입원을 하고, 다음날 그 병상 침대에 누워서 주사를 맞는 모습을 보았다. 환자복을 입고 병상에 누워서 주사를 맞고 있으니 그야말로 "환자"의 모습이었다. 항암치료 중 이런 식으로 몇 번이나 입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항암치료를 하면서 매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다면 심리적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과 캐나다의 치료 방식이 다른 것인지, 개인의 치료 상황에 따른 것인지 그 영상만 보고서는 잘 알 수 없지만, 나 같은 경우는 주사실에 가서 1시간 30분 정도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오면 되니까 전혀 일상이 무너질 일이 없다.


내가 다니고 있는 Arthur Child Cancer Centre에는 약 90~100개의 항암 투여 의자(Infusion / Chemotherapy Chairs)가 마련되어 있다. 6층 치료실에 들어가면 간호사들이 있는 중앙 스테이션을 둘러싼 여러 개의 pod 구역 안에 투여 좌석들이 펼쳐져 있다. 각각의 공간이 꽤 넉넉하고 프라이빗하다. 주사실마다 구조가 조금씩 달라 화장실이 딸려 있는 곳도 있고, 넓은 통창이 나 있는 곳도 있다. 창밖으로 로키 산맥이나 캘거리 전경이 보이는 채광 좋은 오픈 스페이스 방에서 주사를 맞을 때는 기분도 상쾌하다.


암에 걸렸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혹시라도 내 일상이 멈춰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항암치료를 받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내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다. 치료가 내 일상을 완전히 멈춰 세우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물론,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YMCA의 Michelle 선생님의 근력·유산소 운동 수업에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집에서 하는 홈트로 만족해야 하는 건 슬프긴 하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내 일상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항암을 5차까지 진행하며 탈모까지 겪었지만, 또 한 가지 힘든 것이 있다면 입맛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항암 첫 주부터 남편은 내가 항암을 잘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매주 몸에 좋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 챙겨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첫 주에는 전복을 사다가 여러 가지 야채를 넣고 전복죽을 푹 끓여줬었는데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입맛이 도는 느낌이었다. 남은 전복죽을 한 그릇씩 유리용기에 담아서 다음날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놨는데, 다음날엔 그 맛이 안 났다. 3일째는 안 남기려고 겨우겨우 억지로 먹어야 했다.

두 번째 주에는 유기농 닭을 사 와서 삼계탕을 끓인 다음 닭죽을 만들어줬는데, 이것 역시 첫날엔 먹을만했는데, 두 번은 먹기가 싫었다. 매주 남편이 내게 먹고 싶은 게 없는지 물어보고, 나를 생각해서 요리를 해주고 있는데, 평소 같으면 고마워서라도 싹싹 긁어먹고 배를 두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맛있는 음식들이 요즘엔 잘 안 넘어간다. 생선요리, 등갈비구이, 닭볶음탕 등도 해주었는데 조금만 먹어도 배가 차고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 드니 많이 먹지 못해서 남편에게는 좀 미안하다.

남편의 요리 중 필살기인 김치전을 해줬던 날에는 간장을 찍어 먹으니 갑자기 너무 짜게 느껴지는 바람에 많이 못 먹었다. 입맛이 예민해져서인지 이젠 짠맛도 평소의 두 배로 느껴지는 것이 괴롭다.


월요일엔 둘째가 미술 수업을 하는 날이다. 미술 수업을 하는 도서관 근처에 맛있는 Banh mi 샌드위치 집이 있다. 맛있게 먹었던 그 집 샌드위치가 생각나서 도시락 대신 일부러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그런데, 예전에 시킨 Beef 대신 pork를 시킨 게 화근이었을까. 오늘따라 샌드위치가 내게 너무나 느끼한 거였다. 먹으면서도 자꾸 인상이 찌푸려졌다. Beef를 시켰어야 하나? 다행히 아들은 샌드위치가 너무 맛있다며 잘 먹었다.


아침마다 먹던 요거트도 요즘엔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나마 부담 없이 잘 넘어가는 것이 레몬즙을 짠 레몬수나 상큼한 과일이다. 요즘엔 신맛나는 과일이나 오렌지가 많이 당기는 거 같아서 남편에게 "내가 입덧하나?" 라며 농담을 했다. 사실 애 셋을 낳으면서 한 번도 입덧을 안 해봐서 어떤 느낌인지도 잘 모르지만 말이다.


평소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나는 밥 먹는데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다.

어릴 때는 엄마가 고봉밥을 해서 김치찌개만 사흘 연속으로 올려놔도 밥 한 그릇을 뚝딱하고, 절대 그 밥을 남기는 법이 없는 아이였다. 친구집에 가도 밥 잘 먹는다고 늘 칭찬받는 아이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식당을 가거나 다른 집엘 방문해도 까다로운 입맛이 아니니 내어 오는 음식은 뭐든 잘 먹고, 특별히 못 먹는 음식은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TV나 유튜브에서 누가 만든 음식을 보면 기어코 따라 만들어서 맛봐야 하는 편이었다. 요리하는 즐거움, 그리고 함께 먹는 즐거움을 누구보다 좋아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젠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식탁에 앉는다.

평생 먹는 걸 두고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내가 이제는 하루 세끼를 어떻게든 챙겨야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항암치료를 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니까 잘 챙겨 먹으라고 하지만, 먹는 거 자체가 즐겁지가 않은 요즘이다.

세끼를 겨우 숫자 채우듯이 먹고 있다.

도대체 내게 맛있는 음식이 뭘까...

인생의 즐거움 중 먹는 즐거움 하나가 사라지니 생각보다 삶이 심심하다.

항암이 끝나고 다시 배를 두드리며 “잘 먹었다!”라고 말하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기다려진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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